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청도 운문 봉하보건소(09:40)~발백산~정상재(질매재)~경산 구룡산(650.8m)~청도구룡마을~구룡공소~십자가의 길~경산 구룡산~경산구룡마을(매남4리)~다방못~사면길따라~구룡산 남릉~정상리~출발지점(16:25) gps로 12.5km
다시 보는 구룡산, 특이한 고원 지형에 어우러진 인문의 생태가 자못 흥미롭다. 신앙벨트라 불러도 좋을, 경주 오봉산과 사룡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한 축을 떠올리게 한다. 무속이나 토착신앙과 불가분으로 얽히며 정치와 신화가 상호작용하는 힘의 장을 펼쳐보였던 전래종교, 전근대 제국주의 침탈과 착잡하게 맞물리며 피비린내나는 박해와 도주로 점철된 유일신교의 역사, 또 현대 문명의 어떤 과잉 지점에 대한 나름의 절실한 대응이자 스스로 또하나의 증상이 되어가는 생태적 종교 공동체 등등... 그 모두가 하나같이 우월한 지형지세의 품에 안기거나 기대거나, 혹은 사로잡힌 꿈이요 현실이었더란 흔적을 일대 이산저산 도처에 뿌려놓고 있으니,
저 핍진한 역사들에 분방한 상상의 나래까지 더할 수 있다면, 기복과 초월, 무속과 고등종교 소수분파까지 넘나들며 작동하는 부지불식 큰 사물을 향한 집착, 뿌리깊은 범(물)신론적 욕망의 경제, 그 생생한 토양과 무대를 이 일대에서 풍성하게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장육산 또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된다)
언제나 길 바깥을 넘보는 꿈의 행각은 자주 우리 몸을 예기치 못했던 곳으로 몰아간다. 아드레날린 펌핑하는 기획된 산달리기가 아닌 무작정 산(여)행이 때로 아쉽고 그립다. 가늠치 못하므로 불현듯 (정령을) 느끼고 아득한 기원을 그 앞에 내려놓는 거대한 바위처럼, 물物로서의 커다란 산. 깃든 역사가 살아있으되 그에 짓눌리지 않는 삶의 방식들이 느껴지는 산들이 있다. 산으로 열리는 어떤 길들, 막연하나마 구룡에서도 그런 길을 느끼고 본다.
발백~구룡 다음에 발백~반룡을 비슬지맥과 묶으려 선답기록 참고하다 그만 시큰둥해진다. 산빛 그닥 고운 시절도 아닌데 조망처마저 시원찮으려니. 차라리 경산쪽 이암(귀바우)마을 원점으로 반대방향 구룡 발백 한번더 돌아보는 게 어떨까... 맴맴 울리는 이암, 구비구비 귀의 소릿길만 깊어지는 시절.
산소길인듯 꾸준히 서남으로 이어지는 임도, 벗어나 맘먹은 능선으로 치오른다. 잠시 오르다보니 흐린 길 있다. 그래도 엄청 가파르고 낙엽투성이라 만만치 않다.
결과적으로 판단컨데, 임도를 계속 따라가며 완만히 고도 높인 다음 정상쪽 능선을 치올라야 했다. 아마 그리로 봉하에서 발백산 오르는 (묵었을망정) 주등로 있지 않을까 싶다. 위성지도로 보이는 능선 중턱의 산소와, 하산 날머리 가까운 주차장소 등에 집착하다 좋지 못한 판단으로 애만 먹었다.
저 산소 이후 길은 없다. 코박고 오른다. 거친 길 아니나 낙엽 미끄럽고 무척 가파르다. 입에선 단내가 풀풀 난다.
구룡산 천주교의 역사는 깊다. 19c초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포도산 옆) 영양 등지에 있던 신앙촌이 박해를 피해 흩어지며 일부가 여기로 흘러들었다 한다. 지금은 청송이나 진보가 오지이지만 당시엔 여기 구룡산 또한 만만찮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북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는 지세, 너르고 기름진 고원 분지 이루는 정상부, 남으로 드리워진 깊은 골짜기와 전체적으로 오묘하게 얽힌 지형...
그래서 구룡산은 여태도 신비롭다. 사물의 신비, 그에 기우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그 마음들이 새기고 누빈 기록과 흔적은 읽히고 밝혀지기를 도처에서 기다린다. 돌에서 문득 부처로, 변용變容의 의미가 바로 그러할 것이니, 마음이 투영된 산과 바위가 종내 기다림이 되고 신앙이 되는 것.
이번엔 안부로 내려가지 않고 경산 구룡마을(매남4리)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길이 좀 묵었다.
능선엔 밀양 손씨묘 총총이다. 문중산일까?
그런데 엄청 습하다. 여름철엔 물구덩이라 진행 어려울 테니 다른 날머리를 찾아야 할 듯.
잠시 후에 가게 될 다방못 물이 대창천이 되듯, 이 습지와 웅덩이 물은 이암지 송림지를 거쳐 오목천이 된다. 즉 여기가 오목천 발원인 셈이다. 지척의 다방못과 저 연못 물의 운명, 오목천과 대창천 수계를 나누는 건 금박산으로 이어지는 (위 사진의) 바로 저 줄기.
당초엔 구룡산 정상 올라 남능선따라 내릴 요량이었으나 수월하게 사면길 따라가다 능선 접속키로 한다. 지도엔 공소 뒤로 길 이어지는 듯한데, 지맥 안부에서 앞서가는 짱을 따라가니 산소길인 줄 알았던 게 능선까지 이어진다. 유능짱!
구룡산 남릉길 당연히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조금은 불안했는데, 너무 좋은 길이다. 좌우 갈림길 총총 이어지는...
이후 길상태 점점 부실해진다. 또 우리가 갈 길이 주등로가 아니다. 좋은 길로 무심코 가다간 엉뚱한데로 빠질 듯. 자주 지도 보며 간다. 길상태 맘에 안든다, 싶을 즈음 임도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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