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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2014-나름 인상적이었던 작품들(2)

by 숲길로 2014. 12. 23.

 

* 나름 인상적이었던 작품들(2)

(미개봉작도 있음. 차례는 제작이나 개봉일순이며 평가순이 아님. 제목(제작년도) [감독명]배우들 순)

 

 

 

-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3)

[더그 라이만] 톰 크루즈, 에밀리 블런트, 빌 팩스톤, 샬롯 라일리

 

 

넘 익숙한 설정이라서일까? 잡힐 듯 잡힐 듯 하지만 끝내 잡히지 않는다.

그래, 이건 그냥 게임이다. 유효한 은유나 상징이 있다면, 반복이 성취하는 어떤 경지에 대한 암시 정도다.

놀라운 건 그게 그리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 죽음을 소모하는 이 대책없는 경박 앞에서 말이다.

까짓 거 뭐 어때, 내일이 있는데...

달리 말하면, 이건 불멸의 게임이다. 언제나 패하지만 영원히 패할 수는 없는.

그랬던 걸까? 죽음으로부터가 아니라 불멸로부터 위안은 왔던 걸까.

그런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이겼다고 여기는 순간 불멸은 사라진다.

알겠다, 궁극의 승자는 시간인 것을.

패배와 함께 멈춘 시간 속에서 불멸하느니 시간과 더불어 흐르며 패배하기를.

 

시간을 멈추고 이 땅을 점령한 자, 대체 누구인가? 어떤 망령들일까?

여전히 활개치는 이 땅의 모든 망령들도 좀 깨우쳤으면 좋겠다.

멈춘 시간 속에서 박터지게 분투하느니, 지는 게 이기는 것임을.

역사의 지평 너머로 그만 고요히 사라지기를...

 

지루할 듯 지루할 듯 지루하지 않은, 이상하게 재밌는 영화.

참 희한하네~

 

 

- 하이힐(2014)

[장진] 차승원, 오정세, 이솜, 고경표

 

 

좋은 시나리오인데 기름끼와 오버질을 조금만 걷어내었더라면,

그래서 차승원이 좀 다른 연기를 선보일 여지를 주었더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만찮은 소재를 독특한 감각으로 능란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장진 감독의 각인은 분명하다.

다시 함 더 봐도 나쁘지 않을 영화.

 

 

-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

[맷 리브스] 앤디 서키스, 게리 올드만, 제이슨 클라크, 주디 그리어

 

 

하는 짓들이 점점 인간을 닮아가는 원숭이, 우주의 역사는 반복될 뿐이라는 명제의 SF버전.

너무 낯익은 이야기라 전편에 비해 참신함 많이 떨어진 느낌이지만, 충분히 몰입하며 볼만한 오락영화다.

주인공 원숭이역의 앤디 서키스란 배우.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었다 하니

대단한 연기력, 눈빛으로 담아내는 표정연기 언제나 압권이었다. 찬탄, 존경.

 

 

- 언더 더 스킨(2013)

[조나단 글래이저] 스칼렛 요한슨

 

 

내부 없는 표면의 빛에 홀리다, 매혹과 공허의 물화物化.

우주 저편 어둠으로부터 솟아나듯 지구별로 건너와 한순간 작렬하며 반짝이다 훅 꺼지는 존재.

모든 우리 삶이 그러할진대...

찬바람 부는 캄캄한 존재의 거처, 몸을 앗긴 그 눈가에 반짝이던 눈물이 떠오른다.

스칼렛 요한슨이 예쁘면 예쁠수록,

그 미모는 사물적으로 느껴진다. 아니 거의 광물적이다.

그녀는 물러나며 유혹한다. 홀린 사내들, 번식과 죽음의 몸짓은 서로 닮아 있으니.

존재의 물성에 천착하지만 스티브 매퀸과는 사뭇 다르다. 후자는 살아있는 육체, 몸에 집착한다.

이 영화는 그 반대다. 말 그대로 물성, 완강한 사물성을 탐색한다. 몸은 껍질일 뿐이다.

뒤집어쓴 몸 아래, 그 껍질 아래 무엇이 있을까?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 영화는 첨이다. [에일리언]류의 신체강탈을 소재로 하면서도

기존의 장르관습과 문법을 도외시하고 전혀 낯설고 섬뜩한 영화를 만들어놓았다.

더 잘 이해하려면 한번 더 보아야 할 텐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기이하고 불친절한 영화.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3)

[실뱅 쇼메] 귀욤 고익스, 앤 르 니, 베르나데트 라퐁, 엘렌 뱅상

 

 

이런 달달하고 살짝 몽롱한 영화, 그닥 취향은 아니다. 좋은 영화임에도 그래서 best로 평가하지 못했다.

허나 프랑스 감성의 코믹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최고의 영화일 듯.  

힐링영화쯤으로 불러도 좋았을 [바그다드 카페]를 연상시키기도.

실벵 쇼메 감독은 [벨빌의 세쌍둥이] [일루셔니스트]등의 수작 애니를 연출한 바 있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고레에다 히로카즈] 후쿠야마 마사히루, 오노 마치코, 마키 요코, 릴리 프랭키

 

 

뒤늦게 아이가 뒤바뀐 사실을 알았다. 이 난국을 어이하리?

어미는 낳으면서 어미인데, 아비는 기르면서 아이와 함께 자라 비로소 아비가 되는 걸까?  

은근하게 몰입시켜가는, 자상하고 치밀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밋밋한듯 하면서 굴곡과 반전까지.

어른 아이 배우들의 연기도 다 좋고

풍속이나 정서가 우리와 비슷하여 더욱 편하게 공감할 만한 수작 가족영화.

 

 

- 프랭크(2013)

[레니 애이브러햄슨] 마이클 파스밴더, 돔놀 글리슨, 매기 질렌할, 스쿠트 맥네이어리, 로렌 풀

 

 

솔직(frank)해진다는 게 뭘까? 당장 느끼는 욕망과 생각을 표현하거나 그대로 따르는 게 솔직한 걸까? 과연 그럴까?

사실 우리 대부분은 뭐가 솔직한 건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자기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알거나 느끼는 것과 솔직해지는 것과의 관계는 투명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감추는 걸 싫어한다면서 프랭크는 제 얼굴조차 드러낼 수 없다. 가면의 프랭크.

가면의 프랭크를 뒤집으면 ‘솔직한 가면’이 될까? 아닐까?

물론 가면이 감추면서 드러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존은 프랭크의 가면을 벗기고 그의 재능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한다. 그건 과연 솔직한 그의 본심일까?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인식은 또 어떤가?

철학도 출신 감독답게 영화는 다양한 질문과 성찰거리를 던진다.

가면 너머 있는 것에 관하여, 소통의 방식이나 솔직해지는 게 무언지에 대하여, 그리고 선망과 열망의 거리에 대하여 등등...

질문은 무겁지만 연출까지 그러한 건 아니다. 오히려 흥미진진하다.

잘 만든 영화인데, 살짝 오글거리는 구석이나 좀 교훈적으로 비틀어보려는 대목이 있어 좀 거슬린다.

허나 기묘하면서 썩 괜찮은 음악이(어떤 곡은 기막히다) 있고, 음미할 거리가 많으니,

잊을만할 때쯤 다시 함 더 보아도 좋을 영화다.

 

 

- 제보자(2014)

[임순례] 박해일, 이경영, 유연석, 류현경, 박원상, 김중기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사건의 취재 보도와 관련한 이야기.

이미 널리 알려졌고 사회적 판단도 내려진 사건이니 식상하기 쉬운 소재라 여겨 좀 오버스런 연출의 유혹이 있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게 영화의 작품성을 살린 듯하다. 소영웅을 만들려는 욕망은 대개 감정의 과잉착취를 부른다. [변호인]과 비교되는 점이다.

캐릭터들의 고민이나 갈등 역시 모호함 없이 도식적이리만치 우직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어쩌면 그게 소위 ‘불편한 진실’을 드라마화하는 가장 안전하고 미더운 방법일지 모르겠다. 물론 스릴러적인 흥미가 부족하고 좀 단조로워진다는 점은 있다. 그러나 여운이 들뜨지 않는다.

이경영의 호연이 돋보인다.

 

 

- 마담 뺑덕(2014) 10.2

[임필성] 정우성, 이솜, 박소영, 김희원

 

 

복수의 우화로 비틀어 각색한 현대적인 감각의 심청전.

성급하지 않은 진득한 호흡과 오버질 없는 연출이 돋보인다. 허나 뺑덕에게 넘 몰입한 탓일까? 전후반부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 좀 삐걱거린다고 할까.... 심청의 재등장은 좀 뜨악하다. 충분히 예견된 전개임에도 작위적인 느낌.

공들인 영상이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이솜이란 배우.

 

 

- 5일의 마중(2014) 10.8

[장예모] 공리, 진도명, 장혜문, 유패기

 

 

노련한 솜씨로 잘 만든 영화. 역시 공리 주연의 예전작 [귀주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장예모가 누구시던가.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했던, 중국정부가 총애해 마지않는 국민감독 아닌가? 어지간히 노회한 친정부 거물이다.

21세기 지금 이 시기에 그가, 문혁文革시대를 다룬 저런 복고 이야기를 풀어놓는 건 좀 뜬금없거나 미심쩍어 보인다. 그의 저 영화는 단순히 수난의 시대를 겪어온 어떤 노년들의 가슴먹먹한 풍경이 아니라, 안전하고 만만한 그때 그 시절 추억담이거나, 중국 정부가 품고 있는 모종의 고민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려는 애국적(?) 의도를 담은 작품처럼 비칠 수도 있다.

 

 

- 카트(2014)

[부지영] 염정아, 문정희, 디오, 지우, 김강우, 김영애, 천우희, 이승준, 황정민

 

 

정공의 직설법에 기울어져 있으면서도 적절한 힘 조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부각시키고 설득하는 ‘불편한 진실’의 관점에서 보아도, 소모적인 감정의 휘발에 의존하는 방식보다 훨 나은 듯하다.

무게 중심이 너무 낮아보였던 [제보자]보다 한 톤 높게 잡은 포지셔닝,

신파로 향하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분별력이 밉지 않다.

 

 

- 저지 보이즈(2014) 미개봉

[클린트 이스트우드] 존 로이드 영, 빈센트 피아자, 스티브 셔리파, 크리스토퍼 월켄

 

 

‘포시즌스’라는 남성 보컬그룹의 일대기, 캐릭터 구축과 시대상 재현이 빼어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감님의 연세가 어찌 되더라? 노익장이란 상투어조차 무색해지는 저 괴력. 

늘 그렇듯 지나치지 않는 서늘함으로 밀고가는 응시의 힘. 음악영화라서 그런가, 이 영화는 훈훈함마저 풍긴다.

두성頭聲이라던가? 프랭키 발리의 특이한 목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