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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추격자 - 낮은 곳으로, 몸으로 돌아보라!

by 숲길로 2008. 2. 26.

 

영화명 : 추격자 (2007)

감독 : 나홍진

출연 :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박찬욱의 <올드보이> 등이 떠오른다. 재밌게 잘 만든 영화다.

그러나 <...추억)>보다는 좁고 <올드보이>보다는 좀 얕게 느껴진다. 재미의 상당 부분은 빼어난 연기에 빚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좋은 영화(?!)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착한 영화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를 주문하는 게 아니다. 그 반대다. 초반부의 껄끄러움을 그대로 밀고 나갔어야 했다. 하정우 캐릭터는 일관되고 갈수록 강렬하여 설득력이 있는데, 치사한 포주 김윤식은 자꾸 착해지면서 둘의 대립이 상투적이 된다. 가진 것 없이 떠도는 성불구자와 새끼를 지키려는 아비의 대결, 이 낡은 구도가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아,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게 뭐 있겠냐고, 낡은 주제를 새롭게 변주하는 솜씨가 바로 영화의 성패 아니냐면 할 말은 없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단연 뛰어나다. 부분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거나 허술하지만,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잘 만들었다.

 

 

 

서울의 주인이 누굴까?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리는 걸까? 휘황한 거대 도시의 뒷골목에 기생하는 질나쁜 포주와 변태새끼...?

그러나 사라진 여자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는 건 악질 포주이고, 범인은 경찰의 소중한 밥으로 대우받는다. 지고하신 서울 시장은 뜬금없이 시장판에 나타났다가 똥물 세례나 받고, 기동하는 수사대라는 경찰은 헛발질과 삽질이 특기다. 그 헛발길질에 차려준 밥상조차 날아간다.

어쩌면, 가진 재산 전부인 몸뚱아리를 팍팍 던져 가며 죽기살기로 피튀기는 주인공들에게 기생하는 건 바로 저들이 아닌가? 공공의 인사들이 혹시 공공의 적이 아닌가...? 모호 명료한 먹이사슬이다.

<살인의 추억>이 국가 생태에 대한 풍속/풍경화로 돋보였듯이, <추격자>는 서울이란 현대적(?) 대도시의 생태도감 한 장면이라 해도 되겠다.

 

 

 

골목의 표현은 특히 빼어나다. 사람이 끝없이 죽어가도 모르는 미로의 골목, 공허함을 넘어 불길함마저 풍기는 밤하늘의 붉은 십자가, 그리고 마지막 장면, 피와 살이 불타고 흐르는 골목을 감추며 삶의 부피와 입체감을 버리고, 오로지 비현실적인 휘황찬란으로 솟고 또 솟아나는 서울의 밤 빌딩들.

마틴 스콜세지가 뉴욕의 거리에서 미국의 역사를 보듯이, 나홍진 감독은 골목에 갇혀 있거나 골목을 떠돌거나 골목을 질주하는 이들의 숨결에서 생생한 서울을 읽는다. 골목은 비좁다. 때로 텅 비어 있지만 자주 몸이 부딪치고 덩치 큰 차가 엉킨다. 제목이 말하듯, 거기서는 늘 숨이 가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사는 일이 참 많이도 몸에 관한 일, 열에 아홉은 몸의 일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그토록 자주 통화를 해도 알지 못했지만 발걸음 한 번에 그녀가 딸이 있음을 알게 되고, 성매매 노동이라는 불모의 그늘에서 자라나는 작은 몸을 그는 외면하지 못한다.

박찬욱의 영화는 유혈의 그로테스크한 과장이 지나쳐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 몸의 질감과 부피를 생생히 느끼게 한다. 그게 불쾌한 건 분명하지만 영화의 감흥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  

 

 

덧붙여;

서울시장, 교회, 집사님...

연쇄 살인자의 부각과 은닉에 관련되는 코드들인데 무척 낯익은 것들이다. 감독도 퍽 짓궂다 아니면 아주 신랄하거나...

그는 예수의 발을 그리고 빚어 자신을 표현했다. 또 피살자에게 살 이유를 대 보라고 다그친다. 잔인한 세상을 대변하며 이죽거린다. 역설적으로 그는 저 높은 곳을 향해 피의 희생을 바치며, 낮고 낮은 곳으로 몸소 돌아보라고 절규한 셈이지만 메아리는 없다. 오늘도 변함없는 삽질만 난무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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