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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경상권

청도 발백산~구룡산 201205

by 숲길로 2020. 12. 6.

 

코스 : 청도 운문 봉하보건소(09:40)~발백산~정상재(질매재)~경산 구룡산(650.8m)~청도구룡마을~구룡공소~십자가의 길~경산 구룡산~경산구룡마을(매남4리)~다방못~사면길따라~구룡산 남릉~정상리~출발지점(16:25)  gps로 12.5km

 

다시 보는 구룡산, 특이한 고원 지형에 어우러진 인문의 생태가 자못 흥미롭다. 신앙벨트라 불러도 좋을, 경주 오봉산과 사룡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한 축을 떠올리게 한다. 무속이나 토착신앙과 불가분으로 얽히며 정치와 신화가 상호작용하는 힘의 장을 펼쳐보였던 전래종교, 전근대 제국주의 침탈과 착잡하게 맞물리며 피비린내나는 박해와 도주로 점철된 유일신교의 역사, 또 현대 문명의 어떤 과잉 지점에 대한 나름의 절실한 대응이자 스스로 또하나의 증상이 되어가는 생태적 종교 공동체 등등... 그 모두가 하나같이 우월한 지형지세의 품에 안기거나 기대거나, 혹은 사로잡힌 꿈이요 현실이었더란 흔적을 일대 이산저산 도처에 뿌려놓고 있으니,

저 핍진한 역사들에 분방한 상상의 나래까지 더할 수 있다면, 기복과 초월, 무속과 고등종교 소수분파까지 넘나들며 작동하는 부지불식 큰 사물을 향한 집착, 뿌리깊은 범()신론적 욕망의 경제, 그 생생한 토양과 무대를 이 일대에서 풍성하게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장육산 또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된다)

 

언제나 길 바깥을 넘보는 꿈의 행각은 자주 우리 몸을 예기치 못했던 곳으로 몰아간다. 아드레날린 펌핑하는 기획된 산달리기가 아닌 무작정 산()행이 때로 아쉽고 그립다. 가늠치 못하므로 불현듯 (정령을) 느끼고 아득한 기원을 그 앞에 내려놓는 거대한 바위처럼, 로서의 커다란 산. 깃든 역사가 살아있으되 그에 짓눌리지 않는 삶의 방식들이 느껴지는 산들이 있다. 산으로 열리는 어떤 길들, 막연하나마 구룡에서도 그런 길을 느끼고 본다.

 

발백~구룡 다음에 발백~반룡을 비슬지맥과 묶으려 선답기록 참고하다 그만 시큰둥해진다. 산빛 그닥 고운 시절도 아닌데 조망처마저 시원찮으려니. 차라리 경산쪽 이암(귀바우)마을 원점으로 반대방향 구룡 발백 한번더 돌아보는 게 어떨까... 맴맴 울리는 이암, 구비구비 귀의 소릿길만 깊어지는 시절. 

    

올라야할 능선 가늠한다. 정상 오른쪽 봉우리로 이어지는 지능선을 택했지만 그리 현명치 못했다. 정상으로 곧장 이어지는 능선을 택했어야 했다.
낡아가는 어느 한옥 지붕, 풀밭이 되어간다.
길 나서며 건너보는 구룡산쪽, 가운데 뒤로 둥그스럼한 게 구룡.
다시 건너보는 구룡.
가운데 봉긋한 건 구룡 동쪽 637.6봉
정상마을이 보이고
묵은 임도 옆으로 석축. 한때 밭이었을까?
큰 오동목 올려다보며
봉하리 돌아보다. 오른쪽 잘룩한 산릉에 올라앉은 용귀마을 너머 장육산. 왼쪽 뒷줄 정족산
더 왼쪽으로는 만봉이도 보인다

 

산소길인듯 꾸준히 서남으로 이어지는 임도, 벗어나 맘먹은 능선으로 치오른다. 잠시 오르다보니 흐린 길 있다. 그래도 엄청 가파르고 낙엽투성이라 만만치 않다. 

결과적으로 판단컨데, 임도를 계속 따라가며 완만히 고도 높인 다음 정상쪽 능선을 치올라야 했다. 아마 그리로 봉하에서 발백산 오르는 (묵었을망정) 주등로 있지 않을까 싶다. 위성지도로 보이는 능선 중턱의 산소와, 하산 날머리 가까운 주차장소 등에 집착하다 좋지 못한 판단으로 애만 먹었다. 

 

산소
숨 돌리며 귀엽게 생긴 옛석물 들여다본다. 가선대부 아무개. 관직명 없으니 실직은 아닌갑다
숨 돌리며 돌아보다. 좌정족 우장륙.

저 산소 이후 길은 없다. 코박고 오른다. 거친 길 아니나 낙엽 미끄럽고 무척 가파르다. 입에선 단내가 풀풀 난다.

능선 얼마 앞두고 당겨보는 두 구룡산과 청도 구룡마을
발백 정상. 정상석 오른쪽(북쪽) 트인 지점이 유일 조망처.
북쪽 조망이 탁월하다
구룡 사룡 부산 774초소봉 그리고 만봉. 구룡산정에서 남으로 내리는 줄기가 하산할 능선
마일리쪽
정상리
정상리 왼쪽, 끄터머리에 산소 보이는 곳이 하산한 줄기. 산소 이후는 직진길 없어 살짝 빽.
구룡마을. 왼쪽 경산 구룡산 9부능선에 난 선이 수난묵상길.
이어지는 능선. 전혀 조망없다.
허나 낙엽밟는 맛은 나쁘지 않다.
우회길 벗어난 조망처에서. 산자락 감도는 왼쪽길은 경산쪽 주도로인데 나뭇가지 위로 이암지. 오른쪽은 구룡공소쪽 가는 길.
정상재에서 돌아보다
코박고 오르다 숨 돌리며 올려다본 하늘
길옆 바위에 올라서 보는 만봉이와 단석, 웃자란 나무들 땜시...
숲 사이로 당겨본 서쪽. 대구 월드컵 경기장과...
비슬산과 최정산릉. 조망 좀 좋았더라면....
수난묵상길 접어든다. 이 능선상엔 9처부터이고 공소쪽 자락길에 1~8처가 있다.
내용은 '예수님께서 옷벗김 당하심을...'
13이란 숫자를 넘어선 14처를 끝으로, 저어기 십자가상이 보인다. 흥미로운 건 부활의 언급이 없다는 건데, 수난을 묵상하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 우뚝한 십자가상이 곧 부활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도...

 

구룡산 둥근 정상부가 한눈에 드는 자리
INRI가 무신 뜻인가 했더니... 라틴어로 유대인의 왕 예수 Iesus Nazarenum Rex Iudaeorum.

 

웃자란 나무들 땜에 십자가 앞에서 구룡공소가 보이질 않는다.
경산 구룡산 내려서는 능선에서. 억새밭 가로질러 구룡마을로 내려선다.
구룡마을 내려서는 길, 아쉽게 마을이 고스란히 보이진 않는다. 인근 산소터에 그런 곳이 있겠는데 귀찮아서리..
용성성당 구룡공소. 마침 수녀들 일행이 계셔 안을 기웃거리진 못했다.

구룡산 천주교의 역사는 깊다. 19c초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포도산 옆) 영양 등지에 있던 신앙촌이 박해를 피해 흩어지며 일부가 여기로 흘러들었다 한다. 지금은 청송이나 진보가 오지이지만 당시엔 여기 구룡산 또한 만만찮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북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는 지세, 너르고 기름진 고원 분지 이루는 정상부, 남으로 드리워진 깊은 골짜기와 전체적으로 오묘하게 얽힌 지형...

 

그래서 구룡산은 여태도 신비롭다. 사물의 신비, 그에 기우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그 마음들이 새기고 누빈 기록과 흔적은 읽히고 밝혀지기를 도처에서 기다린다. 돌에서 문득 부처로, 변용變容의 의미가 바로 그러할 것이니, 마음이 투영된 산과 바위가 종내 기다림이 되고 신앙이 되는 것.

     

 

멀리 장육산
공소 앞뜰
수난 묵상길을 첨부터 짚어가보기로 한다.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조망을 기대했으나... 묵상길이니 끝까지 조망없을 거란 걸 문득 깨닫는다.
내용은 '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사면길에선 8처까지

 

다시, 경산 구룡산에서

이번엔 안부로 내려가지 않고 경산 구룡마을(매남4리)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길이 좀 묵었다.

 

내려서며 숲 사이로 보는 구룡마을

능선엔 밀양 손씨묘 총총이다. 문중산일까?

 

날머리 길찾을 생각않고 대충 내려서니 층진 묵밭.

 

그런데 엄청 습하다. 여름철엔 물구덩이라 진행 어려울 테니 다른 날머리를 찾아야 할 듯. 

 

예쁜 연못
내려온 능선 돌아보다
수종 모를 멋드러진 나무
습지
또다른 연못둑에서 돌아보다. 가로뻗은 건 금박산릉인가.

잠시 후에 가게 될 다방못 물이 대창천이 되듯, 이 습지와 웅덩이 물은 이암지 송림지를 거쳐 오목천이 된다. 즉 여기가 오목천 발원인 셈이다. 지척의 다방못과 저 연못 물의 운명, 오목천과 대창천 수계를 나누는 건 금박산으로 이어지는 (위 사진의) 바로 저 줄기. 

 

경산 구룡마을
분위기 좋아 한참 뭉기적...
돌아보고...
또 돌아보다
다시 올라선 다방못둑에서
연못 위의 더 작은 웅덩이
쓰지 않는 샘이 있다. 저기가 진정 대창천의 발원? ㅎㅎ
다시 봐도 멋스런 풍경. 저 작은 못둑에서 팔공 화산 보현산릉이 한눈에 든다. 지금은 미답의 채약만 장하다.

당초엔 구룡산 정상 올라 남능선따라 내릴 요량이었으나 수월하게 사면길 따라가다 능선 접속키로 한다. 지도엔 공소 뒤로 길 이어지는 듯한데, 지맥 안부에서 앞서가는 짱을 따라가니 산소길인 줄 알았던 게  능선까지 이어진다. 유능짱!

 

사면길에서 보는 남쪽. 오른쪽 뭉툭한 봉우리가 발백

구룡산 남릉길 당연히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조금은 불안했는데, 너무 좋은 길이다. 좌우 갈림길 총총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왼쪽 숲 너머로 수암마을.
살짝 시야 트이며 발백과 영알 능선들이...

 

이후 길상태 점점 부실해진다. 또 우리가 갈 길이 주등로가 아니다. 좋은 길로 무심코 가다간 엉뚱한데로 빠질 듯. 자주 지도 보며 간다. 길상태 맘에 안든다, 싶을 즈음 임도로 내려선다.

 

메마른 사초꽃? 쉬면서 심심풀이
도로 걷기싫어 논둑 따라가며 돌아보다.
다시 올려다보는 발백, 아침의 그 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