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에반게리온:파破(Evangelion: 2.0 You Can (Not) Advance, 2009)
감독 : 안노 히데아키, 마사유키, 츠루마키 카즈야
출연 : 오가타 메구미, 하야시바라 메구미, 미야무라 유코, 사카모토 마아야(목소리들?)
퍽 특이하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다. 화면 가득 숨 막히도록 아름답게 펼쳐지는 묵시록적 풍경들...
혹독한 성장통을 겪거나 자기도취적 개성에 사로잡힌 캐릭터들과, 맥락 없이 툭툭 던져지는 현학적인 대사의 퍼즐 조각은 좀 유치하지만, 탐미적 영상과 잡다한 코드 소재의 현란한 배합은 일본문화의 특징을 뛰어나게 표현하며 시청각적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가히 재패니메이션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들은 특정 메시지를 노골적이고 일관되게 주장하거나 표현한다. 거칠게 보아, 전자는 자연과 인간의 망가진 관계에 몰두하고, 후자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 사라진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뚜렷한 주제의식을 명확한 인과구조의 서사로 풀어낸다. 진지한 만큼 때로 그 주장과 방법이 살짝 느끼하거나 거북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문법을 구사하는 거 같다.
운명처럼 이유없이 엄습하는 폭력과 필사의 저항, 무거움과 가벼움, 비현실과 현실이 맥락도 우열도 없이 나란히 놓인다.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이 불친절하게 뒤섞이고 선과 악조차 모호하게 엉킨다. 공公이 사私보다 우월하지도 않다. 개인 감정과 인류의 운명이 걸린 임무가 한 통속으로 꼬이고, 인간 내면의 광기어린 분출이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무엇의 동력이 된다. 여태 그토록 분명했던 구분의 경계가 과연 그리 명확하고 마땅한지를 묻기라도 하듯.
낯익은 구분의 경계 지워진 곳에 사라진 줄 알았던 낯설고 불편한 어떤 경계들이 되돌아온다. 선악의 경계 대신 신과 인간, 운명과 의지 따위가 놓인다. 종교 담론과 이미지들이 과학 기술을 지배하며 둥둥 떠다니더니 급기야 출생 기원 수상쩍은 괴물기계가 광기 충만한 소년의 몸과 융합한다. 자유와 의지의 극단에서 열리는 초월적 혹은 신적 영역의 지평, 깊어지는 피빛 심연.
장황하고 풍성하며, 앙상하고 거칠다. 니 입맛대로 보고 이해하란 듯...
교묘하고 산만한 퍼즐을 가장했어도 골격은 썩 단순해 보인다. 종말론적 풍경의 축과 비틀린 성장 서사의 축. 소년은 자라지 않고 다만 진화한다, 라고 해야겠지만 종의 운명을 넘어서는 개체의 의지란 가혹한 운명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환상일 따름이다. 성장하는 모든 것은 미숙/조숙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다. 종의 운명과 개체의 운명이 통일되는 지점에서 두 축은 하나로 만난다. 성장의 완성은 종말의 완성이며 또한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태어난 것은 더 강해지고 새로워진 괴물일 뿐이다.
성장서사의 축을 벗어나 있는 디테일들, ‘신’이니 ‘사해 문서’니 ‘인류보완계획’이니 하는 황당한 단어들이 튀어나오지만, 대사와 행동의 서사 맥락을 따르기보다 꿈꾸듯 아름답고 무의미한 영상 이미지를 보완할 따름이다. 뜬금없는 단어들의 함축은 눈부신 영상 회오리 속으로 가차 없이 빨려 들어가 파국의 풍경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대사 자체는 우리 관심을 영상 이미지로 유도하는 미끼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수수께끼는 영상 이미지로 수렴하고 발산한다. 꽃피듯 피어나고 폭발한다. 빈곤해질수록 앙상하게 빛나는 서사, 풍성해질수록 신비로워지는 풍경...
뒤집어진 푸른 하늘인 붉은 바다와, 파괴의 빛으로 피어나는 하얀 십자가. 정靜과 동動, 곡선과 직선의 절묘한 대비와 통일. 부단히 변주되는 종말과 창세의 은유처럼, 응축된 한 점으로부터 폭발하듯 펼쳐지는 하늘들의 형상.
끝없이 되돌아오는 거대한 파괴적 힘 자체인 정체불명의 사도, 허공 가득 죽음의 날개 펼치며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엄습하는 그것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생명이 아니므로 가장 비인간적이고 기하학적으로 아름답고, 파괴의 기능만을 지녔기에 더욱 참혹하게 아름답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길하다. 유일하고 완전한 힘을 꿈꾼다. 이기기 위해, 더 이상 괴롭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나타날 기적같은 힘을 추구한다. 유기체에서 기계로의 변환이 아니라 기계와 융합하며 진화하는 몸의 형상, 기술의 임계치를 넘어선 곳에서 괴물몸을 벗고 새로이 태어나는 초월적 존재의 그림자. 아들의 맹목 의지는 아비의 꿈을 단박에 깨고 넘어선다. 유사 이래 인류의 핏속 깊이 흐르고 있는 저 꿈... 무섭고 아름답다.
다시 찾아온 종말, 그리고 그 이후...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기둥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고 싶은 세상이지만, 불길한 그 꿈이 가 닿는 곳 또한 어느 먼 별나라가 아니다. 폐허와 함께 태어난 저 괴물이 홀로 꿈꾸며 펼쳐놓을 세계도 또 하나의 이 세상일 따름이다. 지금 이 곳을 훌쩍 뛰어넘는 진화는 모든 몸 가진 것들의 필사의 꿈, 그러나 다른 곳은 없다.
신이 창조한 세계라 해도 어쩔 수 없이 진화의 구조는 영원회귀일까?
tv 시리즈와 전편 <에반게리온:서序>를 포함하든 말든, 이야기 구조로만 보면 이 영화는 껍질 아무리 벗겨도 속 나타나지 않는 양파 같다. 그래서 <에반게리온:파破>는 놀랍다. 바로 그 불연속 껍질의 양파 구조가 함축하는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현한 빼어난 영상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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