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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2019 영화들

by 숲길로 2019. 12. 25.

올해 본 중 인상깊었던 영화들 몇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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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 Midsommar (2019) 170분

감독 : 아리 에스터

출연 : 플로렌스 퓨, 잭 레이너, 윌 폴터, 윌리엄 잭슨 하퍼 외

저 포스터 표정보다 훨씬 강렬하고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 스틸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질 않는다.

(플로렌스 퓨의) 그 표정은 이 영화를 단 하나의 장면에 함축하는 진정한 대미大尾다.

별도의 장황한 썰 있으므로...




애드 아스트라 Ad Astra (2019) 123분

감독 : 제임스 그레이

출연 : 브래드 피트, 토미 리 존스 외

그는 이건 SF가 아니라 했다. 난 아니긴 왜, 라고 응수했다.

엄격히 말해 이 영화는 SF가 아니다. 과학이 없거나 빈약하다. 감독의 전작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서'의 속편이라 해도 좋을, 아비 찾아(죽이러!) 삼만리, 일종의 심리 판타지다. '아비 살해'의 서사, 서구에선 프로이트 이전부터 고대 신화 거슬러오르며 워낙 상투화된 소재다. 더 이상 독창적일 수 있을까 싶지만, 신기루 도시 찾아 헤매는 사내의 욕망을 그린 전작에서 묵직한 주제 다루는 능력이 인상적이던 감독이니만치 믿고 본 영화였다. 과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랄까? 낡은 주제를 새롭게 포장하는 솜씨가 썩 돋보인다. 

영웅이든 반反영웅이든 저 아비살해의 신화는 '오이디푸스'의 변주이거나 '스타워즈'의 '아임유어파더 I'm Your Father'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허나 SF뿐 아니라 여타 영화들의 무수한 기시감을 불러오면서도 이 영화는 끝내 독창적이다. SF 아니다, 에 동의하기 힘들었던 이유이기도 한 그 대목은, '아비'의 자리를 우주적 무한(혹은 무無) 혹은 부재不在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미지의 무엇으로 확고히 한다는 점이다. 

그게 뭐 현대적이냐고? 글쎄, 그럴지 모르겠다. 하지만 치밀한 과학적 참조를 표방하며 '(젊어진) 아비 되기' 신파극 한편으로 치달렸던 '인터스텔라'와 비교한다면, 영원히 반복되는 실패를 예견하는 무한 욕망의 소실점으로서의 우주, 란 설정과 불가능한 아비되기, 의 탄탄한 서사구조는 분명 고전적 주제의식에 충실하면서도 충분히 현대적인 감각 아닐까 싶다.

'Ad Astra 별들에게로' 란 제목도 멋지다.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혹은 이미 죽어 있었으므로 죽일 수도 없는) 아비의 자리, '없음'을 은폐하는 헛껍데기 표지로서의 아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그곳으로 기울어지는 마음의 행로, 가없는 그 소멸의 별자리들을 향하는 불가항력의 집착들이 빚어내는 아비의 수많은 물신적 형상들과, 거친 파괴의 칼날을 휘두르며 나아가는 아들의 어두운 궤적(역시 오이디푸스?)...


보는 내내 많은 영화들의 이미지가 스쳐간다. '스페이스 오딧세이'부터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또 '지옥의 묵시록'까지...아주 영리한 차용이다. 가져오되 교묘하게 비튼다. 가령 도무지 납득불가한 캐릭터이던 '인터스텔라'의 만Mann 박사가 퍽 설득력있는 방식으로 재현된다거나, '지옥의 묵시록' 서사구조를 빼다박았다거나, '그래비티' 어떤 위기장면과 흡사하면서도 정반대의 메시지를 드러낸다는 식으로...

천상 사내들의 영화, 란 비판(혹은 열광)은 피하기 힘들겠다. 헛것을 향한 저 강박은 어쩔수 없이 사내들의 것이고, 힘에 부치면 (영화가 잘 보여주듯) 그 공허의 과실果實 뒤로 훌쩍 사라져, 끌어내려지느니 소멸에 삼켜지고 말겠다는 게 유사 이래 뭇사내들의 비겁한 불멸 전략 아니던가 말이다.       





기생충 (2019) 131분

감독 : 봉준호

출연 :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봉준호 최고의 영화, 라 해도 될까? 초기작 '플란더스의 개' 이래 수작들의 장점을 고루 모아놓은 듯하다. '설국열차'의 경직성, '옥자'의 허세 같은 건 보이질 않는다. 힘 빼고 깨알같은 잔재미들 엄청 촘촘해졌다. 사실성에 입각한 설득력 뿐 아니라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가는 응집력 폭발력도 대단하다.

누군가 비판적인 뜻으로, 이 영화엔, 아니 봉준호 영화엔 '계급'이 보이지 않는다 했다. 아마 '계급'이 아니라 '계급의식'일 것이다. 

맞다. 봉준호 영화엔 계급도 계급의식도 없다. 걍 현실이 있다. 계급이나 계급의식은 현실에서 추상되는 것이다. 그건 감독 몫이 아니라 관객 몫이다. 봉준호는 계몽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각성하지 않는다. 짓눌리거나 폭발한다. 혹은 소멸한다. 환타지를 현실로, 현실을 판타지로 만드는 힘, 봉준호 영화에선 종종 에밀 쿠스트리차를 느낀다.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휘발할 뿐.

벽 사이에 낀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물에 잠긴 몸은 항구적으로 가라앉는다. 존재의 무게를 넘어서는 (경박에 이르는) 필사적인 가벼움의 힘으로만, 중력을 넘어서는 부력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을 따름이다. 그게 세상이다. 바깥은 없다.

 




경계선 Border (2018) 110분

감독 : 알리 아바시

주연 : 에바 멜란데르, 에로 밀로노프


전에 끄적거려 논 거 다시 보니 좀 아니다, 싶어 다른 얘기를 하고 싶은데

막상 할말이 없다. 기억 흐리다.

영화 다시 보면 다른 얘기 할 게 있겠으나 당장은 보고 싶지가 않다. 다만

다시 보아도 좋은 영화일 건 분명하다.




콜드 워 Cold War, Zimna wojna (2018)

감독 : 파벨 포리코브스키

주연 : 요안나 쿨릭, 토마스 코트

멜로 취향 아닌데 불구하고 찾아서 본 영화.

흑백의 영상이 탁월하다. 영상의 엄청난 흡인력에 놀랐던 '이다Ida(2013)', 그 흑백영화 감독의 작품이다.


사랑, 음악, 그리고 체제(혹은 국가). 한 순간도 일치하지 못하고 내내 어긋나는 것들. 그 어긋남이 애잔하고 짠하고 때로 시들해진다. 

사랑이라는 회로Loop와 체제라는 과정Process의 차이, 양자는 전혀 다른 생태를 가졌다. 오래도록 어긋나는 건 사랑이기도 하지만  체제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저 사랑은 체제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을까? 천천히 오래오래 속으로 타는 불, 냉전,이라는 사랑 혹은 체제. 잡히지 못하고 겉도는 이름들, 국가와 민족.   

어디에 얼마나 필사적이었을까? 체제도 음악도 사랑의 조건은 아니었다. 사랑은 다만, 오로지, 사랑이었을 뿐.

이야기는 연연하지 않고 시절과 국경을 툭툭, 설렁설렁 건너간다. 그토록 절실했을까, 그 사랑?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그것,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돌아갈 곳은

체제도, 국가도, 음악조차 아니었음을, 오로지 사랑이었음을. 

사랑의 묘약, 같은 걸 한줌 털어넣고 함께할 영원의 시간을 기다리는지 모르나,

이미 그렇게 그들은 영원하다. 기다림이라는, 현재 멈춤, 정지의 순간.



아름다운 영상에 겹쳐지는 음악이 무척 아름다운 영화다.

'두 개의 심장 네개의 눈...'

을 노래하는 여러 버전들. 다시 듣고 싶다.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The Favourite (2018) 119분

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주연 : 올리비아 콜맨, 엠마 스톤, 레이첼 와이즈

보면서도 한동안 감독 특유의 건조하고 비현실적인 연출이 실존인물 다루는 사극에 어울리는 게 맞나, 싶었지만

란티모스 감독다운 독한 대사와 상황설정이 일품 연기와 어우러져 독특한 캐릭터를 빚어내기에 이르면

역시 솜씨는 살아있네, 싶던 흥미진진한 영화.

다만 사극 일반에서 흔히 보는 입체적이고 깊이감 있는 캐릭터라든가 긴장감 넘치는 사건 전개는 아니다. 감독의 영화들이 다 그렇듯 냉소와 풍자 가득, 앙상하면서 까실한 연극적 구성이 빼어난 연출이다. 역사적 사건의 전개보다는 권력다툼하는 인물들 사이의 사소한 상황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이라든가 난데없는 돌출상황의 배치가 쏠쏠한 흥미요소다. 그리고 그 토끼, 기발하기 그지없다.

영국 드라마 '나이트 매니저'와 '브로드처치'에서 눈여겨본 '올리비아 콜맨'의 뛰어난 연기만으로도 놓칠 수 없는 작품.      





강변호텔 (2018) 95분

감독 : 홍상수

주연 : 기주봉, 김민희, 송선미, 권해효, 유준상, 신석호


보다가 뒤집어진 영화.

영원히 결다른 너와 내 살肉의 인상들로 펼쳐지는 응큼의 약동과 욕망의 작렬,은 퇴색하고 잔소리가 늘었다. 보기 덜 좋다, 해야 할까?

찌질한 욕망의 왕자 홍상수 아닌 징징대는 홍상수라니, 솔직히 재미 덜했지만 죽는다는 설정에선 배잡고 뒤집어질밖에.

누가 감히 그럴 수 있을까, 엄살도 대가이니

역시, 홍상수.





조커 Joker (2019) 123분

감독 : 토드 필립스

출연 : 호아킨 피닉스, 재지 비츠, 로버트 드 니로 외


(안좋은 쪽으로 더) 말 많던 영화, 알고보니 별 말도 안되는 말들이었지만  

좋아하는 배우 호아킨 피닉스 신들린 연기 작품이니 그만으로도 볼 가치 충분했다.

막상 보고 나니

충실한 서사보다 연기로 영화의 설득력을 만들었다,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는 따위의 주장, 허접해 보인다.

배우의 연기를 떠나서라도 탄탄한 서사와 치밀한 연출력 돋보이는 훌륭한 영화다.   


 



닥터 슬립 Doctor Sleep (2019) 152분

감독 : 마이크 플래너건

주연 : 이완 맥그리거, 레베카 퍼거슨, 카일리 커란

호러 전문감독의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자 스티븐 킹이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무척 싫어했단 얘기, 수긍이 간다.

냉철하고 이지적인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엔 초자연적 요소가 없다. (물활론物活論) 싹 털어내고, 아주 합리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미치광이 영화가 '샤이닝'이다. 그럼에도 물론 충분히 공포스러운 수작이긴 하다. 

킹은 철두철미 합리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광기를 사물의 초자연적이고 섬뜩한Uncanny 현현顯現으로 표현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그의 귀신들린 사물은 인간의 마음에서 유래하지만 전혀 헛것인 게 아니다. 사물은 살아 인간을 침범하고 유린한다. 그럼에도 유치하지 않은 추종 불허의 공포감과 독창성까지 발휘하니 킹은 가히 천재 작가라 할만하다. 어쨌건 스티븐 킹과 스탠리 큐브릭은 근본적으로 코드가 다르다,는 것. 

마이크 플래너건은 뛰어난 호러 감독이다. 그의 넷플릭스 드라마 '힐하우스의 유령'은 상당한 수작이다. 다만 그의 연출 방식에서 한가지 아쉬운 건 (큐브릭의 합리주의와는 또다르게) 초자연 현상을 굳이 합리적 동기로 해석해내려는 강박같은 게 있더라는 것.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 역시 거슬린다. 

큐브릭의 '샤이닝'을 보지 않아도 이 영화는 (워낙 탄탄한 이야기 골격 덕분인지) 충분히 재미있고 볼거리 화려하다. 배우들 볼맛도 좋다. 늙어가는 이완 맥그리거,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레베카 퍼거슨의 연기도 즐겁다.

    



더 킹 : 헨리5세 The King (2019) 140분

감독 : 데이비드 미쇼

출연 : 티모시 샬라메, 조엘 에저튼, 숀 해리스, 로버트 패틴슨 외


부산영화제였나? 조기매진 난리였다기에 셰익스피어극, 그것도 사극 영화가 먹혔다고? 헐~~

싶었다. 꽃미남 티모시 샬라메 보려고 애들 잠설친 덕이겠지, 하며 큰 기대 않았는데

예상과 달리 썩 잘 만든 영화. 데이비드 미쇼란 감독의 이름을 찾아보게 한다. 셰익스피어 원작다운 무게를 서늘한 재기와 비교적 현대적인 감각으로 잘 살린 듯하고, 채도 낮춘 색감과 와이드 화면비율도 서늘한 무게감 더한다. 묵혔다 다시 볼만한 수작이다.  


가장 놀라운 건 티모시 샬라메.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에 걸맞는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미 바이 유어맨'의 호연에도 불구, 수작 영화 덕본 예쁘장하고 연기력 좋은 소년배우쯤으로 여겼다. 95년생 우리 나이로 스물다섯, 열혈 꽃청춘이지만, 헨리5세의 무게에 짓눌리지도 애들처럼 들뜨지도 않는다. 대성할 녀석이다.

또 로버트 패틴슨. (연기력과 별도로) 볼때마다 밥맛이었는데 여기선 배역 비중 이상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숀 해리스. '미션 임파서블'에서 돋보이는 악역, 여기서도 세익스피어적 악당의 포스를 멋지게 발휘한다.

아쉬운 대목은 조엘 애저튼. 배우의 호연에도 불구, '팔스타프' 라는 셰익스피어극 유명 캐릭터 면모를 십분 살리기엔 부족함 느껴진다.  




아이리시맨 The Irishman (2019) 209분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안나 파킨 외

그 시대, 다 그렇게 먹고살기 위한 것이었다는 변명, 뱉지 못하고 삼킨 채 자꾸만 돌아보는 아비. 헛것을 향해 끝없이 투신하며 이름만은 영원히 나부끼길 갈망하던 '애드 아스트라'의 아비와는 정반대의 행보. 아비가 되지 못한 이 마초 악당들은 필사적으로(어쩌면 짐짓!)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안쓰러워 함께 돌아봐주고 싶어질만큼.

지미 호파, 케네디 일가... 그리고 마피아, 연예계. 타인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아비들의 권력다툼과 자존심 싸움은 사회와 국가의 이해에 노골적으로 투영된다. 생활로서의 범죄와 국가적 관심 사건은 동전의 양면일 따름이니, 사내들의 어깨동무에 나라가, 노조가, 지역사회가 줄줄이 얹혀 어디론가 실려간다. 오십보 백보, 으리으리 의리의 경중을 털어내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분별할 수 있을까? 싶도록.          


긴 러닝타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았지만 대단한 감흥이나 울림은 없다. 그저 좀 짠해지고 싶었다, 랄까? 마초 사랑 변함없는 노감독의 자기연민마저 느껴진다,라면 과민일까? 허나 나이 들어가며 가장 피해야 할 게 자기연민일 터이니... 


평론가들의 이구동성 극찬은 좀 의아하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빈틈없는 세공 솜씨는 노련하기 그지없지만, 그들 개인사가 곧 미국 근현대사가 되는, 지난 세기 스타일의 마초 범죄담은 이제 좀 지겹고(덜 와닿아서?), 범죄는 범죄일 뿐 어떤 위엄도 없는 무미건조한 밥벌이 노릇이란 묘사 방식도 진부하다. 기시감 만연하는 노년 풍경조차 그저 상투적으로 물흐르듯 매끄러울 뿐이다.

감탄 자아내는 조 페시의 연기에선 왕년의 수작 '좋은 친구들'이 어른거리지만 그저 그뿐. 알 파치노 또한 마찬가지. 오히려 명배우들의 명연기 아니었더라면 과연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 싶은 심술궂은 의문마저 모락모락...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2019) 161분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마초이즘이 지겨워지듯, 타란티노의 재기 또한 이젠 좀 지겹다, 라고 해야겠지만

여전히 그의 영화는 흥미진진하고 그 재기엔 새삼 감탄이다. 

브루스 리, 에피소드 같은 건 타란티노 아니면 누가 저리 재밌게 그려낼 수 있을까?

연기들 나무랄 데 없지만, 이야기의 전반부 좀 느슨한 느낌과 캐릭터의 어딘가 허전함은 나만의 느낌일까?

늙어가는 타란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