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생곡2리(08:35) - 트럭 타고 - 구목령(09:30) - 삼계봉(영월지맥 분기봉 10:42) - 덕고산(10:56) - 원넘이재(13:31) - 운무산(14:10) - 내촌고개(15:37) - 먼드래재(16:20)
기대컸던 운무산 구간을 우중산행하다.
마루금 이어가는 먼산 사라지니 허기진 시야엔 진종일 숲만 가득하다.
비만 아니라면 쉼없이 바스락대며 한없이 이어져도 좋을 낙엽길,
형형색색 갓 진 잎들 가득한 오솔산길엔 저마다의 가쁜 숨결 뚝뚝 떨어져 내리는데
가도가도 운무... 어둔 길따라 나무들 한층 곧아지고, 저무는 계절 잎빛깔 더욱 짙어진다.
숨차게 다다른 조망제일 산정은 안개만 가득하니
야속한 운무, 그 이름 농삼아 타박이지만
보지 못하였으므로 없었다 해야 할 운무산은 훗날 기약한다.
진달래와 연두 봄날 혹은 어느 단풍 가을날쯤 내촌리 기점으로 이어보아도 좋을 봉복과 더불어.
(운무 봉복 덕고 태기산 지도)
무겁게 가라앉은 산마을 생곡리의 아침, 창너머 보이는 생곡저수지 물빛 산빛이 참으로 곱다.
트럭 타고 구비구비 시오리길 구목령 오른다.
둘러보는 시야 가득 미어지는 산빛은 깊을대로 깊어진 가을이다.
햇살 없이 짙은 구름 아래 샛노랗게 물든 방대한 낙엽송숲, 멀리서 다만 고요하니 세상의 장엄 더하고 있다.
느리게 털털대는 트럭 맨 뒷자리 퍼질러 앉아 무딘 허리 비틀어가며
생곡리와 구목령길 가을 모습 담아본다.
돌아보니, 새삼 진종일 아쉽던 햇살.
구목령길, 저번엔 걸어 내려오고 이번 타고 오른다.
오르내림 중 한번은 걸어야 제맛이겠다. 특히 이 계절엔.
차단기 열쇠 인수차 잠깐 들린 집에서.
종자용인듯 말리고 있는 수수 사이 앙증맞게 매달린 해바라기 꽃채가 귀엽다.
돌아보다
구목령에서 산길 접어들며
늦가을 분위기 물씬한데, 아직 비는 오지 않는다.
흐린 하늘 아래 잎진 산빛이 꽤 스산해 보이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깊고 장중한 육산릉, 휘적휘적 걷는맛 그만이다. 대기 또한 비교적 포근하다.
우산 하나 그려져 있던 태기산 예보 떠올리며
애당초 조망 기대까진 없었으니, 그저 이만하게 진종일하시기를...
키낮은 조릿대숲 가로질러 간다, 사각사각~ 잎 스치는 소리와 느낌이 좋다.
먼 조망도 단풍도 없으니, 노는 입에 염불이라고...
괜시리 일행 뒷모습이나 밀고 당겨본다.
산죽숲길 내내 이어지고, 저번구간에서처럼 멋진 노목 참나무들 보인다.
풍경이 아니라면 다만 기록으로 삼는다.
저 아자씨도 똑딱이기에 바쁘네~
그닥 바쁠 것 없는 않은 걸음, 여유로운 후미로 따라간다.
태기산 갈림.
평창 홍천 횡성군계라 하여 삼계봉(1065m)으로 불리며
강원 영서의 대표적 명산인 치악과 백덕산으로 이어지는 영월, 백덕지맥 분기점이다.
분수령으로 치면 남한강 지류 섬강과 서강을 나눈다.
여태 홍천 평창 경계 능선을 이어왔으나, 이제 홍천 횡성의 경계를 걷게 된다.
산죽숲은 계속 이어진다.
저만치 보이는 곳이 덕고산쯤일까.
많이 늘었네, 안하던 브이자도 다 하시고..^^
장한 나무, 나무들...
잠시 조망없는 바위 구간 지나간다
별 특징도 조망도 없는 덕고산정.
서서히 고도 올렸기 땜에 치오르는 맛도 없다.
조릿대 성글어지고, 회초리처럼 좀 거슬리는 잡목 많은 숲길 한동안 이어진다.
먼 산릉 흐릿하게 보이지만...
조망 기대 진작 접었으니 별 궁금치도 않다.
가파른 내림길, 기름기 덜 빠진 낙엽길이라 발에 힘이 좀 들어간다.
곧 까칠한 암봉 하나 우회한다. 아마 저번 구간 끝 조망바위에서 봉긋하니 눈길 끌던 그 봉우리일 터.
바로 올라볼까~ 잠깐 망설이지만 조망 전혀 없는 날씨, 금새 맘 접는다.
뒤돌아보는 덕고산과 우회해온 암봉(오른쪽)
근데... 아침부터 하늘빛 워낙 무거워
태기산 예보에 그려져 있던 우산 하나가 내내 꺼림칙하던 차에
아니나 다를까, 자꾸 어두워지던 하늘이 급기야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예보대로라면 곧 개이지 않을까... 기대하며 배낭커버만 씌우고 간다.
굵지 않은 빗방울이 차츰 분주해진다. 춥지 않으나 제법 젖어든다.
앞선 일행은 벌써 우의 입었다.
가뜩이나 빠듯하던 시계 닫혀버리니 근시안이 된다.
젖어 더욱 진해지는 잎들이나 기웃거린다.
아직 우의입지 않고 간다. 그러나 조만간...
우의 차림이다. 거추장스럽지만....
기온도 많이 떨어진 듯하다.
시계는 고작 수십미터.
허나 늦가을 숲 분위기는 한결 좋다.
첨부터 썩 맘에 들던 한강기맥 능선길이었다.
어쩔수 없이 맞닥뜨린 우중산행,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거니...
숲은 더 깊고 그윽해진다.
나무들은 안개 속에서 화석처럼 고요하다.
허나 저것들, 햇빛 아래서보다 더 곧고 커 보이는 몸피로 제 살아있음을 기묘하게 입증한다.
아니, 비현실적으로 훌쩍 커버린 저 키들은 우리가 끊임없이 달아나고픈 영원한 바깥세상이 저곳일지 모른다는
불안하고 초조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안개는 유혹이다. 숲의 침묵에 빠져든다.
근래 본 영화 '그래비티'(중력)란 영화가 떠오른다. 안개숲은 무중력의 시공간에 대한 은유가 된다.
낮고 은밀하게 숲은 묻는다.
네 반드시 돌아가야할 곳 있느냐고, 혹은 간절히 부르는 누군가 있느냐고.
만사휴의(萬事休矣), 안개숲은 돌아갈 곳 없는 자들의 세상.
다만 고요히 잠들어버려도 좋을 죽음같은 침묵의 세계...
뒤돌아본다. 일행 나타나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다.
비켜섰다가 뒤처져 간다. 저 그윽함은 적막과 함께 더욱 깊어지는 것.
갓 진 싱싱한(?) 낙엽이다.
밟으며 가는 느낌이 더할나위 없이 좋다. 젖어 더욱 진해지는 낙엽내음...
걸음 자꾸 더뎌진다.
멈춰서면 춥다며 부지런히 가려는 짱, 허나 흰 어둠같은 빛 속에서 걸음 자꾸 느려진다.
벌써 원넘이재인가 했는데... 아니다.
777봉 전 고개인데 북쪽으로 삼년대 향 이정표 있다.
이 지점에서 일행 몇 분 비 맞으며 점심식사 중이다.
원넘이재와 삼년대, 좀 별난 지명이라 유래 궁금했다. 찾아보니,
예전 어느 때 원님이 넘어와서 삼년을 살았다 하여 그 이름이라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지명으로까지 박혔나 싶어 실소했지만, 얼마나 심심 골짜기였으면 (전직?) 원님의 출현과 일시 거주가 저토록 대단한 사건이 되어 지명으로까지 남았을까? 소박하기 그지없는 허세, 요지부동 오지임을 반증하는 작명의 속내가 문득 짠하게 와 닿는다.
어쨌거나...
원넘이재는 아직 멀다. 거기까지 가기엔 넘 출출하다. 바람만 피해 점심이다.
비 맞으며 허겁지겁 숟가락질... 후다닥 퍼넣고 빈 도시락 뒤집으니 빗물이 줄~~
오르내리는 안개숲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식후에 몸 무겁다.
우의 뒤집어쓴채 앞만 보고 무작정 걷다보니, 원넘이재 이정표 놓치고 능선따라 직진이다.
잠시 가다 길 좀 이상타 싶어 나침반 꺼내보았으나 방향은 맞다. 그런데 앞서간 일행 몇 분 길 없다며 되돌아온다.
되돌아간다. 급우회전 지점에 이정표 보란듯 멀쩡하다.
원넘이재.
횡성 창평 내촌 황장곡과 홍천 서석 청량리 삼년대를 잇는다.
그나저나,
그 원님은 왜 이 고개를 넘어야 했을까...? 왜 삼년만 살다 갔을까?
부질없는 가을비에 젖어드는 뜬금없는 질문들...
운무산 향해 치오른다. 가파르다.
식은 몸에 급히 퍼넣은 식은밥알이 다 곤두선다. 숨 턱턱 막힌다.
비켜가는 오른쪽 암봉, 조망 좋다면 함 올라볼 만하다. 담에 보자고~~?
가파른 암릉, 줄잡고 오른다.
하늘 맑다면 돌아보며 장탄식 뱉을 구간이겠다.
그런데 이 빗속에 교행하는 저들은 또 누굴까?
빗속이지만 바위 미끄럽지 않아 별 위험은 없다.
뒤돌아보다
춤추는 운무송
정상부. 운두봉이라 적힌 저 정상석이 특이하다.
두께 10cm 정도의 얇게 휘어진 빗돌인데
부러 깍았다면 그 안목이 놀랍고, 자연석이라면 썩 진기하다.
비 때문에 조망 못 본 운무산(雲霧山).
늘 구름 걸려 있다 하여 그 이름이라는데, 오늘은 운무를 넘어 숫제 우무(雨霧)다.
욕심이란 게 참 묘하다.
오늘 조망 놓치고 나니 꼭 다시 와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한강기맥 밟지 않았다면 평생 다녀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산인데도..
고만고만 운무산 내림길, 곳곳 두터운 낙엽이 보기 좋다.
줄기 이어가는 종주산행의 또다른 즐거움은,
이어지고 겹쳐지는 시공간에서, 계절의 변화를 퍽이나 절실하게 체감할 수 있다는 것.
뭐하는 걸까, 저 속에 무슨 일일까?
나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부글부글 거품 뱉아내고 있다.
난생 첨 보는 해괴한 현상이다.
잠시나마 꽃길...
삼면 툭 트인 조망바위에 섰지만...
투덜투덜, 오리무중
암릉 우회하기도 하고..
줄 잡아 오르기도 하며, 한동안 좀 까칠하다.
그러나 곳곳 조망처 많아 유난히 날씨 아쉬운 구간.
내촌고개 지나면 문득 산길 부드러워진다.
고만고만 오르내리지만 썩 수월하게 간다. 안개숲 풍경이 다시 눈에 든다.
철없는 것들은 어디에나...ㅉㅉ
아침에 지나갔던 19번 국도 먼드래재 절개지 굽어보며 또 한 코스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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