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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하 하 하 - 하, 하, 하

by 숲길로 2010. 5. 27.

제목 : 하하하(2010) 116분

감독 : 홍상수

출연 :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  예지원  김강우  윤여정  김규리  기주봉  김영호

    

 


<하 하 하>란 제목에 하, 하, 하, 쉼표를 찍어본다. 토막난 음절들이 응집 잃고 허공에 흩어진다. 하늘로 떠오르는 웃음의 모음과 자음들, 흰구름 조각으로 둥둥 떠간다.

웃음소리 사라지니 하늘엔 구름으로 진화한 웃음의 꼴만, 흔적만 남았다. 어쩌면 하, 하, 하, 는 의성어가 아니라 의태어일까...? 소리가 아니라 몸의 흔들리는 그늘에 닿는 나라일까?  


홍상수 감독(이하 홍)의 얘기들은 늘 기묘하게 어긋나는 남과 여의 만남들이다. 깨진 거울조각을 들여다보는 듯, 곡률 다른 거울들을 마주 놓은 듯, 하나의 얘기이면서도 비친 모습들 결코 같지 않은 두 개 혹은 수 개 얘기들이 어긋나게 맞물린다. 비틀거리며 흐르거나 굴러간다.

 


 

예전엔 그리 생각했다. 김기덕이 거리와 심연을 말하듯 홍은 분열을 얘기한다고.

그는 일상을 분해하여 거의 무의미로 되돌린다. 무의미한 이미지들이 욕망에 물들며 서로 충돌한다. <생활의 발견>에서 발견되는 것은 생활이 아니라 무익하게 되풀이하는 어떤 것들이다. 생활은 아귀 맞지 않는 파편들의 집합이다. 해탈의 헛된 욕망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얼마나 더 얽혀드는가? 소양호 건너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그들은 되돌아 나온다. 윤회전생은 멈추지 않는다. 소통 또한 불가능하다. 말은 해체되어 서로 다른 무의미의 빛깔로 허공을 떠돌 뿐.

<해변의 여인>은 조금 달랐다. 서로 상처 입힐 만큼 까칠하고 날카롭던 어긋남의 단면들이 무뎌지고 어떤 구멍 - ‘다른 곳’이라 부를 만한 - 이 보였다. 가령, 그녀가 도마뱀~ 도마뱀~ 노래 부르며 가던 숲길이나 세 그루 나무가 있는 모래언덕 따위. 악다구니의 메아리를 삼키던 그 구멍을 저마다의 피안이라 불러도 된다면, 기댈 언덕 하나 지니고 굴러가는 이승은 한결 서늘해졌다 해도 좋을 터.

 

 

 

구멍은 닫혔지만 낡고도 새로운 주문이 여기 있다.

‘좋은 것만 본다’는 그 주문의 광채는, 흑백의 현재가 불러낸 지난날을 찬란히 물들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주장과, 보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한 격렬한 우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를 일그러뜨리며 지나간다. 허나 우문들을 꿰뚫는 실제는 낯설고 섬뜩하다. 어떤 말이나 이미지와도 닮아 있지 않다.

서로 어긋난 세계, 저마다의 통영, 그 여름의 통영은 그러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어긋난 단면은 누구의 몸도 베지 않는다. 어긋난 채 비켜 흘러갈 따름이다. 보지 않으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은 품고 그들은 저마다 혹은 함께 길을 떠난다.

 

<하하하>에서 홍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들 한다. 그런 거 같다. 특히 많이 웃을 수 있어 좋다. 웃음은 다칠 위험 없이 뛰어내리며 감정의 고도를 만끽하는 것이다. 웃고 난 바닥이 한결 쓸쓸하거나 씁쓸할지라도. 

 


 

진작 본 영화지만 홍상수 감독 영화의 감상을 정리하기란 늘 수월치 않았다. 예전엔 어떤 불편함이 그것을 말렸고 지금은 익숙해진 게으름이 그 노릇을 비켜간다. 불편함의 정체를 밝히지도 못하면서 게으름을 말하는 건 썩 무책임하거나 부적절하다. 그러나 왠지 그의 영화에 대해선 게으름을 말해도 괜찮을 거 같다. 웃음으로 넉넉히 흔들렸던 몸의 짐짓 게으름 말이다.

‘좋은 것만 본다’, 는 뜬금없는 다짐에 내 게으름을 걸쳐 놓아도 될까...  망설이는 사이 하, 하, 하, 구름 흩어져 버린다.

잠시나마 새파랗게 맑은 하늘이다. 금세 어긋나고 깨어질 한세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