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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경상권

봉화 구마계곡에서 각화산으로 151021

by 숲길로 2015. 10. 22.



코스 : 구마계곡 간기마을(08:40) - 도화동(10:15) - 장바위(11:05) - 대간릉 X1192(13:15) - 차돌배기(14:15) - 각화산(16:45) - 간기마을(18:25)



백두대간 태백산 남쪽 깃대배기봉에서 나뉜 청옥산릉과 차돌배기에서 나뉜 각화 왕두산릉 사이 구마계곡(고선계곡).

긴긴 그 골짜기 가을빛 장하더란 말씀은 오래 전에 들었다. 어떤 이는 그 빛, 매년 사진 담으러 간다고도 했다.

선뜻 나서질 못했다. 멀기도 하거니와 거기 아니라도 여기저기 다닐 곳 많더라는 시절의 핑계였다.

이제야 그 계곡에 든다. 10월 하순, 능선의 빛은 진작 스러졌지만 깊게 파고드는 골골은 오채로 불타고 있었다. 

명불허전, 걸음걸음이 황홀했다.

도화동 지나 물길따라 잠시 올랐다가, 내력 궁금해지는 공터에 주저앉는다. 인상적인 장바위와 석축으로 남은 어떤 흔적들...

물길 버리고 지능선 접어든다. 코 박으며 오르지만 오래지 않다. 자주 머물거나 단체로 해찰이다. 겨우살이와 버섯 채집이다.

그런저런 전반부가 넘 여유로웠던 걸까, 의외로 가깝지 않던 각화산 오르니 해가 얼마 남지 않는다.

지능선 잡아타고 내리꽂힌다. 좌우로 쏟아지는 단풍 단풍, 건성 듣고 흘리며 간다. 

가는 길을 고수했어야 했을까, 쉬운 길 유혹에 옆길로 샜더니 한결 고생이다. 해는 떨어지고 반달 보며 간기 내려선다.

밤개울에 땀 씻고 나니 그제야 눈에 밟히는 단풍, 두고온 산빛. 

일간 중봉골이라도 거슬러 다시 함 올라보아야 할까나...    



간기마을에서 들어왔던 길 돌아본다.

텁텁한 박무 감도는 아침빛이지만 물색은 마냥 곱다.


하산하게 될 중봉골 방향


여유롭게 길 나선다. 단풍놀이 모드.


초록 우로 쏟아지는 자홍, 미어지는 빛 속으로 든다.

세상 밖으로 한걸음...

호시절이다.




너나없이 걸음 더디다.




뒤처져 따른다.

낙엽따라 아득히 이어지는 길.




빛그늘 속으로 든다.

저 속으로 흐르는 시간은 점점 느려지며 멈출 것만 같다.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질 않는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거리일지 모른다.

풍경이 엿보는 또다른 거처가 영원이라면, 허겁지겁 바쁘기만 한 몸은 멈춰선 저 시간 밖으로 오래토록 서성일 수밖에.




짐짓 흐트러지면서...

누군가 이 세상을 지형을 읽고 있다. 접속.

다시 시간이 흐른다.


빛을 담는다. 흘러내리는 빛을 담는다.

빛은 또다른 세계의 지평으로 흘러간다. 끊어졌던 길 다시 이어진다. 공간은 빛으로 여는 시간세계의 무궁무진.




겹쳐지는 빛들, 공명하는 우주는 메아리를 부른다.

산적散積, 흩어져 쌓인다, 는 말을 사라진 세상이 다시 돌아온다는 뜻으로 읽는다. 사라짐과 돌아옴이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 읽으려 한다.










탑도 무더기도 아닌 것이 아슬하고 정갈하다.
















기후(의 처소)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이 골에 은거하며 기자를 섬기는 이라도 있는 걸까... 터무니없는 의심도 해 본다.


잠시 검색해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기후는 스님의 이름이었다.

저 뒷면엔 도리천(가는 길)이라 적혀있는데, 그 또한 불교용어 도리천이 아니라(한자가 다르다), 이 도화동 골짜기에 자리잡은 자신의 거처를 뜻하는 듯하다.

기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고 나니 무구자無口子, 입이 없는 사람이란 대목이 흥미로워진다. 말을 하지 않겠단 다짐의 표현같은데, 기실 저 앞뒤에만도 상당히 많은 뜻을 담은 글이 적혀있지 않은가? 무구가 아니라 다변多辯에 가깝다. 스스로 '입없는 자'라 말하는 순간, 그 말이 막힌 입을 찌른다. 당착과 부정의 경계에서 열리는 어떤 영역.  

모르긴 해도, 기후 스님은 꽤나 신랄하고 현대적인 유머감각을 지닌 분 같다.      


기후의 거처로 향하는 평도를 걸으며 돌아보다. 평도平道 역시 저 뒷면에 적혀 있던 단어 중 하나.


도리천 옆 농장을 지나며




옛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을물이 붉다.






시선들.

단풍을 바라보는 시선, 그 움직임 아닌 움직임을 디카로 담는 시선, 지나치며 곁눈질하며 아우르는 시선, 뒤따르면서 그 모두를 단풍 속에 함께 담아보려는 욕심많은 시선. 어느 것도 교차하지 않지만, 모든 시선들은 단풍으로 수렴한다. 사라지면서 빛으로 태어난다.  


호랭이굴쯤 되려나...ㅎㅎ

계곡 건너편에 꽤 큰 굴이 보인다.










낙엽송은 아직 물이 덜 들었다.


옛 분교터라는데...

숲이 우거지며 흔적은 거의 없어졌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수 없을 만치. 


폐급수대. 역시 알려주지 않으면 궁금해 할 무엇.

본래의 기능 다하고 이끼 무성해져가는 인공시설물이 일말의 부자연스러움도 없는 듯 숲과 더불고 있다. 

산행 중에 종종 역사의 흔적들을 마주치곤 한다. 착잡하다. 허나 인간세상에서 순수한 자연 자체란 없으니

역사와 자연, 모호한 경계엔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돌이킬 수 없는 무엇이 느껴진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역사와 자연이 서로에게 남긴 상흔이라 할 그 어떤...      

   

도화리로 든다. 상투적이지만 달리 무어라 할 수 없을 지명이다. 복사꽃 피는 그 곳,

필시 桃 花 流 水 杳 然 去   別 有 天 地 非 人 間 (도화유수묘연거 별유천지비인간)을 떠올려야 할까?

산줄기와 물줄기 모이는 지점, 옹색하지 않을만치 너른 터에 햇살 드는 밭 가꾸며 자리잡은 마을(이라기보담 몇 채의 민가)이 아늑하고 평온하다. 그러고 보니 구마계곡의 집터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도화와 간기는 물론이고 지금은 아주 묵어버린 장바위 일대조차 그러하다. 그 때 그시절 여기는, 숨은 듯 들어와 살만한 곳들었을까...?

 

동행분이 알려준

곤드레나물의 꽃, 다른 이름은 고려엉겅퀴라고.


도화리 마지막 집을 지나면 너른 길 끝난다. 장바위 향해 산길 접어든다.

들머리에서 마을분이 걱정스레 만류했듯이, 조만간 흐릿해진다. 예전엔 뚜렷했겠지만 지금은 거의 길 묵어버린 듯하다.


계곡이 제법 예쁘다. 이 계절이니 더욱 그럴 테지만...




잠시 조심스런 협곡구간.




돌아보니... 가을빛 지나간다.


단풍 그늘따라 길흔적 이어지고...








분위기 썩 그럴 듯하다.




















단풍터널 너머 환한 저 곳이 장바위 있는 공터




장바위.

다들 규모에 좀 실망하신 듯....ㅎㅎㅎ

허나 이 공터와 걸터앉아 쉼하기 좋은 저 바위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공터는 세 물길 합쳐지는 지점의 평탄지대다.   



장바위 북쪽 능선따라 치오른다. 코박을 듯 가파르다. 

급경사 한풀 꺽이는 지점에서 이른 점심...

다시 대간릉 향해 치오른다.

그런데 이 능선, 곳곳에 산불흔적이 보인다. 불탄 자국 드러난 엄청 굵은 참나무 둥치들이 많다. 그래서 현재 자라는 참나무들은 별로 굵지가 않은데, 의외로 불탄 둥치 바로 옆엔 꽤 굵은 금강송들이 싱싱하게 버티고 서 있다. 대체 얼마나 오래 전에 불이 났던 걸까...? 의아해진다.   


대간릉 가까워지는 능선 윗쪽엔 굵은 참나무들이 보이는 걸로 보아 불길 피해가 없었던 듯.


지역 특유의, 꽤 인상적인 참나무숲이다.


돌아보다.


겨우살이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 높지 않은 건 일행들이 더러 채취하기도 하고.




대간릉 장바위고개에서


조망 없어도 울창숲 걷는맛 일품 능선


대간이니 길도 썩 좋다.

나뭇잎 마르는 냄새는 코를 파고들고, 발아래는 싱싱한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각화산릉 삼거리 지나쳐 일부러 다녀온 차돌배기.

여기엔 좋은 쉼터가 있으니.


잠시 되돌아가 산마루 대신 옆구리길로 각화산릉 접어든다.






겨울로 가는 늦가을숲...


꽃은 며느리밥풀을 닮았는데, 풀이 아니고 나무다?

아니, 진달래가 시든 건가?






각화산 가는 참나무숲길,

심심 깊은 맛 일품이지만 전혀 조망이 없다. 가뜩이나 아쉬운 시야가 박무로 흐리니, 멋진 능선길이 살짝 지루한 감마저 있다.


짧은 해, 햇살각은 점점 낮아져가고...


차돌배기부터의 동행.

아마 각화산까지도 함께 가게 될 듯...

 

1179.9봉 내려서며 건너보는 둥근 각화산 정상부 






수북한 낙엽 밟으며 사면으로 이어지는 길따라...


봉분 큰 반남박공묘 앞에서.

특이하게도 상석이 봉분 앞에 있지 않고 옆에 있다. 풍수적 이유일까?




막바지, 둥근 정상 향해 숨차게 오르다


조망없는 정상 찍고, 서둘러 건너 헬기장봉으로 가다. 바쁜 와중에도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단연 눈길을 끈다.

오래 전 각화사 기점으로 각화 왕두산만 돌아본 적 있는데 당시에도 고목 참나무숲에 감탄했었다. 나무마다 무성하던 겨우살이들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새 워낙 채취해버려 지금은 별로 없다고...    



당초엔 동봉(1101봉)까지 가서 능선따라 내려설 요량이었으나 너무 늦은 시각이다. 해지기 전까지 빠듯하겠다.

헬기장 공터 있는 1174.5봉에서 북동향 능선 접어든다. 길 흔적 있어 그럭저럭 갈만하다.

잎진 나뭇가지 회초리 맞아가며 부지런히 걷는다. 고도 낮추니 능선 좌우 계곡쪽으로 단풍이 미어지건만 바쁜 걸음은 짐짓 아랑곳없다는 듯.

하산릉 전체의 절반 가까이 내려선 즈음, 왼쪽으로 뚜렷한 길이 보인다. 기왕이면 수월한 길로 가자고 의견수렴, 중봉골까지만 내려서면 큰길 좋을 터이니. 

잠시 내려서니 한창 곱게 물든 단풍숲이 앞을 가로막는다. 시간여유만 있다면 느긋하게 단풍을 담아보면 좋으련만...

한장만 똑닥이고 다시 길 잡아든다.



그런데 뚜렷하다 싶던 길이 왼쪽 능선쪽으로 이어지며 점점 흐려지더니 끝내 흐지부지(흐린 자국을 놓쳤든가...).

해 지는 시각, 망설일 새는 없다. 능선따라 그냥 내친다. 

중봉골 내려서니 길 뚜렷하지만 대로는 아니다. 하늘은 이미 어둡다. 랜턴 켠다. 

총총 간기를 향하여...  

모처럼 해 빠지도록 걸어보는 찐~한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