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봉 가며 건너보는 진행능선.
맨 왼쪽 격자봉, 다음 붕우리 희끗한 곳이 누룩바위, 뽀래기재는 가늠되지 않고 다음 385.3봉, 잘룩한 선창리재 지나 387.6봉.
부용동까지.
왼쪽 387.6봉은 오르지 않고 남은사 거쳐 고개 넘어 정자리로 가게 된다.
당초엔 종주하고 싶었으나 선답기록 찾지 못해 쉬운 코스로...
당겨본 곡수당쪽?
보길도는 참 오래 궁금하던 곳이었다. 산 본격 댕기기 전엔 섬 곳곳에 있는 누군가들의 흔적이 궁금했다.
위선과 허세, 달리 말해 고지식과 충효 윤리로 일관하던 조선조의 선비들 기준으로는 거의 일탈에 가까울만큼 꽤나 자기 욕망에 솔직하면서 풍류 넘치는 귀족의 삶을 살았던 윤선도란 인물의 행적이 흥미로웠고, 시대를 앞서가던 그의 안목이 궁금했다. 기웃거릴 곳 참 많았던 그 당시...
허나 이제 사람의 흔적은 자못 심드렁해졌으니, 못내 궁금한 건 깊고 푸른 저 산길들, 길의 욕망이 숲의 푸른 혈맥을 따라 일렁이며 흘러가는 세상 바깥, 그 길 헤아리다 끝내 사라지는 흔적없는 은밀의 시간들이다.
당겨본 동천석실.
안산이랬던가, 산중턱에 걸린 구중궁궐 안 부러울 별채.
품격을 넘어 거의 기이에 이르는 집요한 취향을 가능케 했던 건 고산의 탁월한 안목과 대지주의 부富와 권력다툼 등진 고고함.
다시금 먼산과 바다 한 번 바라보며...
남국숲의 무궁무진...
나중에 정자에서 동천 가며 택시기사에게 들은 얘기로,
보길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식생이 다양한 섬이라고. 불 한 번 안 난 섬산이라고.
까막눈이지만 충분히 수긍이 간다. 다양하려면 우선 풍부하고 볼 일이니, 이런 섬숲이 또 어디에 있던가.
산의 깊이가 높이나 크기와 무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임을.
드디어 격자봉.
조망이 좀 답답한 곳이지만(근데 웬 쓸데없는 전망데크?) 뽀죽봉과 망월봉이 첨으로 한눈에 드는 곳이니 그 자체로 별격.
큰기미쪽 능선 너머 멀리 가물거리는 추자도 당겨본다.
쾌청이라면 왼쪽으로 제주도 보일 텐데... 아쉽다.
큰기미와 작은기미 해안쪽 능선 사이 계곡
다시, 추자
누룩바위
?
전복밭 관리배들인가? 바쁘다.
오월 완도는 농번기인갑다.
누룩바위에서 돌아본 지나온 능선.
오른쪽 둥근 봉우리가 격자봉.
격자봉
보길도 산릉은 부드럽고 숲은 깊다.
돌아본 누룩바위
둥글둥글한 산릉, 도중에 불쑥 솟았거나 벗겨졌거나 하면 조망처들.
가파르지 않으니 걷기에 수월하고, 조망처 많으니 지루함 없다.
큰기미쪽 능선 너머 뽀죽산
드뎌 망월봉 능선이 한눈에 든다. 미끈하다.
뽀죽과 망월
뽀죽봉 위에 배 간다. 너머 아득한 추자...
부용동과 보옥리 잇는 고개 뽀래기재 지나 망월봉 가는 길.
길은 한결 가늘어지고 호젓해졌다.
망월봉 가는 길은 오늘 코스 전구간 중에서도 유난히 인상적인데 하늘 보이지 않을만큼 우거지고 기복이 별로 없어 산책하듯 걷는 맛이 일품이다.
지척의 망월봉과 뽀죽봉이 보이는 조망처에서
뽀죽봉과 치治도.
429봉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는 줄기.
출렁출렁~하다가 그냥 풍덩~! 이다.
비상하는 형세인가?
날개짓에 편승하여 목에 앉은 보옥리.
서남쪽으로 가없는 바다 펼쳐지는 망월봉 조망은 왠지 울컥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
남으로 추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제주), 서쪽으로는 진도.
선창리
왼쪽의 네 섬들, 갈도, 옥매도, 미역섬, 상도(윗섬).
그리고 가장 오른쪽 서넙도 넙도, 그 왼쪽 섬 이름들이 재밌다. 멍섬, 닭섬.
닭섬은 산山 자처럼 생겼다.
넙도 너머 멀리, 당겨본 진도 첨찰산
멍섬 너머 멀리, 진도 여귀산.
멍도 너머 길게 생긴 섬은 죽굴도란 재밌는 이름.
다시, 뽀죽산
망월봉 뒤돌아서 내려서며 지나온 길 굽어보다.
망월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429봉과 뒤로 빼꼼한 격자봉. 왼쪽은 잠시 후 지나게 될 385.3봉
385.3봉 지나 선창리재 내려섰다 올라서면 387.6봉.
망월봉 삼거리와 385.3봉 지나 선창리재 가는 길에 본 망월봉 능선. 곧다.
선창리
가야할 선창리재 방향
선창리재와 387.6봉
선창리재 내림길은 곳곳 조망바위다.
특이하게도, 바위 곳곳 물웅덩이다.
이런 식물도 자라고...
물웅덩이가 무척 많다.
선창리재 직전, 기도터로 쓰였을 법한 굴이 보인다.
굴에서
선창리재 가는 길
너른 임도 지나가는 선창리재에서는 임도따라 보길저수지 방향으로 50m 남짓 가다가 왼쪽 산자락을 따르는 흐린 산길로 접어든다.
(선창리재에서 직진 산길은 산소 가는 길).
이후 남은사 향해 가파르게 오르는 한동안 좀 묵었다. 발길 드문 옛길이 물길이 되어 패이며 돌바닥 드러내고 낙엽도 쌓였다.
잠시 가파르다가 숨돌릴 만하면 길은 다시 뚜렷해진다. 여느 암자 찾아가는 그윽한 산길이다.
길 왼쪽, 저 거대한 삼각형 바위와 큰 나무들 보이는 곳이 남은사 들머리.
첩첩 산중에 자리잡은 듯한 분위기의 남은사는 살짝 오르막길 따라 잠시 다녀온다.
머위 우거진 습지
숲터널 지나고..
또 터널
왼쪽으로 남은사 절집 드는 터널.
여기선 왠지 내 발자국 소리조차 거슬리는 듯해
적막만 엿보고 돌아나온다.
절에서 돌아나와 387.6봉 능선 고개를 향해 몇 걸음 가니 동쪽으로 썩 좋은 길 나 있다. 부용동으로 이어질 성 싶은데, 남은사 오르내리는 주등로 아닐까 싶다.
고개에 이르니 이번엔 서쪽(387.6봉)으로 길 뚜렷한데 나무로 막아놓았다. 산소길이거나 387.6봉 가는 길일 것이다. 그럼 거기서 선창리재로 가는 능선길이 있을까?
선답기록은 그리 길이 없다기에 난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남은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또, 혹시 남은사 갈림 직후의 동쪽 길은 보길저수지로도 가겠지만 보길도 환주 능선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위 지도에는 387.6봉에서 이어지는 334.1봉 남쪽에 오운대五雲臺라는 지점이 표기되어 있는데, 혹시 거기를 거쳐 동천석실로 연결되지나 않을까? 여느 향촌 지배 사족들처럼 고산 역시 보길도 일대 수많은 지점들을 독자적으로 명명하며 놀이터나 글의 소재로 삼았다. 오운대도 그 중 하나일 테고, 동천석실이 동쪽 지척이니 당시엔 두 곳을 잇는 길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오운대의 답사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이름만 여기저기 너풀거린다). 유력한 대지주 노릇과 보길도 놀이터 경영을 병행했던 그 창의력과 추진력으로 보아 고산은 대단히 정력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보길도 전역을, 섬 환주 능선과 산자락 여기저기 수도없이 걸어 오르내리며 숲 좋은 길이나 조망 좋은 바위, 경관 좋은 터는 남김없이 섭렵했을 것이다.
이번 산행은 선창리재 북쪽 능선은 전혀 밟아보지 못하는 경로다. 보길도 반 남짓 능선만 걷는 셈인데, 기회되면 선창리재 이후 구간도 함 더듬어보고 싶어진다. 이런 욕심이 생기는 건, 당시의 섬살림과 풍류가 분간없이 얽히며 보길도 산자락 곳곳에 남겨놓았을 흔적들을 잔상으로나마 엿볼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고, 또 한편 보길도 상록활엽숲 산릉이 워낙 부드러운 데다 그 속살이 의외로 까칠하지 않아 생겨난 안일하고 성급한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남은사에서 고개 넘어 정자리 가는 길은 오랜 발길의 정취 물씬한 옛길이다. 물골만큼 깊게 패인 바닥 곳곳 바윗돌이 드러나고 우에는 이끼가 끼었다. 다시 그 위를 상록활엽 낙엽이 덮이고, 길옆 불거진 바위엔 앙증맞은 돌들이 쌓여있다. 이번 산행길 내내 느낀 저렴하고 푸짐한 감상 중 하나는, 상록활엽수의 낙엽을 이렇게나 푸짐히 밟아보는 게 가능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기억컨데 이런 경험은 첨이다.
상록활엽 낙엽들, 기름지고 두터운 잎이니 자칫 미끄럽기도 하다.
북바위 갈림길.
남은사 3km는 틀렸다. 길게 잡아도 1.5km나 될까?
북바위 무리 아래는 지나갈 수 있는 굴이다.
북바위, 두드리는 북바위?
원래 저렇게 얹힌 돌이 두개였는데 하나는 굴려버리고 하나만 남았다나.
여기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는데, 꽤 낯익은 서사 구조다.
이 북바위는 좌대마냥 두 개의 바위가 20m의 사각형 큰바위를 떠받치고 있는데, 이 바위가 울면 여기서 건너다 보이는 넙도(芿島)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돌울림을 해왔던 이 북바위는 원래 똑같이 생긴 2개의 바위가 나란히 있었는데, 이 바위가 울 때마다 넙도처녀들의 바람기를 걷잡을 수가 없어서 딸을 가진 넙도사람들이 뒤늦게야 이러한 사실을 알고 대책을 강구한 끝에 바람없는 조용한 날을 가려 북바위로 몰려가 작은 북바위 하나를 바다로 굴려 집어넣어 버렸다. 그 후부터 북바위는 울지 않았고 넙도처녀들도 얌전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그 바위 하나만은 이러한 전설을 안고 의젓이 서있다.(출처: Daum 모 까페)
한 쌍의 바위가 바람에 울면 건너 섬 처자들이 바람이 든다(난다), 는 설정은 보편적인 형식이되 나름 독특하고 기발한 소재다.
서양 중세 기독교 문명이 북유럽 여러 게르만 문화들을 충격, 포섭하는 과정에서 억압되거나 왜곡 은폐된 욕망틀이 다양한 신화 전설들로 농축되었듯이,
이 북바위 전설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울나라 도처에서 보이는 유교 문화 전래 설화의 일종인 듯하다. 중앙의 집권적 지배세력이 강요하는 문명의 침투가 느렸던 섬이나 산간 오지에 특히 이런 류의 전설이 많이 보이는데(도처의 옥녀 전설 등), 문명 교화 이전의 분방하고 야성적인 욕망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며 교화(억압?)해낸 가부장적 유교 문화의 자부심같은 게 엿보인다(그럼에도 남는 일말의 짠함은 문명화의 댓가인 상실 혹은 결여의 감각이랄까).
물론 좀 먹물스런 관점에선, 저 한 쌍의 북바위는 금기에 구속받지 않는 원초적 아비의 상징이나 형상이기도 하기에, 소위 아비살해(거세)를 통한 상징적 질서에로의 편입이란 문명화 일반의 이야기틀이 여기서도 예외없이 드러나는 바, 저 전설이 유교문화의 충격 흔적이 아닌 더 원초적이고 선사적인 욕망의 출현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없겠다. 그런 관점에서, 굴러떨어뜨렸다는 작은 북바위는 언제나 이미-거기-없었던 것이지만 또한 거기 있었다고 가정되는 무엇이다.
북바위 등지고 본 멍도(좌)와 넙도
북바위 앞, 시야를 가리는 둔해 보이는 바위 무리.
아랫쪽에서 보면 좀 더 날렵해 보일까.
수구목재 건너 282.8봉.
너머 멀리 소안도와 오전보다 좀 더 선명해진 듯한 청산도. 당겨본다.
거 잠시 대기,
그나저나 바람 불어도 북바위는 울지 못하누만...
침묵하는 바위.
돌출한 북바위가 굽어보듯 건너보는
높은 산이라곤 없이 넙적 펑퍼짐한 넙도.
이런 직관적이고 다분히 물신적인 지세감응형 이야기틀은 우리나라 전설의 또 한 특징인 듯.
가운데, 노화도의 노록도.
사리때 바닷길이 열리기도 한다는 섬.
노록도 너머 흑일도, 그 너머 땅끝으로 이어지는 달마산릉과 두륜산릉.
넙도 너머... 진도 여귀산릉
넙도 너머... 대소 장구도와 그 너머 진도 첨찰산릉
북바위에서 되돌아와...
산행 막바지길로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돌길따라 정자리 내려선다.
정자리에서 돌아보는 북바위
북바위 오른쪽으로 펑퍼짐한 바위 보인다. 삼거리로 돌아가지 않고 저리 내려서도 되었겠다. 숲은 비교적 깨끗했으니.
저 너럭바위에서 북바위 올려다보는 눈맛이 썩 괜찮을 듯.
정자리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택시를 불러 노화도 동천까지 간다. 기사는 전복 양식 얘기를 끝없이 풀어가며 느릿느릿 달린다.
정말 아시는 것도 많네, 덕분에 제법 먼 거리가 심심치 않다.
(정자에서 동천까지 요금 17000원).
동천에서 5시 20분 완도행 배에 오른다.
오후 들어 점점 깨끗해지는 시야. 승선하며 올려다보는 구도 다릿발이 부시게 희다.
멀리 횡간도 당겨본다.
지친 몸 잠시 뉘였다가...
쾌청 하늘 바다와 섬 그림 궁금하여 좀 일찌감치 나와본다.
저쪽은 또 어딜까? 청산도 같다.
조금 더 당겨본 청산도.
가운데 펑퍼짐한 산릉이 매봉산 같다.
등지고 온 보길도(가장 뒷쪽), 왼쪽 소안도, 오른쪽 횡간도.
슬쩍 당겨본 모습
달마산릉
접안 앞두고 다가가며 보는 완도 상황봉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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