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감독 :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섬뜩하고, 허탈하다. 그리고...
바닥이 없는 우물을 들여다보듯 - 어떤 평론가는 ‘우물’이란 표현을 썼다. 정곡을 찔렀다 - 깊게 빠져 들어간다. 빛과 어둠을 모두 삼키더니 문득 내뱉는다. 무심하고 무표정하게...
코엔 형제의 장기인 미국 현대사회에 대한 신랄하고도 유머러스한 풍자가 급기야 영상적 심오함, 진정 설득력있는 표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제목을 불평하듯 노인은 자꾸 주절거린다. 그게 불편하지만 -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노인들의 특기중 하나다 - 이야기를 여닫는 그 주절거림이 영화의 형식적 아름다움에 성찰의 시선을 겹쳐 놓는다. 불변하는 먹이사슬의 전설 같기도 하고 일장춘몽 같기도 한, 돈가방을 둘러싼 쫓고 쫓기는 긴장과 공포를 더욱 아득한 낙차 속에 가둔다. 영화의 종결로 완성되는 그 낙차는 자체로 최고의 반전효과를 자아낸다. 경지에 다다른 연출이다.
무언가 있을 거라고 필사적으로 뒤쫓고 쫓기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독백같은 대화처럼 특별한 건 무엇도 없다.
그리하여 폭력에 탐닉하고 열광하는 시대, 그 시대를 사는 우리 면전을 향해
그래, 이 정도면 됐냐?! 라고 묻는다. 낮고 무겁게...
이 영화는 가장 고전적인 유혹의 기술을 구사한다. 흔적의 매혹을, 매혹하는 흔적들을 더없이 짜릿하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달아나며 유혹하는 핏자국, 고통 혹은 침묵의 사물적 표정이며 발언인 긁힌 자국들...
모름지기 최초의 영화 출현방식 자체가 극단의 매혹 아니었던가? 또한 영화는 잔상효과라는 눈속임에 의존하는 유혹의 기술이 아니던가? 유혹하지 못하는 영화는 언제나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영화 속 쫓고쫓기는 그들과 우리들 관객 모두는 흔적에 홀린 자들이다.
노인만이 더 이상 유혹되지 않는다. 매혹의 상실. 그는 다만 주절거린다. 향수와 추억을 곱씹으며, 무기력하게, 그러나 다 안다는 듯이...
삶의 시간들에 관한 은유는 그토록 풍성하다.
노년, 그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란 깨달음 비슷한 거 같다. 또 감당할 수 없는 무엇을 대하는 태도의 일종이고, 무거운 것을 다루는 방식, 을 안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는 총을 잡지 않으려 한다.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들은 끝내 필요 없게 버텨나가는 고집. 흔적에 홀리지 않는 여유 혹은...?
킬러는 다른 방식의 삶이다. 죽음이 지배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에게 유머라곤 없다. 죽고 사는 일조차 동전던지기 게임과 다르지 않다. 생명의 기체인 산소를 살상무기로 쓰는 자, 그는 문을 열지 않고 부숴버린다. 죽음이 오는 방식이 그러함을, 노인은 깨달았을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삶의 방식이 만연하고 또 그에 열광하는 시대를 섬뜩하도록 차갑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사고만이 그를 죽일 수 있겠지만 그건 가능성일 뿐, 운은 아직 그의 편이다. 게임 오버의 자막이 아직 그를 부르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그를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
단발머리 엽기 킬러역의 하비에르 바르뎀이란 배우, 낯익은 얼굴이나 <하몽하몽>이나 <하이힐>에서의 배역은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씨 인사이드>에서의 그와 비교하니 진정 대배우의 힘이 어떤 건지 새삼 느낀다.
<씨 인사이드> 이상으로 이 영화는 그의 영화다.
봄이다.
삼월 첫 휴일을 덮친 황사가 봄을 봄 같잖게 만들어버렸지만, 머잖아 남도 꽃 소식은 들려올 게다.
총 잡기 싫어 은퇴한 그 영감에게 멀미없이 쳐다볼 수 없는 하늘꽃밭, 저어기 남도 매화 나라로 상춘이나 가자고 꼬시고 싶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지만 노년을 잊어도 좋을 나라가 부근 어디쯤 있을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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