코스 : 경주 산내면 신원리 장육산상회(09:55)~조망바위1~조망바위2~육장군묘~용궁사(천제단)~샘터~육장굴~장육산~선각마애불~617봉~용귀마을~527봉(용귀산)~532봉~457봉~출발지점(16:15) gps로 10.7km
올 겨울 들어 가장 기온 떨어진 아침, 쾌청조망 기대하며 장육산 다시 오른다. 지난 번에 못본 육장굴도 들리고 능선마을 용귀와 꼭꼭 숨은 윗산저까지 기웃거려보기로 한다(윗산저는 결국 못감).
남쪽에서 오르는 장육산, 길 흐리고 코박을 듯 가파르지만 20번 국도에서 눈길끌던 조망바위들 찾아가며 오른다. 워낙 쾌청날씨라 모든 조망처가 기대 이상이다. 투명한 대기 뚫고 날아와 시리게 부서지는 검푸른 빛의 파편들. 아플듯 부셔 실눈뜨고 가늠하는 원근 산하 겹겹 마루금들, 검게 타오르는 차가운 불길이라 해도 좋을 저것들...
임도 겹겹 얽힌 장륙산릉, 예전에 보았던 벌목지가 어딜까.. 궁금함도 잠시, 무속 신앙 자취들과 그 21세기 진화상들을 눈여겨보며 절승 조망처 찾아 장육굴 상단 올라선다. 박진하게 출렁이는 낯익은 산맥들, 영알 장릉과 운문호 끼고 앙증맞게 솟아난 금천과 매전쪽 산릉들, 위세당당 팔공 보현과 아득히 가물거리는 대간릉 비껴 하늘빛 닮은 지리 상봉까지...
모처럼 라면끓이고 소주까지 걸치니 윗산저는 다녀오기 싫어진다. 좋은길따라 용귀마을로 내친다. 능선 마루에 앉은 용귀마을, 근래 몇차례나 눈에 밟혀 썩 궁금하던 곳이다. 가구수 많지 않으나 시원한 조망과 비교적 깨끗한 경관이 인상적인 고원 마을이다. '용기산' 나무 표지 서 있는 527m 초소봉, 조망 또한 제법인데 정작 초소 관리자는 건너 장육산의 토속신앙 유적이나 명당, 청도 인물 자랑만 늘어놓는다.
이후 주로 임도로 이어지던 산길은 슬그머니 좌우로 사라지고, 457봉에선 어느 방향으로도 뚜렷한 하산길은 보이지 않는다. 물 한모금 들이키고 수북한 낙엽 쓸어내리며 한참 가파르게 내려서니 산소 총총 나타나고 흐린 길흔적. 상수원 보호 울타리 너머 운문호 상류, 큰물 쓰레기 귀신처럼 뒤집어쓴 나무들 보며 출발지점 되돌아온다.
잠시 후 길찾기가 마땅치 않다. 계곡쪽 길은 유실이 많은지 흔적 잘 보이지 않고 돌도 너무 많아 걷기 불편하다. 능선으로 적당히 치오른다. 코박으며 가파르다.
얼추 가파름 누그러지려는 지점에 조망바위 있는 듯해 나가본다. 20번 국도에서 보았던 기억 떠올리며...
용왕은 물을 관장하는 신인데 산릉의 절이 왜 용궁사일까? (오봉산 여근곡 아래 유학사에도 산신각 대신 용왕각 있다)
장육산 자락에 기대 사는 이들이나 찾아오는 인근 산자락 주민들, 논밭 일구고 살려면 무엇보다 물이 절실하단 뜻일까?
근데 장육산에도 무지터 있다는데 찾아보질 못했다. 구룡산에서 본 무지터. 무지는 무제의 와전이라 하니(경상도에선 제사를 지사라 함), 무지란 곧 물제사인듯. 구룡 사룡 그리고 여기, 높은 산중에 터잡고 살려면 무엇보다 물이 절실할 터이니, 가뭄이야말로 치명적.
근래 기웃거리는 경주 남산에서부터 오봉~사룡~구룡산 그리고 여기 장육산까지에서 일관되게 발견하는 건 토속(혹은 무속)신앙, 혹은 신앙에 지배되는 삶의 형식들이다. 이는 경주의 내남 건천 산내 그리고 청도의 운문 일부까지를 하나로 묶어서 바라볼 수 있는 어떤 전래 문화 요소 또는 특징적인 삶의 태도 같은 걸 추측케 한다. 인접한 이 지역들은 산릉이 첩첩 깊으나 아주 험하거나 높지 않다. 거기에 너른 고원분지나 개간할만한 산마루들이 많다. 그런 지형 특징으로 보면, 인근 울주군 두서면이나 치술령 동쪽 두동까지 포함하는 지역도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쯤에서 거칠게 상상해 본다. 전근대 시대 이 지역은 씨족 단위의 농경 공동체를 이루고 유교 중심의 향촌 질서가 완강히 작동하던 곳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았을까? 기름진 벌판을 지배하는 지역 사회의 주류보다는 그에서 좀 비켜나 있는 부류들의 삶의 터전이었을 거란 것. 이 지역을 배경으로 거론되는 옛 반란의 주모자들이 농민층이 아니었다거나, 박해를 피해온 천주교 신앙촌(교우촌)이 터잡았던 곳이 일대에 여럿 보인다는 사실. 이 또한 이 지역들에서 유교 이외의 비주류 이념이 말살되지 않고 뿌리깊게 흐르고 있었을 거란 점을 짐작케 한다.
지배 무리의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가는 자, 또한 세상을 아주 등진 건 아니었다. 거기서 그들은 나름의 세상을 일구고 살아왔으니 그들의 믿음 또한 체제가 강요하는 벌판의 그것과는 같진 않았을 것이다. 험하지 않은, 기대 살만한 산들을 기웃거리다 보니 쉬 돌아보이는 건 바로 그런 삶의 흔적과 믿음의 자취들이다. 현대 문명에 익숙한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생태주의를 찾고 고급하게 추상화된 정신세계를 읽어내려 하고 숙련된 솜씨로 빚어진 예술적 성취를 기대한다. 시린 산바람에 씻은 눈으로 붉은 페인트 글씨 투박한 남루한 판자의 절집 다시 돌아본다.
용의 귀, 풍수적으로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으나 위 사진 담은 곳의 묘소가 좀 이상한 점 있어 눈길 끌었는데,
용귀산 초소관리인에게서 누구 묘소인지 듣고는 수긍이 간다. 그 산소 후대, 지난 정권에서 실세로 날렸던 아무개인데, 당시엔 명당이라고 풍수장이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그가 영락하자 아무도 찾는 이 없더란 것. 소위 명당의 낯간지런 허실과 더불어 여반장하는 인심에는 실소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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