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리들리 스콧(2007)
출연 : 덴젤 워싱턴, 러셀 크로우
블루 매직(blue magic). 묘한 울림을 주는 매력적인 이름이다.
백설처럼 흰 아편이 검은 몸을 천천히 태우며 타오르는 불꽃의 연기 빛깔이 아마 그럴 것이다...
참 잘 만든 영화다. 여러 영화들이 떠오른다. 대충 주워 담아보자.
싸늘하고 냉소적이면서도 묘한 로맨티시즘이 감돌던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 폭력의 생리에 관한 치밀한 보고서 같은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 멜랑콜릭한 선율과 몽롱한 영상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우울하고 추한 성장담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인 아메리카>, 광기 감도는 자기파괴적 캐릭터의 묘사가 빼어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그리고 마약을 통해 본 미시 거시 세계상을 극도로 촘촘하고 생생하게 짜낸 스티븐 소더버그의 <트래픽> 등등...
마초적 인물의 비장미를 슬쩍 걷어낸 건 코폴라와 다르고 폭력에 대한 도취의 절제는 스콜세지보다 낫다(그는 이후 영화에서 허세스런 폭력의 탐미를 보인다. <갱스 오브 뉴욕>은 그 극치다). 비(非)미국적 정서인 레오네의 멜랑콜리는 없어도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시선은 날카롭다. 인물의 영욕을 다루는 전기 형식은 <스카페이스>를 닮았지만 기이한 그 열기는 없다. 대신 베트남전이란 특정 시대상황이 인물의 후경을 달구며 주제를 담아낸다. 깔끔하고 치밀한 시나리오는 <트래픽>을 연상시키며 꽤 사실적이지만 서사의 초점이 전혀 다르다.
할렘의 지배자 프랭크 루카스. 그의 치세는 베트남전과 겹쳐 있다. 그는 미국과 함께 몰락하지만 그가 미국은 아니다. 또 다른 미국들, 더 흰 미국인들이 그의 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트남전은 흰둥이들이 경멸하는 그의 피부색처럼 검은 전쟁이었을까? 아니, 한 때의 검은 영광이었을까? 그 영광을 지탱한 흰 양귀비꽃밭과 순도높고 눈처럼 흰 ‘블루 매직’... 그건 모든 권력의 끝인 먼지이며, 연기이며, 바닥인생이 일용하는 한 숟가락의 양식이며, 독약이자 꿀이며, 분노이며 슬픔이었다.
영화는 한 시대의 환각에 절묘하게 편승한 비상한 인물의 백일몽을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펼쳐 놓는다. 범죄자나 형사나 어느 누구도 무고한 놈은 없다. 청렴이 인격에 비례하지도 않고 범죄자의 삶이 비루하지도 않다. 문제는 어디에 얼마나 더 쓸모있게 처세하느냐는 것.
베트남전은 미국의 아편이었을까?
그랬을 것이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국의 영광을 시대착오적으로 재현하고 싶었던 미 제국의 환상이었을 것이다. 그 환각에서 벗어났을 때 미국은, 그는 자유로웠을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륜이 느껴진다. 영상은 건조하거나(yellow) 차분하다(blue). 갱 영화로 포장했음에도 감독 특유의 묵직하고 과잉된 비장이 많이 사라졌다. 대신 픽션같은 실화에 입각한 치밀한 시나리오와 일상의 질감이 살아있는 캐릭터로 두시간반을 지루하지 않게 밀고 간다.
후반에 나오는 총격장면도 갱 영화의 상투성이 없어 좋다. 전작 <블랙호크 다운> - 영화는 허접해도 영상은 뛰어났던 - 의 과장 없는 박진을 가져와 인물보다 상황의 사실감을 드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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