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11월 오후, 창밖엔 진눈깨비 내리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또다시 대규모 촛불시위가 진행 중이다.
어저께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지난 주말 동성로 촛불집회에 나가보았더라면서,
이번 주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가는 김에 광화문도 다녀올 거라 했다.
하루하루가 역사에 기록될 장면들만 같은 시절이 흘러간다.
귀한 시간들이다.
편안히 TV 앞에 앉아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의 물결을 본다.
촛불은,
대의민주제의 법과 질서란 미명 아래 아득히 멀어져버린 그 자신의 기원起源을 불러내어
오늘의 거리에서 평화적으로 재현한다.
고상하게 포장되고 그럴 듯하게 신비화된 우리 삶의 기원에 어미아비의 성교라는 발설키 힘든 장면이 숨어있듯,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에는 대중의 요구에 의한 ‘왕의 처형’이란 가공할 외설적 장면이 도사리고 있다.
저 평화롭게 술렁이는 ‘거리’는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한 폭력적 추문의 장소이자,
대의민주제의 위임받은 권력이 애써 감추고 싶은 ‘직접민주’라는 핵심 DNA인 셈이다.
그러므로 ‘지금’ 누군가들이 들먹이는 거리 대對 법질서의 구도는 부당하고 수상쩍다.
거리는 법질서의 바깥이 아니라 그 뿌리에 자리잡고 있다.
뿌리를 부정하며 꽃만 상찬하는 것은, 의도는 감춘 채 이익만을 내세우는 주장만큼 불온하다.
눈을 돌리니 또다른 광경이 든다.
지난 20세기 어느 시간대에 멈춰버린 구중심처,
민주국가 최고권력이란 가면이 벗겨진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것들.
태반주사, 프로포폴, 비아그라, 염산에페드린...
촛불 일렁이는 거리가 민주제 대의권력이란 가면 너머의 실재라면,
구토 일으키며 물컹대는 저것들은 텅 비어버린 최고권력의 섬뜩한 실재다.
보수를 자처하는 누군가는 ‘똥’이라 했다. ‘운명’인줄 알았더니 “똥‘이더라 했다.
아니, 단언컨대 그건(그는)
똥조차 아닌 무엇이다. 후딱 치워버릴 수도 없고 떨칠래야 떨칠 수 없는 그것은,
뿌리 깊은 권력의 중심에 달라붙어 있는 데드마스크같은 것이다.
이제사 떠나가는 구중궁궐의 아비와, 더욱 큰 얼굴로 돌아오려 하는 거리의 또다른 아비...
거리의 역동 넘치는 삶과, 죽음이 지배하는 집이 공존하는 우리들의 시간.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창밖엔 여태도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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