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12살 성장통이라기엔 사는 게 너무 버거운 소년,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자신을 핍박하는 급우에 대한 복수의 주문을 왼다.
그 주문을 따라 왔을까? 어느 날 소녀가 나타났고, 그녀는 속삭인다.
‘나는 너야... 어두워지면 너에게 갈게.’
......
영화가 끝날 무렵 맨 처음처럼 다시 눈이 내린다. 하나의 이야기 혹은 수없이 되풀이된 이야기의 전사前史가 끝나는 걸까? 아니면 전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걸까...?
어쨌든 그들은 떠난다. 이전의 모든 그들처럼, 그러나 지금은 오직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영화는,
소녀의 연인에서 아빠로 늙어갔을 모든 노인들의 저마다 유일무이한 회고담이며, 영원히 닫히지 않고 매번 다시 열리는 잔혹한 사랑의 판타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년도 청년도 아닌 모호한 12살 그 외롭던 시절에 바치는 아름답고 슬픈 찬가다.
밀착 없는 카메라는 먼 자작나무 숲의 적막을 길어 나르며 자주 침묵한다. 노르웨이의 서정시인 케틸 비외른시타트의 음악을 연상시키지만 한결 어두운 피아노 선율은 북유럽 설원을 거닐듯 느리게 흘러간다.
메마르고 딱딱한 잿빛 도시는 너무 늙어버린 것 같고, 피가 흐르는 숲에는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 날, 정반대쪽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단 하나의 날카로운 비명은 한 순간 시간을 멈추었다. 이후 소년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모든 것이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바뀌어 갔다.
소년 소녀, 벗은 몸들은 눈부셔 더 쓸쓸하고, 몽롱하거나 깊고 어둔 그들의 눈빛은 처지고 굼뜬 노년을 더욱 무기력하게 한다. 지평 가득 펼쳐진 설원에 서서 몸과 마음 모두 피빛에 물들어가지만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 시절, 사무치도록 아름답다.
이건 어쩌면 그 몸들의 이야기일까? 늙은 몸을 가진 남자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몸을 가진 소년. 그리고 늙지 않는 몸을 가진 소녀.
생명이 저 피, 우리 오감을 사납게 요동치게 하는 저 붉은 피로부터 오는 것이며, 피빛을 잃어버린 생명과 문명이 얼마나 비루하고 삭막한 것인지 보여주려는 걸까?
불멸에 대한 매혹 혹은 저주로, 또 내(우리) 안의 타자란 주제로 뱀파이어 전설은 흔해빠진 영화 소재였지만, 늙고 낡고 사라져가는 모든 이들 곁에서 영원히 12살에 머무는 이 북유럽산 뱀파이어 이야기.
여태 본 중 가장 참신하고 아름답다.
"날 들여보내줘 let me in"
누구의 창문 앞에서 지금 그 목소리는 서성이고 있을까...?
한 입 가득 눈을 삼키고 눈을 감는다.
눈물이 날 듯 폐부로 파고드는 서늘한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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