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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흑산도 선유봉~서산머리~사리 190309

by 숲길로 2019. 3. 11.



코스 : 흑산도 한다령 천사 동상(08:50)~선유봉(09:40)~343.9봉~큰나무 4거리(10:15)~서산머리(11:05) 왕복~사리 사촌서당(13:10)

gps로 7.2km

2019-03-09 흑산도 선유봉~서산머리~사리.gpx

 



(비지정 코스 참고용 유일 지도. 사리재=한다령~하늘단~문암산이나 서쪽끝 등대쪽 길, 암동 능선길 등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어제 칠락산~상라산에 이어 흑산도의 남쪽 줄기 선유봉 옥녀봉 능선을 걷는다. 흐린 날씨가 아쉽지만 선유봉 능선의 조망은 대단하다. 또 호젓함을 넘어 혼자 걷기엔 무서우리만치 깊고 어둔 상록숲, 명불허전 이 섬의 진면목을 담은 필연적 이름이 흑산임을 새삼 깨닫는다.  


흑산도 산길은 어제 걸은 지정 탐방로 이외는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선답 기록도 찾기 어렵고 변변한 등산지형도조차 없다. 문암산까지는 그나마 묵은 기록 흔한데 문암산 너머는 그렇지 않다. 선유봉쪽도 마찬가지다. 애당초 부실했던 정보와 국공 직원과 택시기사 등에게 들은 (모호하거나 엇갈리는) 정보를 조합하여, 천사동산에서 선유봉으로 올라 219.3봉 거쳐 등대 있는 서쪽 끝까지 갔다가 사리로 내려서는 코스를 정했다. 실행 결과는 서쪽 끝이 아니라 남쪽 끝이었다. 서쪽을 향하던 걸음이 산소 주변 우거진 덤불 앞에서 의심과 망설임으로 남으로 꺽여 버렸다. 불확실한 정보에 따른 막연한 짐작의 예견된 수순이었을까(나중에 알고보니 덤불 너머 길이 있다고). 

남쪽 끝으로의 길은 울창숲 헤엄치는 일사천리 비단길이다. 서산머리는 그러나 숲만큼 아름다운 바닷가는 아니었다. 짙푸른 상록숲 아래 누천년의 암석이 부서져내리는 거친 해벽과, 맑은 날이라면 상하태도 너머 아득히 가거도 독실산이 가물거리고 동남쪽으로는 조도군도 거차군도가 아른거릴 조망처였다. 


선유봉 산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수확은 짙푸른 숲을 향하는 나의 욕망, 아니 길의 욕망에 대한 확인이다. 흑산도 문암산 너머 능선 멋스런 암봉들이나 흑산숲 중에서도 가장 깊다는 암동마을(어두미!) 어둔 숲길들을 답사하기 전에는 다른 산길 기웃거릴 수가 없다. 말하자면,

흑산, 저 어둡게 빛나는 상록숲 그늘에 꽂혀버린 거다. 검은 숲길 조망암봉 오르는 흑산도 종주를 나는 꿈꾼다.   

      


아침 식후에 어슬렁거리며.



예리 8시 버스를 타고 한다령 천사동상까지 가려 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택시를 부른다(9인승 3만원!)

참고로 아래는 흑산도 마을버스 시간표(출처: 신안군 문화관광 http://tour.shinan.go.kr). 요금 2천원. 



비싼 요금이지만, 한다령 가는 동안 택시기사에게 흑산도 산길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홍도와 묶어 바삐 흑산도를 다녀가는 외지인 대부분은 궁금해 하지도 않고, 인터넷을 뒤져도 없는 비지정 등로 들날머리나 길상(형)태 등이다.


한다령 천사동상


뜬금없이 웬 천사? 했는데

일주도로 준공 기념비. 


천사동상에서 굽어본 홍도쪽. 어제에 비해 많이 흐리다.


심리쪽으로 살짝 내려선 지점 선유봉 들머리.

통신탑까지는 임도지만...

 

곧 이런 기막힌 길 나타난다.




마잖아 조망 트이며 문암산에서 이어져 오는 능선이 한눈에 든다.

너머 장도도 살짝 자태 드러난다.


한다령쪽 삼거리 지나 멋진 마당바위 있다는 오른쪽 저 능선, 끝까지 길이 되진 않는다고 한다.


그 능선 끝은 사리(모래미)

나중에 하산할 마을이다. 정약전 선생 유배지였던 곳.


심리(지프미). 만 남쪽 암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사리나 심리는 흑산도에서도 가장 남쪽이다. 옛날엔 북쪽 육지로부터도, 예리 항구로부터도 동떨어진 곳이라 유배객들 처박히기 일쑤였다는. 




우회길 옆 조망 보러 나갔다가 돌아가기 싫어 직등 중


이후 선유봉까지는 줄곧 조망능선이다.

엷은 햇살에 빛나는 고요한 아침 바다 돌아보는 느낌이 좋다.








잼나게 떡진 단층


진달래 피면 참 곱겠다.

어제도 느꼈지만 흑산엔 진달래가 참 많다. 상록활엽 울창하지 않은 곳은 거의 진달래가 무성.


선유봉 세 봉우리.

왼쪽이 선유봉, 가운데는 선유봉보다 더 높은 343.9봉, 오른쪽 봉우리는 주민들이 갓산으로 부르는 듯.

계획은 저 오른쪽 봉우리 거쳐 흑산의 서쪽 끝까지 다녀오려 했는데 길 찾치 못하고 남쪽 끝으로 가게 된다. 

 

어쨌거나 장한 산세다.

이 선유봉 능선은 칠락산 쪽에선 문암산릉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으니 다수 관심권에서 좀 벗어나 있기 마련.

 

이제부터 기복없는 조망바윗길


시야각만 조금 달라질 뿐 비슷한 그림...


젖으면 무척 미끄러울 바위들이다. 흑산도 산릉 바위 대부분이 그렇다.

젖지도 않았는데 무심코 디뎠다가 깜놀하기도...

  



곱고 귀한 첫물들...


밧줄 있지만 너무 삭았다. 잡기엔 겁나 그냥 오른다.


정상 직전




선유봉에서


사리 앞바다


귀섬 꽃섬...

저 방파제 생기기 전엔 칠형제라 부르는 저 섬들이 자연방파제 노릇이었겠다.


옥녀봉과 남쪽끝, 서산머리라 불리는 곳이 살짝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리 가게 될 줄은 전혀 짐작 못했다. 




상록과 낙엽 교목 관목, 능선 좌우 식생 대비가 흥미롭다.




울창 상록숲.

빛 들지 않은 상록숲, 그늘 짙게 배인 섬의 윤곽은 늘 검더라 했다.








푸른 어둠, 캄캄하도록 내리는 이런 길이 좋다.


조망처 찾아 돌아보다


영산도쪽, 맑은 날이면 신안의 섬들이나 진도쪽도 보일 텐데...


예리쪽 대봉산이 보인다.

칠락산 첫 봉우리도 보이는 듯?


343.9봉 오르며 돌아보다.




아래 암동(어두미), 건너 심리(지프미).

암동엔 집에 네댓채쯤?




암동과 심리를 좀 더 가까이...

심리 방파제에서 일주도로따라 왼쪽으로 좀 올라간 곳에 하늘단 둘레길 들머리 있다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 참 조챠?


그 사진이 그 사진 아닌감?






343.9봉


정상에서 저 능선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을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남쪽으로 좀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는 건가? 


홍도쪽


길은 남으로 뚜렷하다


심상찮은 포스의 나무들 나타나고..




주거 흔적도..


이 나무들 있는 곳이 네거리.

왼쪽은 사리, 직진은 서산머리 가는 널럴대로, 오른쪽으로 가다가 능선으로 붙어 올라야 서쪽 끝으로 가게 되니 일단 그리 향한다.



오른쪽(서쪽)으로 나가 보니 산소에서 길이 끝난다. 휘~둘러보니 사방 덤불로 막힌 듯하다.

그럼 등대나 암동 머시라고 하던 그 국공 얘긴 뭐지? 오늘 아침 택시기사는 암동이나 등대 얘긴 없었고 서쪽의 해벽이 멋있다는니 그랬는데... 

체계적인 정보가 아닌 얼기설기 꿰맞춘 풍문이라 확신이 없는데다 막상 길도 보이지 않으니 내가 착각한 건가 싶다. 되돌아와 직진 방향 널럴대로로 향한다. 사리 방향 자락길도 확인했으니 일단 하산길 놓칠 염려는 없다. 푹신하고 너른 길은 능선 살짝 우회하며 곧게 이어진다('사리마을' 낡은 표지). 오랜 옛길의 느낌이다. 정약전 선생도 이 길을 걸었을까...




특급 산책로




묵은 산소터






길은 너르나 혼자 걸으면 무서울 듯...

눅눅한 대기 흐르는 짙푸른 적막.


옥녀봉 우회하여 이어지는 길.

숲엔 덤불이나 잡목이 별로 없으니 옥녀봉 역시 방향 잡고 가면 된다. 조망없겠다 싶어 그냥 지나치며 보니 흐린 발길 흔적도 있는 듯.  




하늘 트이더니...

길은 산소 오른쪽(뒷쪽)으로 이어진다. 옥녀봉 다음 봉우리 우회지점쯤이다.


박씨 임씨 합장묘다.


















저 방향으로도 길 있었다. 우린 더 너른 길을 택했을 뿐...




영산도


저기가 흑산도 남쪽 끝이다.


아니면 저기가 더 끝인가?

저쪽으로 갔더라면 좌우로 보이는 게 더 많았을려나? 


멀리 흐릿한 상하태도쪽










여유롭다. 바람만 차갑지 않으면 한참 앉아 놀고 싶은데... 






돌아오는 길에


이 지점쯤이 옥녀봉 갈림이다.


큰 나무 있는 곳까지 오기 직전, 능선을 우회하여 사리 방향으로 길 뚜렷하다.   


완만히 고도 낮추며 가는 예쁜 자락길이다










달려온다. 배고프냐?


줄 거 없는데...
















사리항


멀 보슈?


선유봉






사리


바로 도로로 내려서지 않고 사촌서당으로 간다.

버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


공소와...


저기가 사촌서당


복성재復性齋

묘하게 착잡한 이름이다. (안내판 설명처럼) 공연히 배교를 선언하며 성리학자로의 복귀를 표지하는 것이었을까?

그러고 싶었을까? 아니, 그래야 했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어쩌면 저건, 성리학이냐 천주교냐를 떠나, 가치나 신념을 떠나 그 모든 것에 우선하여 되찾아야 할 삶이 있다는,

원하던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의 절박함을 완곡히 주장하는 표지 아니었을까...? 

저 性을 '성리학'의 뜻으로만 읽는 건 편협하고 경직되다. '자산어보'의 자玆가 그러하듯 저 '복성재'의 성性 또한 다의적이거나 함축적인 표현이 가능한 한자 특성을 절묘하게 살린 쪽이 아닐까 싶다. 性을 되찾는 게 어찌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성리학의 이데올로기로 돌아가는 것이겠는가? 유배 이후 처신이나 성취로 비추어 보면, 한없이 기울어지고 짓눌리려는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그는 원했을 것이고, 존재의 궁지에서도 지켜내려는 반듯한 삶의 욕망, 그 간절함을 저 性에 담고자 했던 건 아닐까? 손암선생 자신의 처지에서 다다를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의 바탕으로서의 性, 바로 그것 말이다.   




아우 다산의 글씨다.

저게 '촌'자인 줄은 첨 알았다.

 

풍광 묘사가 사실적이고 아름답다. 

저 길, 어쩌면 방금 우리가 걸어왔던 길, 혹은 가(려)는 길일 수도 있겠고...


서학을 믿었다고 벼락맞은 듯 귀양온 곳에 자리한 천주교 공소라...

손암선생 믿음의 내력이나 전말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나, 좀 착잡한 느낌이다.

천주교 입장에선 여기가 성지(까진 아니라도 퍽 의미있는 장소)일지 모르나, 정약전의 처지나 박살난 그 집안의 관점에선 어떨까?

은밀하고 도착倒錯적인 종교의 무의식적 욕망이 꽤나 흥미로운 얘깃거리이긴 하지만, 유배지 옆자리에 태연히 눌러앉은 저 서학의 증명이라니... 

손암의 궁벽했을 일상을 동시대의 배경 그림으로 저기 그려넣는다면 모종의 기이하고 가학적인 풍경이 출현하지 않는가? 



사리에서 2시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돌아오는 길.

해안선 따라 꼬불꼬불 이어지는 일주도로, 곤촌에서 올려다본 문암산이 까마득한 층층 절벽이다. 거대한 석탑이다. 조만간 저 곳을 올라봐야겠다는, 새삼 강렬한 충동이 든다. 또 문암산 잇는 암봉 능선과 수림 짙은 암동 심리 일대의 등로도 궁금해진다. 좀 전 버스 기다리며 잠시 얘기 나누었던, 일주도로 걷는 흑산어부 또한 흑산도에서 가장 깊은 숲을 느껴보려면 암동으로 가 보시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1박2일, 흑산의 숙제는 끝내지 못했다. 내일은 비가 온다. 

흑산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문암과 암동, 남은 숙제하러 다시 흑산으로 돌아와야 한다.     


목포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본 비금도 바위산릉, 선왕과 그림.

저 곳도 미답인데, 덥지 않을 때 가야 할 산이겠다.

 




2019-03-09 흑산도 선유봉~서산머리~사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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