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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2014 영화 - 그럭저럭 볼만했던 작품들

by 숲길로 2014. 12. 24.

* 그럭저럭 볼만했던 작품들

(제작이나 개봉순이며 평가순이 아님.  제목(제작년도) [감독] 배우)  

 

 

- 찌라시: 위험한 소문(2014)

[김광식] 김강우, 정진영, 고창석, 박성웅, 박원상, 김의성

 

 

청와대 찌라시 사건이 불거진 직후에 보아서 더 재밌었던 걸까.

연예계 생태로 어설프게 시작한 얘기가 슬쩍 방향을 틀더니 제법 탄력을 붙여 굴러간다. 전에 없었던 소재에다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빚어내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중반까지는 꽤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뒷심이 부족하다. 아니, 독창성이 떨어진다. 헐리웃 장르영화 공식을 답습하며 뻔한 결말을 향해 치달아버린다.

‘그’ 찌라시 사건, 좀 일찍 불거졌더라면 영화가 더 흥행했을 텐데.

 

 

- 300: 제국의 부활(2014)

[노암 머로] 에바 그린, 설리반 스태플턴, 로드리고 산체스, 레나 헤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전편 [300]의 비주얼은 대단했다. 편파적이고 빈약한 역사의식을 근육질 마초와 짐승남들의 지랄발광으로 도금질했다는 악평에도 불구, 그래픽의 놀라운 기술적 성취와 과잉근육의 현란한 전시는 나름의 영상미학을 구축하며 수컷 관객들의 아드레날린 분출에 크게 기여했다.

이번 속편에서 잭 스나이더는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리한 판단이었다. 솔직히 영상미에서 획기적으로 새로운 무엇을 또다시 보여주긴 어려웠을 것이다. 감독이 뒤로 빠지면서 특급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고 무대를 육지에서 바다로 옮겼다. 여전히 거대한 스케일에 그지없이 기름진 영상이다.

에바 그린이 열연하는 ‘아르테미시아’는 여성성을 극복해버린 여자다. 그럼에도 불구 마초들의 지배욕을 자극하는 기이한 에로티시즘을 풍기며 눈길과 욕망 사로잡는다. 말하자면 카라스마적 도발성 그 자체인데 이 기이한 캐릭터가 영화의 흥행 포인트 중 하나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 이런 류의 영화는 캐릭터 구축에 그닥 연연할 필요가 없다. 어느 정도의 서사 골격 위에서 휘황한 이미지와 겉멋든 분위기, 스펙터클만 있으면 된다. 넘치는 오버질의 맛, 유치찬란한 쾌감.

남은 유일한 문제는 새로움인데, 이 영화엔 바로 그게 보이지 않는다.

 

 

- 가시(2014)

[김태균] 장혁, 조보아, 선우선, 이도아

 

 

사랑, 이란 광기를 그럴듯하게 풀어냈다(젊은 날의 사랑이 광기란 주장엔 전적으로 동감).

비현실적이란 비판은 과녁을 빗나간다. 사회적 현실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감성의 리얼리티에 충실하였기에 제법 볼만한 영화가 된 셈이니.

조보아의 연기가 좋다, 훌륭한 표정연기. 장혁 역시 특유의 오버질을 많이 절제한다.

 

 

- 노아(2014) ※내용누설!

[대런 아로노프스키]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에마 왓슨, 안소니 홉킨스

 

 

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노아]는 좀 그렇다. 소재부터 그닥 흥미롭잖은데다 넘 무거운 전개가 불편하고 지루했다.     

그러나 앞서 [그녀 Her] 항목에서 언급했듯 노아 캐릭터의 해석은 꽤 인상적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신의 뜻을 어찌 알 수 있냐는 것.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꽤 진부한, 소위 계시종교의 가능성을 묻는 꼴이 되어 버렸다. 달리 말하면, 신을 믿지 않거나 의심하는 관점이라면 노아의 모든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 거냐는 것.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인간의 삶을 절정으로 고양시키며 파국의 맨얼굴을 대면케 하는 중독의 힘과 위험을 탁월하게 표현할 줄 아는 감독이다. [레퀴엠]이 그랬고 [레슬러]나 [블랙 스완]이 그랬다. 광기처럼 빛났지만 기실 그것들은 중독의 광채였다, 필멸을 부르는.

서로 맞물리며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쾌락과 고통 속에서 삶의 절정감을 맛보게 하지만 끝내 우리를 파탄시키는 중독. 독毒은 쾌락과 함께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그건 한순간에 벼랑을 건너가는 광기狂氣와 다르다. 중독의 반대편엔 누설漏泄이 있다. 중독이 차곡차곡 쌓여 한순간에 쓰러뜨리는 것이라면, 누설은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끝내 무너지게 한다.

 

[노아]는 영리하고 짓궂은 영화다. 감독은 성서의 노아를 신의 의지로부터 어떻게든 떼어놓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를 중독자나 미친자로 만들 순 없다. 대신 누설의 전략을 취한다. 뒤에서 야금야금 갉아들어가 흔들어버린다.

방주를 짓는 노아, 매달리는 인간들을 뿌리치는 노아, 가족 일부를 내치려는 노아, 끝내 인류를 절멸시키려는 노아. 과연 어디까지가 신의 뜻인가?

의심은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가족을 갉아먹고 노아를 갉아먹는다.

끝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신. 인류절멸에 대한 신의 뜻이 의심받는다.

그건 그냥 노아의 꿈이 아니었던가? 그럼 이전의 모든 일들은? 방주를 지으란 건 또 어떻고?

그 모든 게 한낱 꿈? 말도 글도 아닌, 모호하기 그지없는 꿈이라고?

계시啓示는 말뜻 그대로 보여지는 것일까? 허나 태초에 있었던 건 이미지가 아니라 말씀(로고스) 아닌가.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글)을 받고, 선지자들도 광야에서 말씀을 듣지 않았던가?

대체 저 꿈은 누구의 것인가? 노아의 것인가, 신의 것인가?

그 의심이 인류를 살린 것일까? 그러므로 노아의 후예들, 우린 끝내 의심하는 인간이다.

 

 

- 말레피센트(2014)

[로버트 스트롬버그] 안젤리나 졸리, 엘르 패닝, 샬토 코플리, 주노 탬플, 샘 라일리

 

 

잠자는 숲속의 공주 외편.

눈요기거리 풍성한 영화. 분장과 연기도 썩 볼만하다. 서늘하도록 멋진 졸리, 여전히 신비로운 패닝.

원작을 비튼 이야기는 나름 재밌고 예상가능하고 수긍할만한 정도이니, 딱 디즈니표다.

안젤리나 졸리는 나이들수록 배역 고르는 안목이나 연기가 좋아지는 듯하고

어릴 땐 넘 야무지다가 이젠 훌쩍 커버려 좀 어색하던 언니 다코다보다, 어릴 적부터 묘한 신비감 풍기던 동생 엘르 패닝이 더 맘에 들었던 이유를 재확인하는 영화.

 

 

- 미녀와 야수(2014)

[크리스토프 강스] 레아 세이두, 뱅상 카셀, 앙드레 뒤솔리에,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가족이 함께 즐기기 좋은 판타지풍 동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한껏 화사하지만 천박하지 않은 영상이 시종일관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녀 역의 레아 세이두가 단연 두드러진다. 연기력도 좋거니와 연기폭도 참 넓은 배우인 듯한데, 멜로와 판타지, 킬러 역할 등 배역의 크기나 비중에 관계없이 매 영화에서 무척 뚜렷한 인상을 각인하는 재주가 있다.

크리스토프 강스는 [늑대의 후예] [사일런트 힐]처럼 독특한 소재를 뛰어난 영상으로 옮겨 오락성 강한 영화를 만드는 재능이 좋은 감독.

 

 

 

- 경주(2014)

[장률] 박해일, 신민아, 윤진서, 김태훈

 

 

장률 감독은 연변에 사는 조선족 교수다. 이 나라에 살지 않는 사람, 그것도 꽤 먹물든 자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홍상수 감독 역시 먹물스럽지만 그와 달리 장률 감독의 이 영화는 좀 거북한 데가 있다. 뭐랄까?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이 땅에 대한 향수나 신비화? 아마도 그 땅은 그 자신 떠나본 적이 없으나 비로소 돌아온 고향쯤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이 땅을 떠난 일제시대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 은 이 영화에서 고스란히 증발하고 없다.

그래서 영화는 먹물 특유의 탐미적이고 허세스런 응시 혹은 관조로만 줄곧 기울어진다. 시간없는 텅빈 공간으로서의 이 땅. 결과적으로 공감없는 신비화. 마지막, 밤의 고분 장면은 그 자체로는 무척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여기도 저기도 아닌 무시간의 어느 지점. 몽유의 피안도같다.

썩 담백하게 풀어나가려는 의도는 역력한데, 보는 난 자꾸만 오글거린다.

 

 

- 좋은 친구들(2014)

[이도윤] 주지훈, 지성, 이광수, 이휘향, 기국서, 최진호

 

 

제법 잘 만든 영화다. 근래 한국영화에 만연하는 피칠갑이나 오버질을 절제하면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끝까지 긴장이 살아있는 누아르가 되었다('나름 인상적인 영화'에 넣을만한데 이제사 기억나서 그냥 이 항목에 포함)

 

영화는 이성간의 감정과 다른 어떤 친밀intimacy의 관계를, 한 사내의 위험하고 안일한 욕망을 통해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캐릭터들간 미묘한 심리변화에 좀 더 집중하였더라면, 그래서 친밀과 적대의 상반된 양가감정이 갈등하고 길항하는 찰나들의 디테일을 좀 더 섬세하게 살려냈더라면 제목의 의미가 한결 도드라지는 수작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가령, 가장 편안한 친밀에서부터, 공범의식의 미묘한 긴장, 파국을 부르는 살의까지, 넓은 진폭으로 출렁이는 인철(주지훈)과 현태 어머니(이휘향)의 관계도 좀더 세공했더라면 싶고,

과거와 현재의 대비에만 주로 기대고 있는 인철과 현태(지성)의 관계도, 사건 이후의 관계 변모에 따른 심리적 갈등을 더 집요하게 추적하여 그 변화폭을 더 예리하고 위태롭게 드러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즉 시나리오의 전체 얼개는 좋지만 디테일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것.

허나 주지훈이란 배우의 발견은 분명 큰 수확이다. 기대했던 지성이 오히려 조연급으로 보일 정도.

 

 

-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윤종빈]하정우, 강동원, 이경영, 이성민, 윤지혜, 송영창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이은 윤종빈 감독의 또다른 시대고찰극.

익살스런 접근으로, 우리 역사에서 익명의 지배대상으로만 남아있던 백성 혹은 ‘민중’ 에 구체적인 몸과 얼굴을 부여해 보려는 시도인 듯한데,

흥행강박이 지나쳤던 걸까? [좋은 친구]가 넘 안전한 영화가 되어버려 아쉬웠던 것과는 반대로, 이 영화는 활극에 치중하다가 코믹판타지 비슷하게 간다. 결국 민란의 생태와 풍경이 엉성해졌다. 즉 구체적인 역사성이란 토끼는 놓쳐 버린 듯하다. 절반의 성공이랄까?

만능 도치(하정우), 소영웅주의의 함정은 늘 위태롭다.

 

 

-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이석훈] 김남길, 손에진, 유해진, 이경영

 

 

지난 여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오락성 강한 세 납량극 [군도]와 [명량]과 [해적]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이 영화를 꼽겠다.

어정쩡하게 양다리 걸치다 가랑이 찢어지는 [군도]나, 허술한 캐릭터와 고증 왜곡을 애국심 하나로 돌파하려는 용감무식 [명량]과 달리, 장난끼 가득한 도발로 역사의 무게 따위는 일찌감치 내팽개친다. 아니, 역사는 개뿔, 작정하고 조롱한다.

배가 산으로 가고, 산적이 고래 잡으러 간다. 후대가 두려운 역사 따위는 제놈들끼리나 쓰라 그러고. 그렇게 작정하고 난장치고 논다. 이게 판타지 정신이고 감각 아닐까.

 

배역들이 좋다. 꽤 오랜만에 보는 손예진, 여전히 이쁜데, 눈자위 까맣게 칠해 놓으니 더 이쁘고, 김남길의 코믹 감각도 자연스럽고 좋다. 이경영은 전혀 안 웃기는 캐릭터인데 그게 더 웃긴다. 유해진을 비롯한 다른 조연들, 다들 저마다 일가견이시니 더 말할 나위 없고.

 

 

- 타짜 - 신의손

[강형철] T.O.P, 신세경, 곽도원, 이하늬, 유해진, 김윤석, 김인권, 이경영

 

 

워낙 훌륭한 전편이 있었으니, 비슷한 이야기를 두고서 연출에 고민이 많았겠다.

치밀한 구성에 좀 건조하고 차분하게 전개되던 전편과 달리, 속도감 있고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배역의 평균 나이가 젊어졌다. 덜 진지해도 된다는 뜻이니 의도한 차별화가 주효한 셈이다.

전반부는 좀 산만한 듯 불안했지만 극이 진행할수록 안정감이 붙는다.

다만 전편에서 경악스럽도록 신선하던 김윤식이 이젠 좀 식상한 느낌. 허나 전편과의 차별화에도 불구, 이야기 설정상 달리 방법이 없었겠다 싶고, 성적 코드의 과도한 활용은 제대로 된 도박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겐 좀 불편하고 초점을 흐리는 요소였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