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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M

by 숲길로 2007. 11. 24.

영화명 : M (2007)

감독 : 이명세

출연 :
 

 

 

이명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나은 듯하다. 그의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다. 겨우 세편.

 

<형사>는 내용과 형식이 어긋나 보였다. 추리물을 스타일리시하게 그리는 건 괜찮은 시도지만 추리물다운 이야기의 긴장은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반면 이 영화는 이야기와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

 

흥미로운 건 이인성의 초현실주의적 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가 소품을 넘어 모티브로까지 작용하고 있다는 점. 본 지 오래되어 잘 기억나진 않지만 - 한 때 그의 소설들을 즐겨 읽었었다 - 뚜렷한 서사가 없으면서도 한 청년의 부채의식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인칭의 통일과 일관된 시간 구조를 파괴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초현실적 기법들이 이 영화에서도 절묘하게 살아나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시점들을 통해 흥미롭게 변주된다.

 

 

 

 

                                  

 

잊혀진 시간의 부활과 일종의 진혼의식으로서의 글쓰기란 주제가 영화적 방식으로 적절히 표현되었음이 성취라 해도 좋을 듯하다. 사랑과 창작, 그 둘은 아름답고 고통스럽고 몽환적이란 점에서 서로 닮았다.

 

마음에 드는 점 하나. 여주인공의 역할이 수동적인 데 머무르지 않아서 남자의 백일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늘 궁금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확인되는 것. 이명세 감독은 성적 코드를 표현할 줄 모른다. 그는 도회적이고(여기에 슬쩍 불모성의 혐의를 걸어본다) 꽤 건조하다. 감상을 자아내는 부분조차 그렇다. 그의 영화엔 에로티시즘이 거의 없다. 사랑조차 어떤 광물질의 순수함에 속한다. 사물이 지니는 몽롱함과 명료함이 함께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도대체 그는 끈적거리지 않아서 좋다.

영상의 현란함은 지나치지 않다. 몽환적 사랑 얘기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다만 끝부분의 친절은 좀 거슬린다. 더 모호하게, 침묵을 빛나게 했어도 좋았을 텐데...

영화의 소도구들. 다면 거울, 거울이 많은 방, 골목길, 우산(!). 이명세는 우산을 참 좋아한다. 액자 속의 액자. 이런 소도구들을 활용하고 인칭과 시점까지 교환하며 펼쳐내는 다중 세계. 그건 물론 심오한 깨달음이 아니라 스타일에 속한다.

 

 

 

'낯선 시간’은 망각의 시간이다. 망각의 시간을 불러내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사랑을 만나고 슬픔을 다독인다. 헤어짐은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이제야 완성된다. 이별을 통해 사랑 또한 완성된다.

꿈. 꿈은 가장 개인적인 일이지만(꿈을 질투하기란 정말 대책없는 짓이다), 또한 꿈을 통해 모든 사랑과 시간들에 다가가고 스며든다. 꿈은 시공을 넘어간다. 세계의 가장 긴밀한 연결통로가 꿈이다(그래서 꿈은 가장 격렬한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그 자체로 꿈이다. 이 영화는 꿈에 관한 영화, 그래서 영화에 관한 영화다.


산을 자주 다니다 보니 그런가, 사랑의 이야기를 자꾸만 풍경으로 읽는다. 허진호의 <행복>이 그러하고 이 영화 또한 그러하다. 사랑이라는 극히 인간적인 감정이 물들이는 세상의 빛깔과 자연의 모습들. 그건 결국 연출자가 풍경을 통해 감정이입을 구하는 시도를 나는 자꾸 거꾸로 본다는 셈인데...

허진호의 창과 이명세의 골목. 루팡이라는 바(bar)의 풍경. 나선계단을 한참 걸어내려가 도달하는 휘황한 불빛의 자리...

 

텅 빈듯하다는 이명세 영화에 대한 평가는 어쩌면 지극히 온당하다. 꿈이 그러하며 꿈인 영화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 텅 빈듯함은 일종의 거리이기도 한데, 이명세 스타일의 거리란 , 이건 꿈이야...라고 알려주며 관객을 결코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것. 주인공의 꿈이 아니라 감독의 꿈을 스크린 위에 펼치는 현실을 그는 결코 망각케 하지 않는다. 그의 진지함일까 가벼움일까? 분명 장점이자 단점이겠지만, 그의 진지함은 영화서사의 밖에 있지 안에 있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아, 이 영화의 꿈을 증거하는 또 하나의 소도구. 주인공이 서점에서 집어드는 시집은 채호기의 <수련>이다. 잠의 꽃, 물 위에 뜬 꿈인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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