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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셔터 아일랜드 - 폭력의 구조 혹은 거짓의 문법

by 숲길로 2010. 4. 12.

         원제 : Shutter Island(2010  미국 138분) 

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마크 러팔로  벤 킹슬리, 미셸 윌리엄스, 막스 폰 시도우

 

 

사월이 깊었건만 여전히 바람 불고 흐리다. 춥고 캄캄한 뻘바다에 누운 이들은 말이 없다. 그 날 이후 오늘까지 이어지는 거짓의 향연 혹은 비열한 스무고개. 대체 저것이, 무서우리만치 준엄하고 고매했던 정신의 소유자 이순신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과 민주국가 위정자들 입이라니...!

거짓말에도 격이 있는 법인데, 저토록 치졸하고 철면피한 거짓말 기계들...


끝까지 긴장 놓치지 않는 치밀한 심리 스릴러 <셔터 아일랜드>.

무심코 지나치듯 발설된 숫자 하나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오래토록 어둔 잔상을 남긴다. 사내가 지워버린, 지워버리고 싶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린 사건이 있었던 해의 숫자이지만, 배후로 겹쳐지는 미국현대사 연표로 읽으면 그 의미가 한층 도드라진다. 매카시 의원의 폭탄선언으로 시작된 마녀사냥의 연대를 뜻하는  기호, 1952.

비린내 흥건한 폭력의 미국 현대사에 집착해 오던 감독의 전작들에 비추어 본다면, 거대한 물에 갇힌 섬 <셔터 아일랜드> 역시 미국을 은유하는 또다른 장소다. 예전의 거리(street)는 섬(island)이 되었다. 밖으로 열린 거리와, 바깥과 격리되고 안으로 닫힌 섬의 차이. 그 장소 이동은 세계관의 변화라기보다 연륜에 따른 성찰의 차이로 읽힌다. 

 

폭력의 상처(트라우마)로부터 끝없이 자가발전하며 진행하는, 자기성찰이 불가능한 폭력 캐릭터. 많이 낯익다. <메멘토>와  <다크 나이트> 따위가 떠오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얼추 나이든 티를 내지만 여전 애얼굴이다. 영원한 미성숙의 그 표정은 자기성찰이 불가능한 폭력 캐릭터에 절묘하게 어울리며, 이 영화를 <갱스 오브 뉴욕> 이후 스콜세지 감독과 함께한 작품 중 최고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그를 바라보는 닥터 코리의 굳은 무표정엔 신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이 대책없는 자를 어찌하면 좋을까...? 그러나 문제는 구원이 아니라, 폭력을 변주하는 현재진행의 상처와 망상 자체.

  

 

대립하는 원초적 물질의 힘을 잃어버리고 오직 공포와 상처로만 남은 물과 불의 이미지. 위태롭게 흔들리며 물결치듯 흘러가는 상처와 망상의 시간과, 끝내 흐르지 못하고 쉼 없이 되돌아오는 갇힌 섬의 시간들. 꼭꼭 묻어둔 상처를 후벼 파는 궤변과 독설과 비현실적으로 넘실대는 폭력의 이미지들... 어느 것 하나 거칠거나 딱딱하지 않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잿빛(ash) 절벽(cliff)의 뜻으로 읽고 싶은 애쉬클리프 섬과, 사내의 품에서 부서져 내리던 장밋빛 재(ash)의 몸뚱아리. 멈출 듯 느린 화면으로 흐르는 학살의 묵시적 풍경을 천상에서 반주하던 말러의 탐미적 선율.

완강한 현실을 짓는 것은 그토록 풍성하고 아름다운 헛것들이며 빛깔들이다. 멀미 없이 다가갈 수 없는 잿빛 절벽의 섬은 그러므로 폭력의 기억과 망상으로 지어올린 물 위의 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자, 아니 알지 못하므로 살아있는 자는 망상의 섬을 자기도취의 우문(愚問) 속에 가두고 영원의 정적을 향하여 걸어간다.   

'괴물로 살아가느냐? 선량한 사람으로 죽느냐...?'

공허한 독백 내뱉는 사내의 뒷모습이 안쓰럽고 허허롭다. 정체성 혼란을 보여주던 또다른 우문, <다크 나이트> 덴트 검사의 대사가 환청으로 겹쳐 울린다.

 '영웅으로 죽든가 살아남아 악당이 되든가'

 

  

성찰없이 날뛰는 폭력과 그 폭력을 제압하는 더 크고 강하고 제도적인 폭력, 이 모든 폭력은 어떤 기원을 가지며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교묘한 연출은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지위마저 확정하지 않는다. 참혹하도록 아름답게 둥둥 떠도는 암시들 위로 선명히 부각되는 것은 폭력 그 자체 뿐.  

세계를 지배하는 인간, 인간을 지배하는 폭력의 굴레. 인간은 과연 그 굴레를 벗어날 능력이 있는가?

어쩜 이건 폭력의 구조 혹은 해탈에 관한 문제다.  여태 빼어난 ‘폭력의 풍속화가’였던 스콜세지 감독, 기어이 한 경지 얻으신 걸까? 

 

전작들은 그랬다. 거리를 떠도는 폭력의 배후, 제도와 질서의 가면 뒤에 감춰진 폭력을 거리로 끌어내어 적나라한 얼굴을 까발렸다. 노골적인 거리 폭력의 순진함과 제도와 국가 폭력의 사악하고 비열함을 대비시켰다. 폭력의 거리, 비열한 거리 아닌 역사 마당은 없더란 것. 그게 그의 인식이었다. 친구 연인 가족 종족 국가 따위의 모든 관계를 짓거나 일그러뜨리는 폭력의 구조. <성난 황소> <좋은 친구들> <비열한 거리> <순수의 시대> <갱스 오브 뉴욕>.... 그것들은 슬픔이나 연민 없이 바라보는 폭력으로 구조화된 세계의 모습이었다.

이제 폭력의 세계상은 한 영혼의 내면 깊이 굴절한다. 무겁고 진한 필치로 그려낸 그 풍경의 세밀화는 여태 그려온 폭력의 얼개, 마지막 빈틈을 채우며 완성한다. 한 인물의 개인사로 투영되고 은유된 국가 역사의 편린들도 흥미롭지만, 거리로 풍문으로 떠돌던 폭력이 마침내 우리 자신의 캄캄한 속 깊이에서 오래 기생할 숙주와 일용할 양식을 찾았다는 점은 퍽 흥미롭고도 암담하다. 

폭력의 구조는 망상을 낳는 거짓의 문법으로 지탱된다. 우울하게도 그것은 사회생물학적 사실에 속한다. 그러므로 해탈은 없다. 미치게 망상하거나 죽음처럼 고요해지거나... 둘 중 하나일 따름.

  

근래 본 몇 편들이 그저 그랬던 터라 얘기 짜임새와 질감 모두 좋은 이 영화가 더 반가웠다. 새로움 없는 얘기들을 화려한 그래픽에 담아 솜씨좋게 잡탕한 <아바타>, 당혹스럽도록 기름지고 매끄러워 팀 버튼표가 의심스럽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썩 괜찮은 만듦새에 비해 구태의연한 시각과 도식적인 캐릭터가 거슬리던 <의형제> 등...

<그린 존>은 수작이었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WMD)를 빙자하여 이라크를 침공, 정권을 전복한 미국 정부의 거짓말을 까발린다는 뻔한 내용이지만, 치밀한 구성과 긴장도 높은 액션 스릴러 <본> 시리즈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전혀 새롭고 멋진 물건을 만들어 놓았다. 꽤 건조하여 여성 취향을 비켜나지만 팽팽한 긴장과 군더더기 없는 박진은 누구나 썩 즐길 만하다.


어찌 보면 <셔터 아일랜드>와 <그린 존> 모두 폭력과 거짓말에 관한 영화다.

제도와 권력의 어이없는 거대한 거짓말에 지친 우울한 이 봄날,

스스로의 폭력에 상처입고 찢겨진 한 불행한 영혼의 이야기와, 비열한 전쟁이 감춘 불편한 진실을 까발린 영화 한편,  

동료의 죽음을 두고도 감히 거짓 농할 수 있는 저 강심장들, 상처 없는 영혼의 괴물들에게 꼭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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