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칠곡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진남문(10:50)~가산바위~서문~북문~유선대~가산정상~할매할배바위~치키봉~진남문(16:20) 꽃놀이모드로
대지와 머리맡에선 봄꽃 총총 피어나고 유록빛 새순 돋아나는 춘삼월. 맘은 남도로 남도로 내달리는데, 공포와 혐오 만연하는 참혹의 풍경이 봄빛을 압도한다. 집집마다 나라마다 문 걸어잠그며 경쟁하듯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만 헤아리고 있는 미증유의 세상... 계절 잊게하는 코로나 시절, 사는 동네가 동네인지라 멀리 가기 부담스러워 오랫만에 가산 복수초나 만나러 간다.
몇 년만에 다시 돌아본 가산산성, 거의 성벽 전구간 숲을 홀라당 벗겨놓았다. 여기저기 복원공사도 진행 중이다.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멋스런 윤곽 뚜렷이 드러낸 성벽따라 걸으며 먼 산 조망하긴 좋은데, 가산 깊은 숲 아름드리 나무들 무참히 사라진 건 많이 아쉽다. 더운 계절엔 짱배기도 따갑겠지...
능선 산길에선 맨얼굴로 걷는 이가 많지만 마스크한 이도 적지 않다. 그러고도 저만치 피해서 교행한다. 야외를 혼자 걸으면서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사람들... 공포의 학습효과는 특이하다. 학습량에 비례해서 공포도 (기대와 달리) 커진다. 금세기 들어 연거푸 지구촌 엄습한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거치면서 비합리적 공포와 혐오 증오 또한 더욱 심해졌다. 무능 정부에 대한 격렬한 비판은 말할 것도 없고 무분별에 가까운 중국 혐오와 도넘은 신천지인 마녀사냥, 나아가 서구 각국에서의 중국 한국인 차별과 조롱... 인류의 2/3가 결국 당하고 말 거란 전문가적 예측이라면, 차라리 다 한번 걸리고 말지 이 무슨 난리지랄인가~? 싶을 지경이다. 너나없이 생각하려 하기보다 반응할 뿐이고, 전율하는 말초 감각의 비명과 짜릿함들로 세상은 부글거린다. 바이러스를 증오할 순 없으니 숙주라도 증오해야겠다는 걸까? 문명의 수면 아래 잠류하던 거친 생존 욕망들이 적의 압도적 공세에 직면하자 자기파괴적 양상으로 뒤틀리며 마구 분출하는 걸까?
허나 어쩌면 이 파국적 난동과 소모적 광기의 실체는 종種의 전쟁 아닌가? 숙주를 년식으로 나누며 사회적 계급과 차별의 미세균열이나 단층선을 따라 진행하는 인류와 바이러스간 생태 전쟁 아닌가? 노약자와 가난한 자가 가장 먼저, 치명적으로 당한다. 인류는 유례없이 반생태적이고 배타적인 물질 문명을 이룩한, 압도적인 지구 최우세종이다. 치명율 낮춘 대신 가공할 전파력으로 진화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 도시생태계의 취약 지점과 증상적 지점들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타격한다. 현대적 삶의 불안과 공허를 다독이는 예배공간,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매개하고 유통시키는 최전선 생계전장 콜센터, 끝없이 흘러내리는 살肉을 필사적으로 지탱하며 부양하는 몸신의 전당 스포츠센터, 미래를 선도하는 지식과 정보의 글로벌한 교류의 장 국제 컨퍼런스, 민주주의와 음모가 함께 약동하고 난무하는 내각과 의회 등등... 이 모든 게 (얼핏 비문명의 야만으로만 보이는) 우한 야생동물 시장과 동일한 네트워크에 속한다는 사실. 경악스럽지만 그게 바로 현대사회 아닌가? 지금 여기와 까마득한 거기는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 완전히 동일한 생태계에 속한다. 인류세 문명의 개가와 저주는 동전의 양면일 따름이다.
누군가는 물物의 귀환이라 했지만 이건 몸의 귀환에 더 가깝다. SNS와 네트워크를 휘젓고 누비던 자유롭고 잘난 몸 이미지들이 무겁고 위태로운 숙주로 돌아온다. 코로나 숙주로서의 몸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그 몸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민주 시민의 주권이란 공허한 말이다. 감염되어 동선 털리고, 추적당하고 수용되는 몸이 있을 뿐이다. 몇번 확진자로 호명되고 몇번 사망자로 분류된다. 어느 철학자가 '벌거벗은 생명' 혹은 '생명정치' 라 불렀던 그것이, 고스란히 몸의 실재로만 파악되는, 코로나 시대 우리 삶의 현실이다. 바이러스가 내 몸을 숙주삼는 순간, 나는 집에서도 국가 속에서도 더 이상 주체가 아니다. 기존의 모든 사회적 맥락은 지워지고 위태한 동선에 사로잡힌 확진자의 몸으로 재구성된다. 미지의 적이 숨어든,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병원체, 낯설고 적대적인 사물적 신체일 따름이다.
바이러스 창궐 이상으로 비합리적 패닉과 혐오 증오의 창궐이, 포퓰리즘과 마녀사냥식 선동이 무섭게 느껴진다. 바야흐로 인류세 문명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시대구분될지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SF영화에서나 보던 디스토피아가, 문득 지금 여기 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금 이 시대가 이미 '종말 이후'인 걸까? 그럼 신천지가 신봉한 그 종말이, 스스로를 겨누며 모골 송연토록 정확했던 게 아닌가?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모든 종말론은 자기반영적이 아닐까 싶은 실소마저 자아내지만,
문득 종말론자가 되고 싶어지는 충동, 부신 봄날의 저 꽃빛 기억하며 간신히 떨쳐내는 삼월 어느 오후...
진남문 서쪽 성벽에 까치발 딛고올라 굽어본다.
눈부신 햇살, 대기는 차가우나 바람은 잠잠하다.
숲그늘 짙은 능선길은 성벽따라 이어진다.
첫 조망바위에서 돌아본다.
아침기온 낮았으나 대기 잠잠한 탓인지 기대만큼 쾌청 시야 아니다. 앞산 비슬산마저 흐릿하다.
멀리 박무 아득한 대구 시가.
신천지에서 코로나 개벽하던 날, 그 날 이후 며칠간 시내 거리는 놀랍도록 적막했다.
교통량으로만 본다면 이제 거의 일상을 되찾은 듯한데, 코로나보다 굶주림이 더 무섭기도 하고, 막힌 숨통 틔우려 야외 향하는 걸음들 때문이기도 한 듯.
돌아보는 남원리
가야할 방향
바닥에 딩구는 와편. 무늬나 형태 등으로 보아 요새 건 아닌 듯.
잠시 숲이 이쁜 길
성문으로 들어...
성벽 위로 오른다.
팔공산쪽 돌아보다
성벽아래 복수초 총총이다.
가산바위로 간다.
가산바위에서 굽어본 동명면 학명리쪽.
황학 백운 매봉... 너머 넘실거리는 산릉들은 아직 미답이다. 갈데 없으면 가려고 미루고 미루는 곳이지만, 그러다 영 못가는 건 아닐지...ㅎ
남쪽. 앞산 비슬산릉이 아득하다.
거대한 너럭바위 여기저기서 바람 피해 요기하는 이들 보이지만, 양지바르고 한적한 북문 꽃밭 기억 떠올리며 사람들 자꾸 몰려드는 가산바위 벗어난다.
서문 가는 길, 유학산 너머 금오산릉이 아득하다
돌아본 가산바위
돌아보다. 가산바위는 보이질 않는다.
전에 왔을 땐 여기는 숲이었던 거 같은데...
서문
다부재로 이어지는 황학지맥 줄기, 역시 미답.
코로나 시절 빙자하여 저 일대나 돌아볼까나...?
846봉 지나 모래재 능선 삼거리, 누군가 마스크까지 낀 채 호젓함 즐기며 카메라 똑딱이고 있다. 여느 때라면 인사 나누고 곁에 서서 함께 먼산 기웃거려도 좋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란 신조어마저 생겨난 시절, 공포의 맨얼굴 들이밀지 않으려 멀찌감치서 지나쳐간다.
역시!
북문 가까워지니 싱싱하고 다양한 자태의 이쁜이들 많이 보인다.
배낭 던져놓고 느긋하게 자세 잡는다.
북문 지나 유선대 쪽 향하는 성벽, 예전에 저쪽은 울창숲이었는데 홀라당 벗겨져 있다.
북문 일대도 예전과 달라졌다. 거친 폐허 분위기는 사라지고 새 이정표와 야자매트 포장길까지 번듯하다. 그래서 오가는 이들도 제법 보인다.
북문.
북쪽답게 아직 고드름 주렁주렁
연못쪽으로 이어지는 복수초 군락지 기웃거려 볼까 싶던 욕심 버리고, 말끔히 나무들 베어낸 성벽따라 간다.
멀리 바람개비들 서 있는 화산릉도 보인다.
뒤돌아보다. 멀리 청화산 냉산릉인가...
화산 왼쪽 멀리 방가산릉, 그 왼쪽 조림산과 선암산릉...
조림산 앞으로는 시원스레 뻗는 부계 매봉산릉, 왼쪽 멀리 흐릿한 금성 비봉산릉도...
나무들 싹 베어버려 사뭇 낯선 풍경
삼칭이능선 분기지점에서
팔공산릉 북쪽 자락
유선대에서
가산 정상 가며 돌아보다.
예전과 달리 시야 훤히 트이니 바위들이 제법 화려한 맛.
오늘 가산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코로나 방콕 질식 피해 밖으로 나온 듯.
저 성벽도 조망처 빼곤 예전엔 울창했던 곳.
민둥한 정상에서 돌아보다.
진행방향. 이쪽도 더 헐벗은 듯?
돌아본 정상부와 윤곽 뚜렷이 드러나는 삼칭이 능선
마지막으로 북쪽 조망 함 더...
할배바우?
할매할배
남쪽
치키봉에서 남릉따라 하산길, 생강나무꽃이 한창
올괴불나무?
해원정사 홍매도 한창~
진남문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오전과 달리 사람들 엄청 많아졌다.
답답하니까 다들 뛰쳐나온 거구나, 무서우니까 다들 저렇게 마스크 꼮꼭 끼고 저만치씩 떨어져 가는구나...
동명네거리에선 나들이철 주말처럼 차량이 정체한다. 거의 1km. 도로 오른쪽 송림지엔 못보던 현수교 다리가 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코로나가 만든, 코로나에 맞서려는 안간힘 느껴지는 이채롭고도 짠한, 춘삼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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