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안민고개 - 웅산 - 시루봉 - 천자봉 - 소방동산(여유롭게 5시간)
전반적으로 땡볕 구간이 많아 지루해지기 쉬운 코스다. 그러나 우회로로 빨리 가기보단(이 경우 4시간 안쪽도 충분) 주릉을 고스란히 따르며 암봉 곳곳, 길 비켜난 바위 곳곳에 숨어 있는 전망대에 들러 굽어보고 둘러보며 가면 아주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머피의 법칙이라 했던가?
산행을 망칠 확률은 매 산행마다 1/2임에도 불구하고(경험적으론 물론 그 이하다), 그 사람만 나타나면 거의 망치고 만다. 말하자면 그는 나와 코드가 안 맞거나 재수없는 인간이다.
이번 산행도 그랬다.
오랫만에(딱 8년만인가?) 진해 벚꽃도 보고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불모산도 다시 볼 겸 모 산악회를 따라 나섰는데 또 그가 나타났다. 그가 차에 오르는 순간, 혼자 중얼거렸다.
지길, 오늘 하루도 걱정되누만....$#%^&
그가 내 산행을 망치는 과정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첫째, 그는 가이드임에도 불구하고 길치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헤맨다. 내가 본 경우는 약 80% 타율이다. 초행의 경우는 100%란 소문...
둘째, 그래서 난 그를 거의 믿지 않는다. 믿어야 할 것조차도.
(그는 자신의 핸디캡을 감추려 무의식적으로 오버하는 듯, 여태 본 어떤 가이드들보다 유난히 잘난 체하며 너스레가 심하다. 그래서 나는 더 그를 못 믿고 심지어 경멸한다)
셋째, 가이드의 무능과 고객의 누적된 불신이 결정적으로 마주치며 상황이 터진다. 이번에 그는 사전에 공지된 계획을 멋대로 뒤틀어버린다. 치밀어오른 내 반응은,
'다른 사람도 아닌 길치인 당신이?? 꼴값 떠누만...!'
대충 이런 수순이었다.
이번 경우는 좀 결정적이었다. 무능한 인간이 또 오버한다 싶어 태클을 걸었는데, 예의 그 난 체하는 응수로 뭉개온다. 그래서 정면으로 치받은 후, 남들이 다 아는 무능을 본인은 정말 그토록 모르냐고 내질러 버렸다. 그것도 집요하게 강조하여!
정말 궁금하다. 그는 과연 자신의 문제를 그토록 모를까?
유치한 골목대장 모드 허세와 너스레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는 방편들이고, 스스로도 그 점을 잘 깨닫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걸 정작 스스로는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자의 불륜처럼.
인간이란 동물,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고결한 인간들에겐 과연 연민의 대상일 수밖에 없겠다.
이러는 나는 얼마나 자신을 알까?
이번의 경우,
나름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던 첫 태클 이후, 그에 대한 내 비난은 충분히 야비하고 잔인했다. 꽤나 한심해 보인 그의 인격을 뭉개기 위해 나 역시 자신의 인격을 가차없이 팽개친다는, 가학적인 동시에 자학적인 쾌감에 빠져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남들에겐 아마 또라이 비슷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게 전부일까...?
나는 모르지만 남들이 아는 나 자신. 그들은 그걸 말해주지 않는다.
그 앎과 무지의 틈에서 관계란 게 유지되고 인격이 버티고 서는 듯하다.
그와의 관계에서 난 그 틈을 가차없이 찢어버렸다. 그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지만, 때로 위태롭고 피곤한 일이다. 찢어진 조각은 대개 칼날이므로.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디뎌 버렸다는 건 불가피하게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될 건 분명하다.
생강나무들일 게다. 계곡을 물들이는 저 봄빛들...
원경은 흐리나 산빛은 곱다. 그나마 저 빛들이 산행 시작 전부터 돋은 열을 식혀준다.
돌아보다. 언젠가 장복산도 함 올라야 할텐데...
불모산릉은 곳곳에 암릉들이 좋다. 워낙 오래라 낯설 정도다.
진해 시가지.
가로수 벚꽃은 좀 피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이다.
예전에 왔을 때 보았던 진해는 꽃구름 속이었다.
지능선의 참꽃은 피어나고 있지만 주릉은 아직 멀었다.
웅산 정상에서
진행방향
길 살짝 벗어난 조망대에서
암릉부를 돌아보다
가덕도쪽?
능선 산빛이 눈부셔서...
돌아보는 저 봉우리는 우회하기 쉬운데 꼭 가볼만하다.
목책에 갇힌 시루봉
시루봉에서 굽어보는 천자봉릉
산자고가 꽤 많이 보인다
그런데 이 꽃, 줄기는 어릴때 많이 캐었던 달래같은데... 혹시 산자고 = 달래?
502봉 - 역시 우회하기 아까운 봉우리다
산자락은 연두로 흠씬 물드는 곳도 있다.
잠시지만 저 칼날같은 바윗길도 재미있다.
짧은 칼날릉에서
천자봉에서 돌아보다
시루봉의 목책은 참 볼썽사나웠다. 속살이 많이 상한 산릉길을 보호하기 위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재봉틀질 해놓은 듯한 저 흉터자국밖에 방법이 없었을까?
여긴 상처를 꿰매 놓은 곳이요! 하듯,
상처를 강조하며 드러내는 독특한 치유의 풍경은 참 아이러니컬하다고 해야 할지...
또 하나,
붉은 글씨로 쓴, 아름다운 자연이... 어쩌고 하는 팻말 옆에 거대한 '해병'이란 페인트칠 구조물을 아무런 갈등이나 모순을 느끼지 않고 함께 놓을 수 있는 두뇌구조는 얼마나 기상천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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