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만연하는 ‘넌 누구냐’는 질문을 무색하게 만드는 영화.
보고 나서 문득 '렛미인(T.알프레드손)'을 떠올렸는데 역시나 원작은 같은 작가의 소설이란다.
영원한 청춘의 매혹과 선혈에 대한 갈증의 저주를
소년 소녀, 서로를 향한 부름과 응답의 숙명적 서사로 겹쳐놓으며,
눈雪의 차가운 침묵과 뚝뚝 떨어지는 선혈의 대비가 더(덧)없이 아름답고 섬뜩하고
끝내 처연하던 영화 ‘렛미인’
‘경계선’은 무언가 감추고 있는 자들을 냄새로 식별하는 재능을 지닌 어떤 인물 혹은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또 기이한 외모와 기형의 몸 탓에 어울리지 못하고 늘 외로운 자의 이야기이자
떠나와 등지고 잊어버렸다 여기는 어둡고 푸른 숲과 그곳에(을) 사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마침내 그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 감추고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음에도
오히려 지킬 무언가를 가진 누군가로 충만해진 삶을 살게 된 자의 이야기다.
그래서 아마 이건 비밀에 관한 우화일 수도 있겠다.
그들 한가운데로 숨(기)되 드러내면 잃고 마는 무엇,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숨길수록 풍성해지는 무엇.
이름 석자나 지위로 온전히 정의되는 누군가나, 균열이나 빈틈도 없는 주체 혹은 자아로서가 아니라
바로 그 숨겨야 하는 무엇으로,
그 무엇에 의지하는 힘으로 사람은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있으니
미세먼지 온세상 뒤덮은 춥지않은 2월의 오후, 가지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숲과 산...
성별 경계를 지우거나 뒤집으며 무성생식하는 존재, 그건 퇴행일까 진화일까?, 묻는다면 그또한 우문일 테지만
성별과 거세를 통해 구조화된 욕망의 상징계로부터 아비父를 철거한다면, 그 빈 자리를 감싸며 재구성되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
더이상 개犬의 사나움이나 충성스러움은 쓸모없는 곳, 여우와 사슴과 아이가 동등해지고 이끼와 곤충과 벌레와 숲과 나무가 번성하는 세계.
소위 북유럽 보편복지의 따습고도 무거운 대기를 호흡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야성족 바이킹의 후예들이 까마득히 잊었거나 감추며 지내고 있는 무엇,
혹은 그들이 꿈속에서나 느낄 법한 숲을 향한 노스탤지어나 그리움, 같은 게 읽히기도 한다.
잃어버린 문명의 청춘시절, 잔혹하고 아름다웠던
그때 그 시절, '렛미인' 피의 향내나 날비린내같은...
뱀다리:
여태 본 중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뱀파이어물이 '렛미인'이었다면, '경계선'은 가장 낯설고 참신한 트롤 영화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연기력 과시하는 에바 멜란데르라는 저 배우가 놀랍다. 실제 얼굴 이상의 자연스런 분장(당근 분장이겠지?)으로 씰룩거리던 윗입술, 잔상으로 남은 그 살肉의 떨림이 오랜 여운으로 맴돈다.
제목 번역은 좀 맘에 안 든다. 그냥 경계,라면 될 걸 왜 ~선,자를 붙였나 싶다.
'렛미인'보다 깊어진 경계적 존재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 이란 상투적 관점에서도 그렇고, 저들 삶의 방식이 우리와 그들 사이의 차이를 느끼게 하면서도 정작 경계선 자체는 드러날 수 없다는 점에서 '~선'이란 표현은 사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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