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테이킹 우드스탁 Taking Woodstock (2009) 120 분
감독 : 이 안
출연 : 드미트리 마틴(엘리엇), 이멜다 스턴톤(어머니), 헨리 굿맨(아버지), 에밀 허쉬(빌리), 조나단 그로프(마이클), 유진 레비(맥스), 댄 포글러(데번), 리브 슈라이버(빌마)
약에 취해 몽롱하게 굽어보던 풍경이 떠오른다. 그 순간 우드스탁은 우주의 중심이었다.
누군가 이 영화를 ‘마약 권하는 영화’라 촌평한 걸 본 적 있다. 동감이다. 그러나 환각제를 굳이 마약이라고만 부르는 사회를 비집고, 한 순간 폭발하듯 피어난 축제 공간은 퍽 아름답다.
<엘 시스테마>가 음악을 통해 희망을 말한다면 <테이킹 우드스탁>은 만다라처럼 그려진 포스터가 암시하듯 영혼의 자유를 얘기한다.
그 해 1969년 아폴로 11호는 달에 착륙했고 베트남전은 더욱 치열해진다. 밖으로 미국의 위세 더해가지만 안으로는 반전 운동 거세고 히피 문화는 전성기를 구가한다. 우드스탁을 바라보는 두 시선은 극명하게 대립한다. 엘리엇은 우드스탁을 자유의 공간이라 선언했고 뉴욕 주지사는 그 곳을 재난구역으로 선포했다.
만다라 가득한 천장 바라보며 약에 취해 눕다. 흔들리는 세계...
50만 운집했다는 그날 풍경을 재현하다.
'내가 벗음으로써 너희들을 벗겨주마' 외치던,
나체 연출을 특기로 하는 전위 연극인들.
나체가 종종 보인다는 게 아마도 이 영화가 19금이 된 이유일 듯.
여장 남자 빌마 역은 다름아닌 <솔트>의 냉혹한 이중스파이 바로 그 사내다.
낯익은 얼굴인데...? 하다가 그를 기억해내고 혼자 킬킬...
지난 세기 가장 주목할 만한 문화현상의 하나로 손꼽힌다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다루고 있지만, 이건 음악 영화가 아니다. 보는 음악, 열광하는 음악으로서의 음악축제보다는 우드스탁 현상을 이루는 다양한 풍경들과 자유의 시공간이 주는 힘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작렬하는 축제의 열기는, 물결치며 흘러가는 음악과 꿈처럼 피어나는 먼 풍경 속으로 녹아든다. 환각을 통한 연대와 각성, 헛것을 보는 몽환은 역설적으로 그간 무기력하게 버텨온 일상세계의 허구와 집착을 폭로한다.
환각은 눈뜸이고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순수한 자유의 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모두 떠나간 뒷자리, 쓰레기더미 무성한 진창으로 변해버린 축제 벌판 바라보며 그는 엘리엇에게 묻는다.
‘아름답지 않아?’
미국 간 이안 감독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따뜻해져간다, 고 생각해 본다. 미국서의 첫 작품 <아이스 스톰>은 무섭도록 서늘했는데 <브로크벡 마운틴>은 담백하고 차분했다. 히피문화를 통한 각성과 발견을 얘기하는 이 영화, 특유의 신랄함 다 감춘 건 아니라 해도 많이 유쾌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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