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흑산도 여객선 터미널(10:10)~샘골 들머리~칠락5봉(11:00)~칠락산(302.1m, 큰재 삼거리.12:25)~꽁독바위~4거리 안부에서 되돌아섬~칠락산~마리재~상라산(15:30)~산성 능선~읍동(진리2구.17:30) gps로 10km
숲은 깊고 어둡다. 흑산黑山 혹은 현산玆山의 깊푸른 상록숲에 홀린다.
드러난 물색物色의 감각을 흑黑이라 한다면, 그 감각의 울림이 안으로 새겨지며 환기하는 정서를 현玆이라 할까? 어느 쪽이든 어둡고 무겁긴 마찬가지라 짐짓 외면하듯 눙쳐보려니 자산玆山을 골랐을까? 흑산 숲에 들고 나서야 정약전의 책 제목을 둘러싼 해묵은 발음 논란이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절해 고도 흑산에 갇힌 유배객의 울분을 자양삼아 자신을 팽개친 체제와 역사에 되갚음하는 지성의 익살 혹은 기지였을 따름이니.
저 깊고 캄캄한 숲, 하늘빛 차단하며 어둠으로 반짝이는 상록의 무한 표면. 텅 빈 허허로움에 이르는 단단하고 검푸른 숲의 침묵. 저 숲속으로, 길없는 길 찾아 몇날 며칠을 더 걸어야 흑黑과 현玆과 자玆의 차별을 넘어선 그 빛깔에 닿을 수 있을까?
당초엔 칠락산과 문암산 거쳐 선유봉까지도 찍어볼 수 있으려니 했다. 언감생심, 얼마나 인적 끊겼던 걸까? 깃대봉 치오르는 안부에서부터 우거진 가시덤불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전지가위 들이대보지만 시간상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럴 바엔 차라리 밖으로 돌자 싶었다. 문암의 옹골찬 암봉들, 후일 기약하며 등지고 상라산 향한다. 짱배기 뜨끈하고 돌포장 거슬려 재미 덜한 길이다. 상라산 조망 일별 후 읍리쪽으로 뻗어내린 헐벗은 해벽능선을 걷는다. 너덜 바위 이어지는 거친 산길, 무릎 편칠 않으나 바다 조망 즐기며 넉넉한 오후 탕진하며 읍리로 잇는다. 산행길 더 없어지니 하루해도 딱 거기까지.
흑산도 배편:
목포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도초(비금) 거쳐 흑산도 홍도 가는 쾌속선(도초도 1시간, 흑산도 2시간, 홍도 2시간반) 있다.
가는 건 7:50~15:30까지, 오는 건 09:00~16:20까지 4 차례.
자세한 건 '가보고 싶은 섬 http://island.haewoon.co.kr' 참고(대흑산도로 표기).
재미삼아 운항경로를 gps로 기록해 보았더니 목포항에서 흑산도 발 딛기까지 96.1km, 2시간 5분 걸렸다.
정확히 07:50에 터미널을 출발한 배가 목포대교를 지난다.
새벽운전해 왔으니, 덜 힘든 산행을 위해 좀 자두어야겠지만 아직이다.
이무기가 아니고 불무기도라는데...
이후 잠들었다가...
도초도 지나 난바다로 나온 배가 가속을 하니 엄청 요동한다. 놀이공원에 온 듯, 파고가 높은 날이다.
여기저기 비명소리와 화장실 뛰쳐가는 소리...
멀미약 사먹을 걸 그랬나, 은근 겁이 나지만 눈 감고 울렁임에 몸을 맡기니 힘들이지 않고 견딜 만하다.
흑산도 내려 행장 추스린 후 출발.
도로따라 잠시 가니..
게으른 넘 일출 보러 나오기 딱 좋은 곳 같다.
샘골 들머리 이정표.
문암산이나 선유봉쪽은 아무 표시도 없다.
초입 계단길 오르자 말자 요런 예쁜 길 나타난다.
산길이 썩 마음에 든다. 멋진 흑산도~~
머잖아 나타나는 조망처
출발지점 예리쪽, 철탑 있는 대봉산.
터미널 앞에 있던 지도인데
아직 논란 중인 비행장 활주로 예정지가 그려져 있다. 저대로 실행된다면 대봉산 남쪽 산봉은 날아가야 할 듯?
진리쪽, 왼쪽 상라산.
영산도. 크지 않으나 암팡진 산세가 인상적이다.
드디어 문암산릉도 시야에 든다. 너머 선유봉도 봉긋.
여느 섬산답지 않은 저 위용에 혹해 흑산도를 찾았던 것.
섬산행의 팔할은 조망,
날씨 걱정 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덕분에 진도 더디네...
칠락 5봉, 위 지도상 252.1봉
좀 오글거리지만 귀엽다.
위 정상석을 참고하면 칠락산은 7봉이라는데
오른쪽부터 헤아리면 4개가 보인다. 여기가 5봉 맞네.
문암아, 기다려라~
싫음 말고.
위풍당당
왼쪽 3봉이 하늘단이라던가?
다시, 북쪽.
상라산에서 흘러내린 능선 가운데쯤 그믐달 모양의 원호를 그리는 상라산성이 뚜렷하다.
겹겹의 섬들과 방파제들, 서해 한가운데 자라잡은 고요한 내해는 최고의 양식장이겠다.
어라, 벌써 진달래가...!
낯익은 배다. 당겨본다.
맞네, 타고온 배가 홍도 갔다 오는 거네.
하선 후 1시간이 지났단 뜻.
조망암릉 아니면 어여쁜 상록숲길
싱싱한 동백 방싯거리는...
한가지 맘에 안 드는 건 흑산도가 비행기길 아래 있다는 것.
까막득히 보이지도 않게 지나가는 비행기 소음이 꽤나 거슬린다. 개코 짱은 뱅기 지나갈 때마다 매연 냄새마저 느껴진다는데,
에이, 설마 그럴 리야... 지나가는 배겠지, 하니 배는 아니라 우긴다.
그래, 그럼 뱅기가 맞겠지. 나야 머 후각장애 곰탱이니깐..
다시, 문암
우회길 대신 조망암릉 접어든다
오른쪽 저 줄기가 면사무소쪽 하산로 능선
어허~!
저 바위, 다가가 보니 내 능력으론 직등 불가하다. 왼쪽으로 우회.
좀 가다보니 우회도 쉽지 않은 지점에 봉착. 붙어오를만한 곳 기웃거리니 아니나다를까, 삭은 밧줄 보인다.
세게 잡아당겨보니 툭! 끊어진다. 난감...
돌아가긴 싫고... 배낭 벗고 혼자 끙야~ 붙어올라, 평소 들고 다니는 5m짜리 밧줄 이용하여 짱을 올라오게 한다.
그 구간 지나 또 썩은 밧줄 구간 있으나 위험한 곳 아니다.
암릉구간 지나와 칠락산 오르며 돌아보다
벤치와 정상석 있는 칠락산 정상(큰재 삼거리)에서 장도를 건너보다.
그려놓은 듯 예쁜 섬이다.
여기선 보이지 않으나 큰 섬에는 람사에 등록된 습지가 있다.
당겨본 장도 마을.
마을 뒤로 난 데크길이 습지 탐방로인 듯? 흔치않은 섬 습지라 막 들이대지 못하고 안내받아 가야 한다고...
큰 섬보다 더 예쁜 작은 장도, 너머 홍도
접안 어렵고 가파르고 황량한 초지 뿐인 무인도, 길쭉 민둥한 모습이 죽 내처 걷고 싶은 충동 불러일으킨다.
흑산과 장도 사이, 조류가 일으키는 물살이 장난 아니다
상라산쪽도 예쁘다. 함 걸어보고 싶은 곳이다.
혹 문암산쪽으로 진행 힘들면 저리 가기로 맘먹는다.
암릉 너머 당겨본 호장도.
호랑이 숨은 섬? 저게 호랭이 뒷태란 겨?
이후 문암산 방향 진행 능선, 내내 장도 홍도를 보며 간다
산자락 아래 모습 드러내는 비리 마을.
돌아본 칠락산.
저 시설물들, 만든지 오래지 않은 듯 페인트 냄새도 가시지 않았던데... 그닥 필요도 없어 보이는 시설물을 왜 자꾸 처바르는 걸까?
국공이나 지자체나 다 마찬가지.
우회하다 기어올랐던 암릉. 가운데 직벽 토막이 우회한 구간이다.
이제 비리가 다 드러나고... 멀리 호장도도 다시 보인다.
당겨본 소장도 해벽과 현란한 양식장.
가파른 초지에서 넘어지면 그냥 굴러 바다로 풍덩~ 하것다.
저 틈, 건너기 힘들듯?
숲이 없으니 지형 굴곡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은근히 역동적인 자태는 기어오르고 싶은 충동마저 불러일으키는데...
머, 뛰어오르려는 개구리 뒷태 같기도 하고.
고개 가는 내림길, 한동안 멋진 숲길
꽁독바우
꽁독바우에서 굽어본 소사리 계곡은 짙푸른 수림이다.
나중에 마리재에서 만난 국공 직원들도 저 구간 숲을 상찬하며 적극 추천했다. 족히 1km는 넘을 듯한데
꼭 한번 걸어보고 싶은 소사리 숲길.
고개 향하여~
호젓하기 그지없는 깊고 짙푸른 상록 숲길에 관한 한, 여기 흑산도보다 나은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거문도 뱃노래길은 동백이 주종이라 아름답지만 좀 널럴해서 호젓함 2% 부족했던 편이고, 보길도 숲길은 깊고 호젓함에서 뒤지지 않지만 낙엽성 수종이 많았던 거 같고
오래 전 기억이지만 완도의 상록 수해가 꽤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과잉시설에 길이 넘 뺀질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이 인상, 내일 선유봉 구간에선 깊은 장탄식으로 터져나기에 이른다. 깊고 어둔, 말 그대로, 흑산의 상록숲.
그런데...
소사리와 비리쪽 좌우로 길 뚜렷한 안부 고개, 진행방향은 이리 묵었다.
짐작하고 왔지만 막상 대하니 한심한 기분이다.
전지가위 뽑아들고 혼자 잠시 진행해 본다. 가시덤불 잘라가며 그럭저럭 갈만하나 진도가 걱정이다.
벌써 한시반, 문암산만 찍고 내려가면 모를까, 어디까지 이 지경일지 모르니 해 빠지기 전에 예정코스 다 걸어낼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짱과 잠시 의논타가...
나중에 충분한 시간 투자하여 문암산릉과 이후 구간 알뜰히 둘러보기로 하고 오늘은 퇴각이다.
되돌아간다.
괜히 짱, 어깨도 처져보이누만 ㅎㅎㅎ
다시, 아쉬움으로 돌아보는 문암산
되돌아온 칠락산정에서.
이곳은 샘골 방향과 산라산 방향 나뉘는 곳이니 '큰재 삼거리'란 이정표도 있다.
상라산 가는 길, 예쁜 비리 마을 굽어보며 소장도 조망 이어진다.
문암산 포기하고 나니 마냥 여유롭다.
흐려진 홍도, 한층 신비로워진 섬.
낼은 저기나 가 볼까? 싶지만, 계단길만 잔뜩이라 깊은 맛 별로일 깃대봉은 아무래도 시큰둥이다.
가까워지는 상라산릉
비리의 구녕바위, 구문여라고.
195.2봉 오르며 돌아보는 칠락산릉.
왼쪽 5봉부터 겨우 보이는 칠락산 정상까지.
며칠이면 터질 듯
195.2봉의 영문 모를 돌무더기.
칠락산에서 마리재로 이어지는 길, 재미 좀 덜하다. 이미 충분히 보았던 조망, 숲 깊은 맛도 없고 국공표 돌포장 구간 많아 지루하기까지 하다.
심드렁한 기분으로 마리재 내려서니 산불감시 겸하는 국공 차량에서 나이 지긋한 직원 두분이 내린다. 인사 건네니 대뜸 흑산도 산길 해설을 풀어놓는다.
궁금하던 차, 상록 숲길 좋은 곳을 찾으니 큰재에서 소사리 길을 추천한다. 선유봉에 대해서도 물으니 정규 등로 아니나 아주 좋은 곳이라며 강추한다.
덕분에, 낼 (별 내키지도 않은) 홍도로 건너가야 하나 어쩌나 싶던 차에 망설임 없이 선유봉으로 결정한다.
도로따라 노래비 있는 상라산 입구까지 오른다. 헤어졌던 그 국공 분들, 거기서 기다렸다는 듯 이미자의 노래 매들리까지 켜 준다.
여태 산 다니며 국공 직원과 올처럼 좋이 지내보긴 첨이다. 국공마저 고맙고 반가운 멋진 흑산도~
좀 전 국공분 말씀으로는
저 아가씨, 개도 지폐 물고 다녔다던 그때 그 시절, 조기 파시의 풍류 한가운데 그 아가씨라 한다.
어릴적 그토록 흘려들은 노래건만 흑산도 아가씨 노랫말을 한번도 새겨본 적이 없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 오는데
못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향 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 버린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유사 이래 모든 시와 노래에서 그러하듯,
닿을 수 없는 지극한 순정은 언제나 화류의 전유물이기도 했으니.
글쎄... 포장길이 아니면 맞는 말이겠는데, '걷기좋은 해안길'엔 동의하기 힘들다.
흑산도 일주관광, 다리 성한 이들의 필수 경유지일 듯한 상라산성 봉화대 오른다.
둥둥 떠오르는 노래가락에 실리듯 밀리듯 상라산 오른다.
봉화대 석축
정상부 땅바닥에 묻힌 이건 멀까?
무얼 철거하고 남은 잔해인가?
상라산에서 돌아보다
유명한 꼬불도로, 걷기엔 좀 지겨울 겨~
저 척박한 능선으로 내려가볼까나...?
까칠해 보여도 조망은 내내 좋을 듯.
꼬불길 두어구비 내려가면 능선으로 들어서는 너른 길 있다.
능선에서 해안쪽으로도 묵은 길 있는 걸로 보아 갯바위 나가는 옛길로 잠작.
나뭇가지 걸리적거리고 미끄럽고 삐딱한 바위들 많지만 험하진 않다. 누군가 길표시로 밧줄을 잘라 돼지꼬리처럼 나무에 묶어놓았는데 낡았다.
거의 너덜이라 바윗길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 조망 좋다는 거 외엔 걷는 재미는 별로다.
외로운 호랭이 등짝, 내내 돌아보며 간다.
진행방향, 그림이 나쁘진 않다.
상라산성 시점
산성에 올라서니 저만치 읍동이 보인다.
읍동의 순우리말은 '꼴기미'다. '고을기미'의 준말이니, 읍동은 아마 흑산에서 가장 먼저 마을이 형성된 곳이지 싶다. 내외 영산도가 자연방파제 노릇을 하는 섬 가장 북쪽의 항구인데다 소박하고 오래된 이 산성의 존재로도 미루어 짐작된다.
꼬불길 돌아보다
해벽, 지겹게 굽어본다.
호랭이 엉덩짝.
호랭이가 아니라 거북이같구먼...
치켜든 대가리의 위세만은 당당하다.
동백에(을) 치(이)다.
무릎 아픈 방구길
지나온 방향 돌아보다
당초엔 읍리로 내려가서 해안 기웃거리며 터미널까지 걸어가려 했으나...
산만한 방구길이 좀 지루해진다.
조망좋던 봉우리, 내려서서 돌아보다
상라산성 끝지점.
저 성축따라 걸었으면 금방 왔을 텐데...ㅎㅎ
진달래 많은 흑산도 산길이라 제철 모습 퍽 궁금하지만,
모든 첫물은 귀하고 고븐 겨~~
맨 뒷쪽이 상라산인가?
마지막 봉우리에서
다리 건너 저 예쁜 섬들도 돌아보려 했으나 이제 전혀 구미 당기지 않는다.
역시 우린 바다보다 산이...
저게 실제 마지막 봉우리지만 가지 않기로 한다.
경험상 저런 속 들여다보이는 섬 숲은 가시덤불만 많더라. 더 이상 조망 궁금치도 않고...
마지막 봉우리 내려서며.
조심혀~ 여기저기 까시덩굴 숨어있다고~~
읍동 내려서며.
빨간 지붕 유난히 많은데 한 지붕에도 각색인 게 보여 재밌다.
읍리(진리2구) 마을회관에서 택시 불러 터미널로 간다(9천원).
단체 손님은 안 받는다는 '아시아 모텔'에 방을 잡는다(2인실 5만원). 시설 알차고 깨끗하다. 배낭 두고 곧장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간다.
'아시아 식당'은 흑산도 홍어가 전문인듯, 쥔장이 홍어회와 묵은지에 가양주 막걸리를 자신있게 추천한다. 과연~!
홍어는 (원래 못 먹는) 짱도 즐길 만큼 풍미 부드러우면서도 찰지게 삭았고, 고구마와 보리껍데기로 담은 막걸리는 약간 달면서도 구수한데 뒷맛이 썩 깔끔하다. 음식솜씨가 무척 좋은 듯 밑반찬들이 다 맛있어(짜지 않다) 냉이된장국만 곁들여도 넉넉한 식사가 된다. 가볍고 달기만 한 막걸리 판치는 시대, 모처럼 만난 진국 막걸리를 더 마시고 싶지만 낼 생각해서 자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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