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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아무도 모른다

by 숲길로 2008. 8. 19.

  

 

 
제목 :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2004)
 
 

“유키, 그동안 많이 자랐구나...”

아이는 대답이 없다.


쉼 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맘껏 볼 수 있는 활주로 옆에 그들은 유키를 묻는다. 세상이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던 아이는 이제 가장 너른 하늘가에 눕는다.

어둠 속에서 떨리던 아키라의 손, 얼굴조차 대신할 수 없는 손의 표정...

 

 

봄날의 만발한 꽃그늘을 달리고, 굶주림 속에서 꽃씨를 심고 물을 주는 아이들.

희망이라는 이름의 절망 혹은 두려움.

세상의 한 뼘 틈새를 비집고 솟아나는, 그들이 심은 꽃씨와 교감할 그 힘은 아마도 존재의 신비에 가 닿는 무엇일 것이다. 지구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실화라는 자막을 깔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끝까지 어떤 기대나 미련의 여지도 두지 않는다. 최루성 소재임에도 불구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탐하지 않는다. 환상의 힘에 기대 진실을 가리키곤 하는 영화만의 장기도 버렸다. 한 점 환상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처에선 이보다 더 비참한 일이 일어나고 있고,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갖는 놀라운 흡인력은, 다가서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끈질기게 지켜보는 응시의 힘이다. 

무섭도록 냉정하게 드러나는 살아가는 일의 진실 앞에 우리는 침묵해야 할 따름...

 

 

 

아래는 개봉 당시의 영화평 기사(2005년).

성장드라마로 보는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힘들지만, 인터넷에서 잠시 훑어본 중 가장 좋은 글이다.   

 


아무도 모른다 誰も知らない -소년은 울지 않는다

 

 

아버지가 서로 다른 네 아이를 둔 어머니가 아이들만 남겨둔 채 집을 떠난다.

버려진 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힘겹게 삶을 이어간다.

2005년 칸국제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감동의 성장 드라마.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는 <아무도 모른다>는 외형상 다큐멘터리적인 관찰 방식을 끌어들임으로써 일종의 르포르타주 같은 인상을 준다. 각기 아버지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가 새 결혼을 위해 집을 나가고, 남겨진 네 아이가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며 힘겹게 살아간다는 내용만 보면, 사회고발의 인상을 갖게 되는 것도 별 무리는 아니다.


아이의 어머니를 비판할 수도 있고, 사회의 무관심을 비판할 수도 있지만, 영화는 구태의연한 재판을 거부한다. 감독은 타자의 삶에 주관적인 감정을 덧입히기보다는 최대한 관찰자의 감정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주시한다.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누가 이 아이들을 버렸는가?’가 아니라, ‘힘든 삶 속에서도 아이들은 희망을 생각하고, 어떻게든 성장해 간다’라는 점이다.


<아무도 모른다>를 성장영화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작품에 담긴 낙관적인 시선이다. 아이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길을 찾는다. 미성년이라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는 처지이지만, 장남 아키라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살림을 유지해 나간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고, 학교도 다니고 싶지만, 세 동생과 함께 지내는 삶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무거운 짐을 떠맡은 소년은 부모를 잃고, 친구를 잃고,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는 슬픔을 겪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꿋꿋이 삶을 이어간다.


지극히 비참한 삶을 그리면서도 <아무도 모른다>는 희망의 빛을 잃지 않는다. 감독의 이전 작품들에서 등장인물들이 주변 인물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작의 끈을 찾았던 것처럼, 아키라도 가장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현실의 삶 속에서 길을 찾아간다. 이 영화가 슬픈 것은 누군가가 죽어서가 아니다. 타인의 죽음을 안고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삶의 불가해한 아이러니 때문이다. 상실의 고통과 삶의 희망이 교차하는 엔딩 장면의 묘한 여운은 그래서 더욱 짙게 남는다. 최루성 신파극과 비교할 수 없는 고염도의 눈물을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이유는, 그 슬픔이 보편적인 삶의 근원에 있는 그 무엇과 닮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철학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은 <환상의 빛>이다. 이유 없이 자살한 남편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여자의 슬픔을 그린 이 영화로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죽음에 대한 사려 깊은 고찰은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로 이어졌다. 죽음이 극의 시작이었던 이전 영화들과 다소 다른 구성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역시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객관적이면서 따뜻한 시선을 품고 있다.

 

                                                                                     - 고경석 기자 [무비위크] 

 

 

며칠 전 EBS 방송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지만,

깐느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쿠엔틴 타란티노가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지금껏 기억나는 건 그의 표정 뿐’이라 했듯이, 아키라의 표정만은 오래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야기라 유야가 연기한 아키라.

개인적으론, 위 장면보다 편의점에서 도둑으로 몰려 '나는 훔치지 않았어요' 라며 조용히 항변하는 장면의 표정이 더 인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