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2007)
감독 : 왕가위
뉴욕에서 뉴욕으로 가는 먼 길.
사랑은 도회인들의 향수(nostalgia)다.
아비를 싣고 푸른 정글 속으로 사라졌고, 2046을 향해 달려갔던 기차는 아직도 뉴욕이란 정글을 푸르게 돌고 돈다. 그러나 남자는 기차를 타지 않았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푸른 기차 아래서 기다릴 따름이다. 왕정문이 그랬던가...?
여자 또한 속수무책으로 달리는 기차 대신 언제 어디든 맘대로 가고 올 수 자동차를 사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내연(內燃)하는 시간의 재를 오래토록 바라보거나, 사랑은 타이밍이라 말하던 왕가위, 그에게서 나이가 느껴진다. 사랑을 시간이란 운명의 프리즘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상실의 정서에 사로잡혀 바람 속에 나부끼듯 독백만을 쏟아놓는 자들이 없다. 또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이기보다는 제 할일들로 묵묵하다. 눌러앉아 기다리는 그 곳에서, 떠돌다 돌아오는 그 곳에서 고향을 발견하고 다시 오는 무엇을 본다. 끝은 또한 새로운 시작이므로 다시 사랑할 수 있다고...?
가파른 시간의 결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차분하게 호흡을 조절하는 색채에선 과격함의 절제가 느껴진다.
그래서 좀 더 편하게 아름답다.
물론 아직도, 모든 사랑은 치정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대목들이 보인다.
예전의 왕가위는 늘 혹은 거의 그랬다. 사랑은 치정이었다. 때로 죽음보다 깊은 병이었고, 병의 시간을 견뎌내는 풍경들로 가득했다.
말로 내뱉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하나같이 ‘내 사랑은 치정(癡情)이다’, 란 명제를 꾸역꾸역 삼키며 흘러가고 있었다. 병든 시간은 그러나 퍽도 아름다웠다.
왕가위 영화의 한 변곡점인 <2046>은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질펀한 진혼굿이자 심란하기 그지없는 푸닥거리 한판이었다. 2046 이후, 이제 왕가위는 많이 편해 보인다. 그가 편해지니 관객들이 조금 쓸쓸해지는 듯하다. 동병상련할 그 누군가들이 없어졌다... 는 느낌이 드는 걸까?
재즈 가수 노라 존스의 연기력이 놀랍다. 도박의 본질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나탈리 포트만의 캐릭터도 좋다. 주드 로는 첨엔 조금 느끼하나 보다보니 괜찮아진다.
그러나 스스로, 떠도는 영혼도 다리없는 새도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조금 기름져도 좋을 게다. 조금 기름진 얼굴로 웃거나 쓸쓸한 표정을 지어도 봐줄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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