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봉에서
다시 당겨본 운문령. 왼쪽이 문복산 오른쪽이 가지산
돌아본 낙타봉
당겨본 비슬산. 대덕산과 용지봉, 앞산과 주암 최정산릉도 뚜렷하다.
낙타봉과 환성을 돌아보다. 그 사이로 팔공 주봉이 살짝...
매여동 쪽으로 흘러내리는 깊은 골짜기는 대구를 향해 흘러간다
초례봉 가는 길엔 억새가 많아 초가을 산행의 운치를 더한다
돌아본 낙타 연봉
초례봉 너머로 화악을 당겨보다
억새 하늘거리는 헬리포트에서
초례봉에서 굽어본 대구시
오른쪽 고층건물은 건축중인 범어네거리 모 아파트
북서쪽 하늘. 올망졸망한 산들이 많아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초례봉 남쪽 지능선들이 잦아들며 대충 일곱 갈래로 펼쳐지고, 그 자락에 동내 신서 각산 마을이 자리한다.
사진 윗부분에 보이는 능선이 동내동 봉말랭이로 이어지는 줄기다.
동내동쪽 능선 가며 돌아본 초례봉은 피라밋처럼 뾰족하다.
그 시절, 어린 눈으로 돌아보던 초례봉은 늘 위태롭도록 까마득한 고도 그 자체였었다...
봉말랭이로 향하는 능선은 바람이 좋았다.
그 바람 향해 날아오르며...!
동내동을 굽어보다
당겨본 동내동. 살던 집 짚어낼 수도 있을 듯.
태어난 곳 아니지만 내 기억의 어둔 바닥까지 닿아있는 십수년 자란 마을이다. 저 풍경, 신서 택지지구에 편입되어 얼마 후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무심 가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명치가 저려온다...
이름 떠오르지 않는 저 저수지, 옛날엔 훨 작았던 거 같은데, 예닐곱 시절 동네 형들 따라 수영 배우러 갔다 빠져 죽을 뻔했다. 몸의 기억은 참 모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울컥 목구멍 틀어막던 물맛과 암담하던 찰나의 느낌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내가 아직 물과 친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까...?
봉말랭이 능선(어떤 지도엔 봉말리라 표기되어 있는데, 콧소리 흘러내리는 경상도식 발성으로 봉말래이라 불러야 제 맛이 난다)
덕스럽게 둥근 저 봉우리와 끝자락 194. 9봉 중 어느쪽이 봉말랭이인지 기억 흐리지만, 옛날에는 많이 민둥했다. 정월 대보름이면 아낙들은 달맞이 올랐고, 청년들은 사복동 청년들과 서로 돌팔매 싸움을 했다.
어린 우리들은 무시로 봉말랭이 올랐다. 부지런한 녀석들은 깔비 끌러 망태 메고 제집처럼 드나들고, 게으른 나는 소 모는 친구 따라 나서거나 놀이 삼아 어슬렁 올랐다. 할미꽃 만발한 초원에 딩굴거나 연한 삘기 뽑아 달착지근 씹으며 한나절 노닐다가 밥짓는 연기 오르는 해거름 되어서야 총총 내려오곤 했다.
봉말랭이 너머 이어지는 능선 솔숲길은 또 얼마나 깊고 그윽했던가...
너무도 오랜 시간 흐른 지금, 그 길을 다시 걷는다. 놀랍게도 지금은 길도 제대로 없다.(조폐산악회 리본 한두개 본 듯)
그러나 나도 모르게 불현듯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들, 내 몸 어디에 그 많은 것들이 숨어 있었던가 싶다. 열 걸음 멀다하고 앞을 막는 거미줄만 아니었다면, 두 눈 감고 몸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그 기억이 이끄는 발길 따라 한 치 오차없이 그 시절 그 친구 집 옆 오솔길로 내려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봉말랭이 능선은 이제 자연으로 돌아갔다. 스스로 기름지거나 거칠다.
지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를 얼굴보다 훨씬 큰 거미집을 수십여 개 헤치며 간다. 산 다니며 여태 부순 거미집 수량보다 더 많은 거 같다. 죄많은 짓... 아내는 꿈자리 사납겠다 놀린다.
대체 얼마나 오래 사람이 안 다닌 걸까... 상전벽해, 아니 제행무상이란 말이 떠오른다. 사람일 또한 그러하지만 저 푸른 자연의 덧없는 추이 앞에서 망연해질 따름...
몇 년 후, 신서지구 들어서면 묵을대로 묵은 저 능선으로도 밴질밴질 산책로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봉말랭이 능선에 다시 사람은 돌아오겠지만 옛날의 그 방식으로는 결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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