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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three times(最好的時光) - 시절의 빛

by 숲길로 2008. 6. 24.
 

  

 

 

영화명 : 쓰리 타임즈 (2005)
감독 : 허우 샤오시엔

출연 :


사랑한다는 말.

발설함으로써 사라지는 무엇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아느냐고 하지만, 알아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알려져야만 사랑이 있겠는가. 오히려 말하는 순간 한껏 부풀며 풍선처럼 하늘로 솟아올라 사라진다.

언어의 물질성은 유구하지 않다. 언어로 오기 전 그 불가능한 육체성의 영역, 입 없이 꿈틀거리는 몸의 영역에서 날개를 얻으려 발버둥치는 그 곳에 오래오래 머무르기.

 

 

시광(時光)이란 말이 참 좋다. 우리가 시절이라 부르는 것을 그들은 시광이라 하는 모양이다.

시절의 어감은 발음에 많이 빚진다. 멀리 흘러가는 유음의 울림과 여운이 좋다. 그 여운 속에는 일순간 아득히 맺혔다가 사라지는 무엇이 있다.

반면 시광은 빛깔에 크게 힘입는다. 청각이 앞서는 시절이라면, 시광은 시각이 앞서는 이미지다. 눈부시다. 이 영화는 시광(시절의 빛)이란 단어 하나에, 오래 진동하는 시절의 울림과 후경으로 펼쳐지는 시대의 그늘을 겹쳐 놓는다. 3 시대의 풍속화...


47년생이므로 감독은 환갑을 바로 앞두고 이 영화를 만든 셈.

사랑을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 노년은 비로소 꿈으로 세계를 읽는다. 청춘이든 자유든 사랑이든, 그것은 꿈과 등식이다. 66년, 11년, 그리고 05년...


66년은 근대화의 시기, 참 각박했던 철이었을 것이다. 대만 현대사에서 ‘고웅’이란 도시 이름에는 이 나라 빛고을 광주와 비슷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 도시의 변두리를 떠돌던 당구장 아가씨와 청년, 그리고 군대...

11년은 청말, 개화파 지식인과 기녀. 신분의 벽과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로 번지는 시대의 암울함. 식민지 대만의 그림자가 거기에 있다.

05년, 참 바람같은, 그러나...

과잉과 결핍이 서로를 떠밀고 타인의 목소리는 끊어진다. 이걸 사랑 이야기로 보아야 할까? 흔들림과 단절. 자의식의 과잉 속으로 번져드는 단절의 음향들, 아니 단속음들.

스냅 사진들로 빼곡한 벽을 형광등으로 비춰 나간다. 그 뿐이다. 그게 청춘이라 부르는 시절時光의 풍경이다. 그리고 질주하기...

 

 

연애몽. 기다림과 기나긴 다가가기. 그리고 설레임?

단 하나의 이름을 타인들 이름(양선생, 그녀의 동생...) 속에 적어 넣거나, 풍경을 읊는 시 속에 밀어넣기. 그건 감춤의 방식으로 간절히 부르는 것. 기다리는 자는 역시 그였다.

11년의 그는 윤회하며, 66년의 남자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선다. 여자 역시 떠난다. 떠남의 방식인 기다림.

05년은 그러나, 출몰하기...

누가 누구의 윤회전생인가? 남자는 그녀를 태우고 달린다. 꿈은 질주한다. 사랑의, 자유의, 청춘의 꿈. 그러나 그 모든 꿈은 청춘에서, 푸르고 푸른 시절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시간은 그러므로 거꾸로 흐른다.

 

 

연애몽의 영상. 당구장 안의 어스름과 바깥의 빛. 그는 빛 속을 헤엄치다 어스름 속으로 들어서고 그녀를 만난다. 둘은 각각 보트를 타고 떠난다. 물이 가로막고 있는 곳...

자유몽의 대사. 절제되고 음악만이 있다. 영상에서 가장 띄는 것은 짙은 색감(과잉)과 그늘. 그늘이 말하게 한다. 그녀도 그렇고 그도 그렇다. 사물의 간접화법이다.

그게 그 시대였던가? 첩이란 신분의 그늘.

청춘몽의 영상. 어지럽다, 이어지지 않고 자꾸 끊긴다. 그가 찍은 사진들처럼 일관성이 없다. 그래서 달린다(단락을 잇기 위해서?). 푸르게, 또 푸르게. 달릴 때 그들은 푸르다.

꿈의 정념은 슬픔일까? 충만의 그 시절이 이제는 꿈이라 말할 수 있는? 그러므로 청춘몽의 질주는 사실 청춘 그 자체와 사랑이라 부르는 모든 바람결에 대한 은유다. 혹은 시선이다.

아름다움. 가운데 있는 자유몽은 그래서 숨겨진 것(가운데)이다.

 

 

 

 

Three times 란 제목이 그럴듯하다. 사랑의 세 방식이기도 하다.

그 시절 그 때, 60년대 대책 없던 시절, 11년 막막하던 침묵의 시절, 05년 터지고 말듯 흔들리던 시절.

표류. 바람 맞으며 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지만 세상 끝도 아닌 길 위에서 그들은 만난다.

침묵. 언어의 빛, 그림자의 빛깔에 전해 오는 울림.

몸. 움직임의 빛, 한없이 흩어질 뿐 그들은 길 위를 달린다. 어느 곳에 다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곳에도 있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