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킬러 인사이드 미 (The Killer Inside Me, 2010) 103분
(미성년자는 읽지 마세용^^)
노을 지는 사막 바라보며 그만 길게 눕고 싶어진다. 애도哀悼 없는 죽음들 위를 지나 세상 끝 향해 느리게 흘러가는 무심한 선율들.... 섬뜩하고 아름답다.
복수는 핑계였을 것이다. 무겁게 침묵하다 간헐적으로 발사되는 탄환처럼 그는 날아갔고, 목표물들을 정확히 쓰러뜨렸다. 문득 지겨웠던 걸까? 무엇이 그를 격발했을까...?
그녀는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다. 사막에 갇힌 평온한(?) 소도시, 질리도록 무거운 위선과 권태로부터 그를 때려 깨운 건 그녀였다.
깨어난 남자, 이제 그가 때린다. 때리며 다시금 스스로를 일깨운다. 몸 깊이 박혀있던 상처들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몸을 깨운 구타, 그건 필시 형태적 존재를 무너뜨리려는 행위로 나아간다(물론 몸肉의 덧없음을 생각한다면 그 형태조차 일시적인 것이다). 생식을 추구하지 않는 sex 또한 그러하다. 에로티즘은 순수한 전유를, 존재의 탈취를 꿈꾼다. 그의 sex는 상대의 존재를 박탈하려는 듯 폭력적이다.
성性의 절정이 살해라고 말한 이는 사드였던가? 에로티즘이 극단의 삶을 향한 매혹이며 가학은 그 고통스런 폭발이라면, 죽음은 거부할 수 없는 향수鄕愁처럼 엄습한다. 치명적 매혹이다. 내뱉듯 삼키듯 그는 웅얼거린다. ‘그녀가 죽어야 할 이유는 명백했다’ 고.
서로의 품 안에서, 그녀는 그를 통해 도시 바깥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녀의 등 너머만을 보고 있었다. 도시의 안과 밖은 이미 그에게 무의미한 경계였다. 그는 침착하게 질주한다. 그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그녀들은 가차없이 짓이겨진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가 애처롭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 몸 깊이 그는 칼날을 밀어 넣는다. 가장 순수한 폭력. 그것은 그가 다다른 최고의 sex였다. 비수의 몸들 휩싸는 불길 속에서 그와 그녀... 아담과 이브처럼 자신을 깨워준 최초의 서로에게 깊이 감사했을까?
떠오르는 영화 몇.
숨막히게 건조한 폭력으로 점철된 비정한 세계상이 아름답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불모의 유희를 넘어 가장 유력한 폭력의 동기가 되어버린 현대의 성性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영 아담>, 그리고 샘 멘데스 감독의 빼어난 영화들...
요즘 흔해빠진 사이코패스 영화의 하나로 치부해도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교묘하게 잘 만든 영화다. 사이코패스란 말도 맘에 들지 않는다. 가장 무책임하고 난폭한 딱지인 빨갱이란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빨갱이가 그러하듯 사이코패스 역시 나 아닌 누군가가 아니다. 제목처럼 내 안의 누군가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도 아니다. 장르적 특징들 자주 보이지만 특유의 긴장이 없다. 덕분에 누아르 틀에 기대면서도 기름기 없이 담백하다.
전혀 윤리적이지도 않다. 상처입은 관객의 도덕심은 끝내 보상되지 않는다.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도 난폭하기 그지없다. 상식과 도덕으로 무장한 관객들, 여러모로 매우 불쾌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당신의 상식과 도덕심을 짖궂게 시험하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절묘하다. 건전한 시민인 당신, 혹시 잠시나마 살인자에게 공감하고 그녀의 예쁜 엉덩이에 도착적으로 혹하지 않으셨는지...?
주연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는 놀랍다. 표정과 말투 몸짓... 모두 감탄스럽다. 제시카 알바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여전히 예뻐서 더 좋다.
음악들이 아주 좋다. 귀에 익은 명 아리아들과 재즈곡들.
예전 같으면 그 아리아들 다 기억했다가 다시 들어보았을 텐데 이젠 돌아서니 절벽이다. 기억나는 건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린 눈물’과 R.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 중 ‘저녁 노을에’ 뿐.
‘저녁 노을에’는 특히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영화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에로틱한 가학과 살해의 통증을 쓰다듬듯, 그토록 나른하고 섬뜩하던 탐미의 선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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