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빌리 레이
사전을 찾아보니 breach는 위반, 불화, 틈, 구멍, 상처,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 등의 뜻이 있다.
왜 그랬을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흐르는데 구름처럼 얹혀 있는 거대한 그림자의 물음표는 화면을 떠나지 않는다. 꼼꼼하게 보여주지만 끝내 밝혀지는 건 없다. 남은 건 명백한 스파이 행위 뿐, 이유 따위는 무의미하다고?
그러나영화는 질문을 깊이 묻어버리는 척하며 도처에 뿌려 놓는다. 얄밉도록 절묘한 연출이다.
참 잘 만든 영화다. 크리스 쿠퍼의 명연은 <아메리칸 뷰티>와 <어댑테이션>의 기억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진정한 배우의 힘을 수긍케 하고, 시종일관 한 치 흔들림 없이 밀고 가는 톤 낮은 색감과 심도 깊은 영상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권태와 환멸? 아니면 자기도취와 능멸의 쾌감? 단조로운 삶의 텅 빈 구멍들을 비밀로 채우기 위하여? 영화가 암시하는 이유는 능멸에 가깝지만, 어둡고 단단한 영혼의 힘으로 누구보다 독실하게 신을 섬겼던 한 남자의 내면은 결코 투명해지지 않는다.
breach는 조직의 구멍이며 배신이기도 하지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 무의미로 가득 찬 그 자체로 의미가 되는 - 인간의 내면, 영혼의 구멍이기도 하다.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스스로의 삶을 내파하는 균열로 번진다. 그 구멍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신을 필요로 하며 마침내‘부딪쳐 부서지는 파도’가 되고 말았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질문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돈다. 무엇이 그를 유혹했을까...?
일급 정보분석가인 동시에 거짓말 게임에 누구보다 능했던 그가 실패한 곳은 아이러닉하게도 매일 대면하는 젊은 부하직원의 얼굴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타인의 얼굴은 신의 얼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캄캄한 우물에 비치는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의 얼굴이다. 자신의 균열 속으로 타인의 얼굴을 받아들인 순간 그의 파멸은 결정된 것이었다.
그가 체포되고 나서 얼마 후 부하직원도 조직을 그만둔다. 한밤중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 그 역시 이중스파이 상사의 얼굴에서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젊은 부하직원의 부인으로 나오는 배우(캐롤린 다버나스. 아래 사진)의 연기가 눈길을 끈다.
크게 뜨기 전 <세븐>에서 무척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기네스 펠트로를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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