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들
광고가 요란했거나, 썩 흥행했거나, 평이 좋았거나 해서 기대하며 보았다가 실망한 영화들.
그러나 대부분 나름 훌륭한 평균 수준 이상의 작품들이며, 수작임에도 취향 탓에 실망스러웠던 작품도 있겠다.
- 변호인(2013)
[양우석] 송강호, 오달수, 송영창, 김영애, 곽도원, 조민기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골격도 뚜렷하고 코믹요소까지 더하여 잔재미 쏠쏠하다.
허나 객관적 시선으로 성찰하기엔 역시 너무 가까운 시대인 걸까. 지나치게 단순화된 선악구도가 관객 몫이어야 할 판단을 주입하며 감정이입만 요구한다. 실제인물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니만큼 전기 성격이 강하리라 기대했던 관객으로선 당황하고 실망스럽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양우석 감독은 웹툰작가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낯뜨거운 대사의 남발과 만화같은 과잉으로 선악의 얼굴조차 비인격적인 희화로 만든다. 결과적으로 정의감만 부추기는 고발영화나 무협물이 되었다. 물론 그 시대가 절대무공의 악당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던 무협시대가 아니었더냐고 반문하면 할말은 없다. 사실 그랬다, 당시는 사파邪派가 지배하던 무협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 저리 오버스런 신파로 가야 했을까? 히어로물 만화의 주인공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아직도 다수 권력으로 건재한 그의 수많은 혐오자들조차 (동의는 못해도) 수긍할만한 시대상 표현과 캐릭터의 구성을 기대하는 건 시기상조일까?
송강호의 연기력은 시비의 여지없지만, ‘그’의 전기적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과연 적절한 캐스팅이었을까 싶다. 물론 이 격한 감성의 시나리오와는 잘 어울린다. [명량]의 최민식도 마찬가지였다. 전기적 인물 이순신으로는 어울리지 않았어도 헐리웃식 장르물 [명량]의 그 히어로 역엔 잘 어울렸다.
- 겨울왕국(2013) 애니메이션
[크리스 벅, 제니퍼 리]
영화 개봉 전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한 노래 빼고 나면, 살짝 비틀어봤자 뻔한 이야기. 그림체도 식상하고.
지인의 전화 컬러링으로도 귀따갑게 들어야 했던 let it go~♪. 이번 겨울은 조용해서 좋으네~~ㅎㅎ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
[마틴 스콜세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나 힐, 매튜 매키너히, 롭 라이너
스콜세지 감독 영화는 대부분 범작 이상이다. 그러나 왠지 모를 미진함 혹은 찜찜함이 남는 작품들도 있다. 끈적할 정도로 기름진 영상, 질질 늘어지면서 2% 부족한 듯한 이야기 전개, 그 결과 살짝 어색하거나 응집력 부족해 보이는 캐릭터 따위.
이 영화는 그의 영화들 중에서도 유독 별나 보인다. 179분이란 짧지 않은 상영시간 내내 질척거리기만 한다. 음란 수위가 만만치 않다. 풍자가 아니라 실상의 적나라한 까발림이라 해도 점점 지겨워지다가 끝내 질린다. 그걸 노렸을까?
허나 영화를 보며 느끼는 혐오가 ‘그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감독이 그런 단순한 생각의 소유자도 아닐 게다. 내가 무얼 놓친 걸까...?
이해 부족이라면 다시 함 더 보아야겠지만, 이 영화는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다.
연기야 좋지만 새로움 없는 디카프리오도 지겹다.
이 영화의 장점, 빠른 전개로 끈적거림이 없다. 엄청 질척거리긴 해도.
-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짐 자무쉬] 틸다 시윈튼, 톰 히들스톤, 존 허트, 안톤 옐친, 미아 와시코우스카
저 찬란한 헛소리들... 불멸의 그들, 영원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오로지 예술만이 영원하리니.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대부분은 분위기와 비주얼이 태반을 먹고 간다. 나머지는 개드립이라 불러 마땅할 허세스런 대사와 뜬금없는 발상들, 그보다 더 아름다운 여백의 시공간...
몽환과 도취를 넘나드는 탐미적 영상 속에서 특유의 자뻑증세 가득한 썰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좀 공허하고 지겹다.
여러 영화들을 통해 뱀파이어 캐릭터는 참 다양하게 진화해 왔다. 짐 자무쉬 감독은 뱀파이어를 고귀한 불멸의 아이콘으로 등극시킨다. 순도높은 생명의 물질, 피 이외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 고고한 족속. 허나 영원히 사는 그들, 삶의 우울과 권태 또한 피할 수 없다. 그에 비하면, 고작 수십년의 삶을 진창에서 헛짓으로 낭비하는 인간좀비들은 얼마나 어리석고 공허한 존재인가...
영상미 수려하다는 말에 개봉하자말자 냉큼 극장으로 달려간 게 실수였다. 예술관이란 간판 걸고 속보이는 장사하는 롯데 시네마. 요즘 극장에선 구경조차 힘든 저화질이다. 음향시설도 구리다. 상영시간 내내 당최 집중이 되질 않았다. 보는 내내 욕지기 씹다 나온다.
그러므로 빛나는 이미지와 최면적인 음악으로 가득한, 텅 빈 이 영화, 최고화질로 다시 보아야만 정당한 평가가 가능할 듯하다.
- 방황하는 칼날(2014)
[이정호] 정재영, 이성민, 서준영, 이수빈, 조두식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 등의 원작자이기도 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
딸의 복수를 행하는 아비의 흔들리는 칼날.
동명의 일본판(2009, 마시코 쇼이치 감독)과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이정호 감독의 한국판은 유혈낭자한 복수극이자 형사물 비슷한 장르다. 반면 일본판은 ‘복수’라고 하는 고전적 주제가 지닌 윤리적 갈등을 밀도있게 성찰한 심리극이다. 스릴러를 노린 듯한 한국판은 오버질에 치중하며 긴장 조성에만 급급하여 실속없이 허세스럽다. 반면 일본판은 생각의 여지를 남기며 느릿하게 전개되는데 은근히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캐릭터 표현은 살짝 아쉽다.
일본판을 훨 재미있게 보았기에 한국판이 상대적으로 못해 보인 작품.
- 역린(2014)
[이재규] 현빈, 정재영, 조정석, 조재현, 한지민, 김성령, 박성웅, 송영창
화려한 배역에 한껏 기름진 영상미.
꽤 독특한 스타일로 새로운 형식의 사극을 추구한 듯하나, 후반부터 이야기가 겉돌며 뜬금없어진다. 근래 식상하도록 보아온 정조 시대의 현실 같지가 않은 것이다. 이야기 전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결정적 반전의 역할을 쥐고 있는 살수 캐릭터가 좀 만화같다는 데서 오는 문제 아닐까 싶다. 넘 감각적 영상에다 작위적으로 긴장을 짜내려 하다보니 이야기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캐릭터들이 부자연스러워진다. 영화가 취한 형식상 빈틈없이 치밀해야 할 리얼리티를 치명적으로 훼손하며, 서로 다른 상상력으로 풀어낸 두 이야기를 억지로 한 틀에 묶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허세스럽고 오글거리는 대사들도 그 삐걱거림에 일조한다.
연기는 모두 훌륭하지만, 이야기와 겉도는 듯 어색함이 있다. 비판 자자했던 한지민의 현대적 캐릭터는 영화 컨셉에는 잘 어울리므로 혼자만 먹을 욕이 아니다. 현빈을 비롯한 다른 배역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로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다 보고 나면, 실속보다 허세가 강한 영화, 란 느낌.
- 끝까지 간다(2013)
[김성훈] 이선균, 조진웅, 신정근, 정만식
세간의 평이 워낙 좋아 꽤 기대했는데, 기대만큼 실망을 준 영화.
시나리오의 전체 얼개는 꽤 좋은 거 같은데, 역시 디테일이 문제였을까? 첨부터 말도 안되는 억지스런 설정으로 제대로 짜증 돋우며 간다. 이후로도 억지스럽거나 의심스런 대목이 자주 띈다. 코믹 코드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망치며 얻는 게 아니라, 치밀하게 의도된 연출에서 와야 한다.
이선균의 콧소리 거슬려서 더 짜증났던 영화.
- 우는 남자(2013)
[이정범] 장동건, 김민희
제목과 달리 시종일관 웃기는 영화다. 함께 본 이는 웃기지도 않는다, 했지만.
사실, 별 기대 않았으니 크게 실망한 건 아니겠다.
장진의 [하이힐]과 비교되었는데 이 영화가 훨씬 못하다. 독창성 없이 홍콩이나 헐리웃물 흉내에 급급한데 이야기조차 별 설득력 없다.
개폼잡는 버릇 여전한 장동건, 아니나 다를까, 똥폼 쩔던 원빈 주연 [아저씨]의 감독 영화다.
괜찮은 배우 김민희는 영화 잘못 골라 낭비되는 느낌.
- 신의 한수(2014)
[조범구]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김인권, 이시영, 안길강
과장되고 진부하다.
바둑을 소재로 했다지만 바둑돌은 따로 놀고 피칠갑만 장하다. 게다가 저 낯뜨겁고 오글거리는 대사들이라니(특히 안성기).
안성기는 예전과 달리 나이들며 영화 고르는 안목이 못해지는 듯. 담백함 부족한 연기도 식상하다.
- 그레이트 뷰티(2013)
[파올로 소렌티노]토니 세르빌로, 사브리나 페렐리, 세레나 그란디, 이사벨라 페라리
꽤나 ~척하지만 좀 느끼하고 오글거린다.
절제없는 이미지, 올바르게 표현되지 못한 성찰은 허세스럽거나 겉돌기 마련.
- 명량(2014)
[김한민] 최민식, 류승룡, 진구, 권율, 이정현, 조진웅, 김명곤, 이승준
영화보기 전엔 왜 최민식인지 의아했다. 보고 나서야 수긍한다.
이순신인 줄 알았더니 올드보이였다. 장도리 하나 들고 16대1로 맞장뜨던.
[최종병기 활]로 살짝 표절 혐의를 받았던 감독의 헐리웃 흉내가 지나치다. 영화 시작하고 장군의 외로운 고뇌나 왜장들 캐릭터 표현까진 제법 그럴듯하다 싶었는데, 이후의 전개는 모든 기대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헐리웃 재난영화나 히어로물이다.
이건 뭐... 헐~!
- 루시(2014)
[뤽 베송]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 최민식, 아므르 웨이크드, 신창수
상상의 여지를 봉쇄하는 코믹 막장극. 보는 내내 헛웃음만...
기본 얼개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인데
숨가쁜 호흡은 설득력과 깊이를 놓치고, 폭력의 홍수는 풀고자하는 썰의 요점을 앗아간다.
훌륭한 배우들인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을 제대로 낭비한다.
빠이빠이~~ 뤽 베송.
- 인터스텔라(2014) ※강력 내용누설!
[크리스토퍼 놀란] 매튜 매키너히, 앤 해서웨이, 제시카 차스테인, 매켄지 포이, 케이시 애플렉, 마이클 케인, 맷 데이먼
부제를 붙인다면 ‘사랑의 블랙홀’쯤이 어떨까 싶다. 제목이 뜻하는 별과 별 사이, 그토록 아득한 거리는 결국/고작 사랑이었나? 스필버그 영화를 보고난 듯한 오글거림.
비슷한 시기에 극장에서 본 또다른 영화 [나를 찾아줘]와 비교해 본다. 접점은 분명하다. 둘 다 열혈 사랑 이야기. 갈증 식지 않았으니 갈 데까지 가 보자는. [나를 찾아줘]가 기구한 치정이라면 [인터스텔라]는 기이한 치정 SF다. 형제의 목을 조르고 아비에게 향하는 사랑, 딸을 향한 속수무책의 사랑, 모두 썩 기이했다. 물론 그것들은 이 영화의 치명적 단점으로 지적받는 서사의 어설픔 때문일 것이다.
블랙홀은 만능의 열쇠구멍이었다. 그 점에선 SF가 아니라 판타지에 가깝다. ‘그 문을 열지 말라’, 는 이성의 명령을 넘어, 금단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희망과 구원이 있더라는....
그러므로 [인터스텔라]가 아무리 과학적, 운운해봤자 저 만능의 블랙홀에 삼켜지고 만다. 모든 간절한 믿음과 사랑들이 불시착하는 신비의 별 [솔라리스], 과학과 이야기를 삼키고선 지고지순 사랑 이야기 하나 뱉어놓는다.
우리가 우주, 라고 말할 때 거긴 무한에의 동경과 경외가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도 바로 그런 우주 이미지를 표현하는 대목들이다. 그런데 우주를 떠돌던 이야기는 끝내 그 무한을 뒤집어엎어 내면화해(삼켜) 버린다. 그의 전작들에서 숱하게 보아온 낯익고 상투적인 그게 이 영화의 반전이란다. 블랙홀이라 불리는 무한우주공간은 자식을 향한 아비의 가장 깊은 갈망 혹은 꿈길로 바뀐다. [인셉션]의 우주이기도 했던, 지식의 무한공간인 도서관을 거쳐 돌아온 아비. 탈지구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떠났다가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젊은 아비. 대체 저건 또 어떤 무의식일까?
죽어가는 지구는 늙어가는 아비의 은유였던 걸까? [나를 찾아줘]를 [내 청춘을 찾아줘]로 읽고 싶어지듯, 사랑의 블랙홀을 [청춘의 블랙홀]로 바꿔읽고 싶어진다. ‘네 소원을 말해 보라’며 안개를 피워대는 알라딘의 램프... 그 대목은 창세의 기밀을 누설하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전혀 닮진 않았다. 이 영화엔 큐브릭의 놀랍도록 서늘하고 섬뜩하도록 황홀한 예감이 없다.
내면의 무한으로부터 거칠게 분리되어 쫓겨난 우주적 자연 혹은 시공간, 그건 죽어가는 지구와 다르지 않다. 폐소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질식시키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 인간에 맞선다. 불안과 절망감만 자극하는 우주 자연, 시각적으로야 장관이지만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으로서의 자연.
이쯤에서 묻고 싶어진다. ‘우주로’의 ‘모험’을 외치던 호기롭던 그 영화는 어디로 가고, 왜 타르코프스키가 창의하고 소더버그가 재해석했던 [솔라리스]가 어른거리는가?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 [인터스텔라]는 헐렁하고 이상한 이야기들로 삐걱거린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행위와 갈등요소들이 설득력이 없다. 결과적으로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서사의 창의성도 떨어지고 윤리적 질문의 수위는 낮다. 우주공간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아날로그 질감을 살린 비주얼만 풍성하고 빼어나다. 또다시 보고 싶어질 만큼.
억지스럽거나 이상한 대목들을 몇 지적해 본다.
쿠퍼(매튜 매키너히)는 왜 그리 터무니없이 급히 떠났을까? 현실에 맞게 상식적인 출발이 이루어졌더라면 딸과의 갈등은 생기지 않거나 최소화되었을 것이다. 그 갈등은 그가 필사적으로 돌아오려 하는 이유이자 이 영화의 주동력이지만, 필연보다 우연의 계기에 기댄 설정이다. 영화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자주 삐걱거리며 어색한 상황을 낳기도 한다.
머피(제시카 차스테인)과 오빠 톰(케이시 애플렉)의 관계도 좀 이상하다. 성인이 된 이후 한동안 남처럼 무심하게 지내오던 남매사이인데, 영화 후반부 느닷없이 머피가 오빠를 죽일놈 취급하며 지랄한다. 뜨악한 오바질이다.
문제는 갈등의 구도다. 남매의 대립은 병들어 죽어가는 지구에 대한 태도와 맞물려 꽤 만만찮은 윤리적 갈등을 품고 있는데, 극히 단순한 선악구도로 다루어진다. 남매의 말다툼과 우주에서 쿠퍼와 만 박사(맷 데이먼)의 갈등장면은 번갈아 등장하는데, 이는 그들의 갈등이 내포한 윤리적 긴장을 덮어버린 채 편파적으로 보이게 한다. 깊이 없는 갈등의 전형적 예다.
만 박사가 맛이 가서 사고치는 대목도 이상하다. 지구를 떠나오게 만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주선을 탈취한다 해도 그는 갈 곳이 없다. 그런데 왜 그 난리부르스였을까? 스스로 주장하는 ‘생존본능’은 그의 행동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한다. 이유없는 가해이거나 자기파괴적 악행처럼 보인다. 딱 부러지는 악역이 없는 이야기라 넘 싱거워 보였을까? 그래봤자 그는 실패한 캐릭터의 전형이다.
만 박사에게 배신당한 쿠퍼를 구조하는 긴박한 장면과, 오빠의 가족들을 살리려는(?) 아멜리아가 농장에 불을 지르는 대목 역시 교차하며 전개된다. 별 설득력 없는 서사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빈약한 선악 구도도 좀 강화해 보려는 연출 같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성서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동감이다. 그러나 디테일한 상징들 때문이 아니라, 억지스럽게 설정된 선악 이원의 단순한 관점을 밀고 나가 사랑타령으로 끝내는 게 그러하다. 누군가는 그 사랑을 가족애라 했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넘본다. 설득력이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그것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 종교나 가족을 넘어가는 범신론적 사랑이다. 궁극의 우주 자연, 블랙홀은 오로지한 마음들의 사랑 한마당이다.
아멜리아(앤 해서웨이)가 데이터의 신뢰성과 자신의 사랑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대목도 좀 뜨악하다. 과학보다 마음을 믿겠다는 과학자라니... 이건 원래 쿠퍼나 만 박사의 몫 아니었던가? 어색하고 작위적인 설정이다. 어쨌든 사랑을 주절거리며 그 별에 가고 싶어하는 그녀의 대사는 영화의 결말까지 강하게 암시한다. 과학의 한계를 사랑으로 넘어간다는 설정, [솔라리스]의 구도 그대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이 영화의 야심찬 도입부는 인간의 영성에 대한 믿음으로 사랑의 힘을 예감케 하는 [솔라리스]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 않았던가.
[나를 찾아줘]에서 그들은 중얼거린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인터스텔라]는 어쩌다가 ‘우주로’의 꿈이 ‘집으로’가 되어버렸을까?
영화에서 브랜드박사(마이클 케인)가 읊조리는 싯구가 있었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시오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df day;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사라지는 빛에 대하여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딜런 토마스의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란 시의 일부다. 공교롭게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에도 딜런 토마스의 싯구가 인용되었더랬다(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에 대해선 예전의 감상이 있다). 이래저래 닮은 두 영화.
연기는 모두 훌륭하다.
어린 머피역의 매캔지 포이와 성장한 머피 제시카 차스테인의 싱크로율이 100%다. 실제 동생같아 보인다.
톰 역의 케이시 애플렉은 다면적이고 모호한 캐릭터 표현이 뛰어난 배우인데 단순하고 우둔한 인물 역할이라 좀 아깝다.
이 영화에선 음악의 역할이 아주 크다. 불안을 고조시키며 기이한 도취를 자아내는 한스 짐머의 반복적인 음향. 별 설득력 없는 갈등상황조차 극도의 긴장을 불어넣는 놀라운 힘이 있다. 초월적이지 않으면서도 장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연출에도 크게 기여한다. 그의 음악 없이 이 영화를 본다면 정말 맥빠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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