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내남과 울주 두서의 아기자기하고 감칠맛 나는 산릉들 일람하려 낙동정맥 오른다. 깊으나 험하지 않은, 살만한 오지이자 유배의 땅, 그 내력과 현재를 거칠게 스쳐가는 걸음이기도 하다. 역사의 거친 물결이 오지를 피해가는 게 아니라 파란만장 누군가들의 삶을 자주 핍박하고 가두기도 했음이니, 풍수에서 말하는 소위 (십)승지란 게 얼마나 기만적인 허구인지를 새삼 확인한다.
일대 연이어 기웃거리다가 은근 중독되는 느낌이다. 백운 삼강 찍고 다른 지방으로 점프하려던 생각 일그러진다. 천마 아미 용암 그리고 마병... 미련으로 밟히는 이름들이니, 갈데까진 가봐얄듯 싶으다.
마을이 아니라 사람 이름이라면 가히 선행강박이랄 만하다. 천주교 신앙공동체 성립 이후에 지어진 이름일까... 신앙의 자유가 없던 시대, 오랜 박해의 공포로 단련된 어떤 내면화된 시선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착함을 공공연히 전시해야만 했을, 차마 헤아리기조차 힘든 마음의 심연... 공감할 수 없는 무신앙의 가슴엔 스산한 바람만 불고간다.
임도 벗어나 무슨 목장터라는 개활지로 나가본다. 거칠게 껍질 벗겨놓았다. 조망은 시원하다.
선재봉이란 이름은 설득력 있다. 올 들어 가장 춘 오늘, 상선필 마을 입구 도착하니 골바람 차고 사나웠다. 마을로 들어서니 비로소 조금 잠잠해졌다. 크지 않은 저 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니, 가히 선재善財라 할만...
현장 고증없이 책상물림 만든 안내문을 답사 부담없이 읽는 공허한 즐거움. 한편으론 좀 낯간지럽기도 하다.
탑골샘 오르는 계곡이 무척 바람 사납다. 손발 시리다. 백운산을 먼저 오르고 싶었으나 북향 능선 바람 무서워 골짜기 먼저 들었는데 뜻밖이다.
소위 발원지란 곳, 일종의 얼굴마담 같은 것일 게다. 너르고 너른 수계 중 꼬리 좀 더 길다고 상대접이지만 그조차 불확실하다. 저 (추정) 절터는 삼강봉쪽 지류이니 가장 긴 쪽 줄기가 아니다. 공식 태화강 발원지는 백운산 아래 세 골짜기 합수점이니 일종의 타협점이다. 영알 둘레길 패키지 상품으로 급조된 행정편의적 포인트란 혐의가 짙다(구전에만 의존한 채 고증없는 어설픈 안내판들도 그 의심을 뒷받침한다). 널리 알려진 바 또는 이름표의 허실이란 게 상당수는 저러하지 않을까...
탑골샘 골바람 워낙 사나웠기에 낙동능선 오르면 얼마나 대단할까... 기죽는다. 바람 피한 산비탈에서 일찌감치 점심 먹고, 부른 배 안고 슬슬 오른다. 삼강봉 능선 바람이 뜻밖에도 부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