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더 (Mother, 2009) 128분
감독 : 봉준호
출연 : 김혜자, 원빈, 진구, 윤제문...
글 :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
구멍, 동굴, 틈, 심연,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봉준호 영화에는 언제나 검은 공동(空洞)이 파여 있다. 인물과 서사는 그 움푹하고 괴괴한 어둠 속으로 스러져 간다.
우선, 말 그대로 구멍에 해당하는 장소가 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속에 깊고 좁고 빛이 들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넣는다. <플란다스의 개>의 아파트 지하실에서 경비원(변희봉)이 도시괴담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동안, 카메라는 콘크리트 기둥이 암흑을 향해 늘어선 공간을 넘겨다본다. <살인의 추억>의 ‘동굴’은, 강력한 용의자(박해일)가 비실비실 사라져 가는 터널과 세월이 흘러 현장에 돌아온 박두만 형사가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는 들판의 수로다. <괴물>에서 현서(고아성)를 납치한 괴물 역시 좁고 깊숙한 둥지에 서식한다. 나아가 봉준호의 영화는 구조 자체가 함정이다. ‘무’(無)라는 중심을 향해 나선형으로 설계된 미로다. 죄 지은 자는 잡히지 않거나(<살인의 추억) 너무 늦게 잡히고(<괴물>), 애초에 범죄를 배태한 허술한 시스템은 뻥뻥 구멍이 뚫린 채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우리 곁에 온존한다.
<마더>에도 깊고 좁은 장소들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혜자(김혜자)가 곁눈질로 아들 도준(원빈)을 살피며 작두를 놀리는 약재상은 햇볕이 미치지 않을 만큼 속이 깊은 공간이다. 도준과 혜자가 만나는 면회실은 유리 칸막이로 나누어진 터널처럼 보인다. 마을 형사가, 난간에 걸쳐진 죽은 소녀의 얼굴을 소녀의 두 다리 사이로 들여다볼 때 카메라의 앵글은 <살인의 추억>의 수로 장면을 정확히 상기시킨다. 전작들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마더>의 수사도 빈손으로 끝난다. 주인공과 관객은 진범을 알고도 발설할 수 없으며 극중 경찰은 실패한다. 아무도 잡을 수 없는 덫을 설계하기 위해 봉준호는 작위성의 위험을 무릅쓰고, 광기와 기억상실이라는 극약을 플롯의 고비에 동원했다. 그러나 행위에는 결과가 따른다. 이 모든 ‘편의적’ 망각의 총합을 한 몸에 떠안고 허벅지에 침을 찔러야 하는 존재는 결국 엄마 혜자다. 그리하여 그는 영화의 주인공인 동시에 서사의 텅 빈 소실점이 된다. 혜자가 벌판에서 춤을 추는 첫 장면은 시사적이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비현실이라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줄거리 바깥을 떠돌며 영화 속 엄마의 이중적 위치를 암시한다.
우리는 엄마가 모든 허물을 싸안고 덮는 존재라고 믿는다. <마더>는 그것이 미담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요컨대 <마더>의 엄마는 세상의 퀴퀴한 흑막을 처박아두는 동굴, 더러움과 치욕을 꿀꺽 삼켜 버리고 신음하는 심연이다. 우리의 불건강한 세계는 그 애처로운 심연 없이 멀쩡한 표면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마더>는 슬퍼하며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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