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비슬산 휴양림 입구 주차장(11:25) - 소재사 - 염불암지(12:10) - 대견봉(13:45) - 대견사(점심) - 조화봉(15:25) - 988.5봉(16:25) - 관기봉(17:20) - 출발지점(18:10)
별 기대는 없었다. 눈 온 지도 이틀이나 지났다.
가본지 오랜 1035봉으로 올라, 조망능선 어슬렁거리다 관기봉에서 지는 해 보며 내려서면 되겠거니 싶었다.
눈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오름길에선 빙벽이 되어 길을 끊었고, 주능선에선 얼음꽃으로 변해 놀랍고 눈부신 세상을 빚어놓았다.
별천지에 홀린 걸음은 더뎠다. 부쩍 길어진 낮시간, 오후나절 고스란히 탕진이다.
산길 들날머리에서 품과 시간 들이지 않고 절구경하는 느낌 내는 방법 중 하나가
필체 서로 다른 현판들 맛맛으로 기웃거리는 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내 최대 규모 너덜이라는데,
무등산 덕산너덜보다 더 커 보이거나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는다.
염불암지 삼층탑.
신라양식 답습한 고려 때 거라는데 소박한 맛이 좋다.
주변의 나무들을 쳐내서 절터의 조망을 좀 확보했으면 싶다.
꼭지 올려다본다.
칠팔년 전 눈 내린 직후 오를 때 만큼은 아니나, 오늘도 애좀 먹겠다.
돌아보다.
시야는 기대만큼 깨끗하지 않다.
오른쪽 능선 둥두렷한 곳이 얼마 전에 올랐던 와우산성.
멀리 정상부와 유가바위도 보인다.
우선 보기엔 눈이 별로 없는 듯?
흐미~~ 여길 내려서야 하는데 바위들이 얼음코팅이라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우회~~
돌아보다
조화봉도 보이는데...
주변의 눈꽃이 얼음꽃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드뎌 1035봉 정상부 직전.
1035봉, 소위 대견봉 정상에서
온통 희게 뒤덮인 눈꽃보담 오히려 볼맛이다.
바람없는 봄날같은 날씨,
친구인 듯한 두 사람이 담소하며 점심 먹는 모습이 보기좋다.
원래는 저게 대견봉이었는데...
저건 지금 천왕봉이 되었던가?
넘 흔해빠진 이름이라 맘에 안 든다.
월광봉 너머
최정산에서 통점령으로 이어지는 줄기
눈꽃도 얼음꽃도 아닌 것들에 둘러싸여 한참을 논다
자세히 보니 성급한 짐작과 달리,
햇살 받는 표면은 여전히 눈인데 억새잎에 닿은 아랫쪽이 먼저 얼음으로 변한다.
눈녹은 물이 무게 때문에 아래로 고이거나 바람 덜 타는 아랫쪽이 먼저 녹거나...
그 물이 다시 얼음으로 변하는 듯.
뒤돌아본 1035 대견봉
절마당으로 내려서다
법당이 대견보궁?
보궁인 걸 보니 진신사리를 모셨단 건가.
찾아보니 과연 그러하다.
묵직하면서도 살짝 멋을 살린 글씨가 보기 좋아 낙관 부분을 확대해 보니...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으로
얼마 전 진박 인증을 받으며 대구지역 출마를 선언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서울대 법대교수 복직신청도 했는데
낙선을 대비한 기회주의적 태도라며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또 장관 재임시절 선거 직전 정당행사에서
경솔한 언사로 공직자의 중립의무 위반이란 지탄을 받은 적도 했다.
인터넷 찾아보니,
선대부터 명필로 유명한 집안 출신인데다
유학儒學과 노장老莊에도 조예가 깊으시다는,
묵은 조선일보 기사가 보인다.
유학과 노장이라면, 인품 수양과 처세의 도를 주종으로 하는 바
잘나가는 정치인으로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와 처세를
비추어 음미할 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대견사 한켠에서 늦은 점심 먹으며 한동안 저 모습 보고 있노라니
알수없는 자연현상으로 수정으로 변해가는 생명체들의 풍경을 몽환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묘사한
제임스 발라드의 SF소설 '크리스털 세계'가 떠오른다.
은하계에서 처음 관측된 반물질 현상이 지구에 반시간 현상으로 재현되면서, 아프리카 오지와 러시아, 미국 일부 지역에서 크리스털화 현상이 일어난다. 태양 빛을 흡수하는 듯한 이상한 돌풍은 모든 생물을 크리스털로 변화시키며, 크리스털로 변한 생물은 반 가사(假死) 상태에 빠져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크리스털이라는 공간 속에서 시간이 멈춰 버리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빛마저 삼켜 버리는 크리스털화 과정의 고요함과 공포...
(알라딘 책소개에서 인용)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진 불모의 몽환경으로 변해가는 세상,
그 세계의 기이하고 매혹적인 광물적 아름다움에 빠져든 주인공은, 크리스털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탈출을 포기하고 다시금 그 곳으로 발길을 되돌린다.
죽음의 아름다운 얼굴에 매혹되기, 란 주제는 진부하지만 언제나 흥미롭다.
생명을 소진시키는 불모의 아름다움을 향한 저 치명적인 탐미는 대체 어떤 공허로부터 태어난 욕망 혹은 감성일까?
공포와 매혹, 서로를 충동하는 불가해한 마음의 거울상. 텅 빈 심연을 휘젓는 이중나선의 회오리...
눈꽃보다 귀한 얼음꽃.
알고보니, 비슬산이 얼음꽃이 참 잘 피는 산이라는데
이토록 대규모적인 얼음꽃은 여태 본 적이 없다.
988.5봉,
예전엔 990봉이라 불렀다. 오늘도 편하게 그리 부른다.
조화봉 기상대 가는 큰길로 잠시 접어들었다가
돌아서서 능선을 따른다.
얼음코팅이 되어 걸음 닫기가 썩 조심스러운 톱바위에 올라 돌아보다.
정자 있는 곳이 전동차 종점.
대견사에 보이던 이들 대부분은 휴양림에서 전동차로 올라온 이들이었다.
가야할 능선.
오른쪽 높은 곳이 관기봉.
조심스레 올랐는데 진행 만만치 않아 다시 후퇴한 바위
990봉
직전에서 보는 990봉
990봉에서 보는 각북 풍각 경계 능선
남쪽, 화왕산조차 흐릿...
관기봉 방향
지나온 방향
서쪽, 흐린 낙강 줄기
정면으로 드는 햇살 받으며 관기봉 가는 능선에서 심심풀이삼아서리..
좀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990봉에서 관기봉 가는 능선은 솔숲이 참 좋았던 기억이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소나무들이 다 말라죽어 황량한 고사목 능선이 되어버렸다.
비슬 3봉, 천왕 대견 조화봉
왼쪽 아래 바위는 아마 금수암 전망대일 성 싶은데....
데크같은 게 보인다.
흐미...ㅠㅠ
관기봉 오르는 가파른 길이 완전 빙판이다. 살떨려 이쪽으론 못 오르겠다.
조금 완만한 오른쪽 길로 오른다.
여기도 만만치 않다.
빙벽이라 도저히 바위를 잡을 수가 없다.
관기봉에서 내려갈 능선 굽어보다
천왕, 대견, 조화, 990봉까지.
저 금수암 전망대도 언제 함 가봐야겠다. 금수암터엔 돌탑도 하나 있다고 하니...
당겨보다.
저 바위 자체가 전망대일 텐데 굳이 저런 요란스런 시설물이 필요할까...?
남쪽으로 이어지는 줄기 너머..
비슬지맥 수봉산릉과 흐린 화왕산릉
저 억새밭에서 여기 관기봉 보는 모습이 참 좋았던 거 같은데...
청도 화악과 남산쪽도 흐릿..
오래 전부터 함 가봐야지~ 싶던 수봉산릉엔 철탑 총총하니 생겨나
왠지 시큰둥해지고...
낙동강쪽 함 당겨보고...
총총 내려선다
하산길에 해는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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