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책

두번째 사랑 - pray or play?

by 숲길로 2007. 9. 1.

영화명 : 두번째 사랑 (never forever 2007)
감독 : 김진아

출연 :

 

     

 

이중 부정의 구조를 가진 영어제목 never forever가 흥미롭다. never가 단호하고 명시적인 부정임에 비해 forever는 불가능에 닿아있는 너무 강한 긍정이란 점에서 역시 일종의 부정이다. 이렇게 비스듬히 엇갈리며 등을 맞대고 있는 이중 부정도 긍정일까...?

그럴 것이다. 결말도 그렇지만 이 영화는 긍정을 넘보는 부정들이 도처에 있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가 pray(기도하다)를 play(놀다)로 잘못 발음하는 대목이 있다. 심리학적 단서로 읽힐 만한데, play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얻고 싶다는 욕망 혹은 완고한 기독교 집안의 전통에 짓눌려 살아온 시어머니 자신의 play하고 싶은 욕망이 돌출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조언대로 과연 며느리는 충실히 play한다. pray보다 play로 충만한 삶을 찾아간다. 

 

 


 

무의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영화는 무엇보다 사랑이 몸에 관한 현상임을 꼼꼼히 입증하려 한다. 여태 그녀의 삶이 이타(利他)란 허위의식에 깊이 잠겨 있었다면 그와의 만남을 통해 눈뜨는 몸은 나 자신의 삶, 나를 위한 삶을 요구한다. 다분히 포르노 코드를 지닌 멜로로 빠져들 소지가 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뉴욕버전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가깝다.

임신축하파티에서 그녀의 상상. 그 시간에 그 역시 그녀의 주변을 배회한다. 그들을 멀지 않은 공간에서 엇갈리게 하는 건 오직 몸의 갈망이다.

몸의 말없는 발언과 요구에 대한 긍정은 몸 없는 뉴욕적 삶의 공허와 불모성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이방인의 눈으로 재미한국인들, 특히 뉴욕 거주 한인 상류층을 바라보는 거리감, 이질감 등이 뚜렷이 느껴진다. 그 시선은 심하게 말하면 거의 경멸에 가깝다. 

바로 그 이방인 뉴요커의 시선에 담긴 거리 때문에 영화는 전반적으로 꽤 관념적이란 인상을 준다. 그 관념성 속에는 어떤 그리움의 정조와 호오(好惡)의 감정이 뚜렷이 느껴진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처럼 건강한 판타지와 비판의 날을 세운 강렬한 현실주의가 함께 보이는 것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이야기 구축의 바탕이 될 전반부 골격이 좀 허술하다는 것. 캐릭터의 표현과 행위의 동기나 인과관계가 모호하여 한동안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모든 이야기의 동기가 되는 남편의 불모성은 후반부에 가서야 입체적으로 드러나며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정사 장면들이나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 표현들, 결말부 등은 매우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