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
보고난 첫 마디는 참, 영감두....! 였다. 그리고 <아이즈 와이드 샷>을 유작으로 남겼던 스탠리 큐브릭이 떠올랐다.
빠져드는 것, 파멸의 길인 줄 알면서도 끌리는 게 인간이다. 두려움이 지탱하는 권태. 그건 분명 노년의 정서다, 그것도 남성의.
그래서 이 영화는 폭력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외롭게 세상을 밀고 나가는 사내의 이야기이다(폭력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남자들이 이안 감독의 영화엔 낯설지 않다). 늘 두려웠지만 아슬아슬하게 칼날 위를 걸어가는 남자와 배역과 현실을 혼동하고 싶은 망상의 힘으로 살아가는 여자. 이들은 동일한 인물의 두 얼굴 아닐까?
몸... 빈틈없이 뒤엉킨 그들의 몸. 애증(愛憎)과 두려움의 핏빛 교직.
뱀처럼 미끄러져 들어온다고, 아니 휘감는다고 했던가? 형언키 어려운 존재의 착잡함이 그렇게 엉켜드는 몸이다.
짓눌린 청춘이 더웠고 두려움이 더웠다. 그러므로
놀이에 홀리기. 자신의 배역에 빠져드는 일. 그 역할에는 죽음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무너지기. 戒(caution)만이 아니라 경계(境界)의 무너짐.
색은 욕망의 빛깔이다. 욕망이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 다른 어느 곳을. 불교의 색(色)은 삼라만상이다. 다른 어느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애당초 경계란 없었는지 모른다.
색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넘어가는 텅 빈, 동시에 꽉 차오르는 갈망이다. 피아(彼我)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파시즘적 욕망이다. 한순간일망정 전부 아니면 무(all or nothing)의 집착이다. 한 치 어긋남 없이 하나가 되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 엉켜들 뿐이다. 두 몸이 하나로 일그러지며 그로테스크하게 빛나는 경계(境界)의 무늬...
증오는 어쩌면 사랑보다 더한 불길이다. 한 기둥으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애증이란 이미 나눌 수 없는 경계다.
큐브릭의 eyes wide shut 에선 환상과 현실이, 환(幻)과 멸(滅)이 서로의 일그러진 모습을 비추며 갈등한다. 노년의 큐브릭은 제목처럼 두 눈 질끈 감지 못하고 씁쓸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안 감독은 두눈을 질끈 감으려 하지도 않거니와, 진작부터 반쯤 실눈을 뜨고 幻에서 滅을 본다. 그들은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色의 끝이 죽음임을, 滅임을.
그게 노년의 시선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했으니 색이 아니고 어찌 공에 이르랴, 그건 피할 수 없는 욕망의 회로이며 삶의 구조인 것을...
계(戒)는 경계(境界)이기도 하지만 또한 관계(關係)이다. 두려움의 시선이며 그 두려움을 질식시키고야 말겠다는 격렬한 몸의 흐느낌이고 광채이다. 그래서 戒는 기어이 色으로 되돌아간다. 두려움의 경계, 망설임의 경계에서 뒤틀리며 엉켜드는 관계가 뿜어내는 빛깔과 광채.... 생과 사의 경계에 깊이깊이 들이미는 몸의 칼날.
그건 아름답고도 슬프다...
그리고 두렵다.
덧붙여:
양조위는 나이든 기색이 역력하지만(장국영은 영원히 청춘인데...) 연기는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고, 첨 보는 탕웨이란 배우는 너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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