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책

디 워(D - war) - 운명의 힘 혹은 동화와 전설의 매력

by 숲길로 2007. 9. 1.

  

 

감독 : 심형래(2007년작)
출연

 

영구스런 순진/단순함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아주 흥미롭고 특이한 영화다. 한 마디로 말해, 한국 전래의 전설이나 동화가 제법 꼴을 갖춘 영화로 되돌아왔다고나 할까.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는 이야기 구조는 허접한데 그래픽은 괜찮더라는 것. 그러나 (감독 본인도 인정했고) 대다수 관객이 동의하는 이야기의 허술함은 과연 온당한 평가일까? 그건 어쩌면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고정관념이나 시대적 편견일 수도 있지 않을까?

 

 

 

 

 

<디 워>의 가장 특별한 점은 근대적 서사의 요체라 할 인간 중심의 인과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과 악은 미리 정해져 있고, 합리적 인과관계보다 운명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인물들(이무기도 포함)이 움직인다. 주인공 남녀는 죽도록 고생하며 운명에서 도망치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마침내 거대한 운명의 실현 앞에서 망연자실하다. 이승의 사랑을 이루지도 못하고 윤회의 굴레를 따라 진화하는 사랑을 기다려야만 한다. 서양 신화의 주인공은 수난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이무기 얘기는 그게 아니다. 수난을 통해 주어진 운명을 완성할 뿐이다. 주어진 배역을 힘을 다해 연출하는 것. 그래서 늙은 잭조차 마지막에 그저 사라질 뿐 아닌가?

이무기조차 운명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오히려 운명의 화신 자체다. 부라퀴는 어쩔 수 없이 악역이다. 안쓰럽도록 실속 없는 그의 고단한 여정이 영화의 줄거리라 해도 좋다. 착한 이무기는 전투의 승자가 아님에도 여의주를 차지한다.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하기 때문이다. 헐리웃 공식대로라면 그는 마지막에 필살의 일격을 날려 자력으로 여의주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힘(능력)이 아니라 착함, 의지가 아니라 운명이 이야기를 지배한다.

지상에 떨어진 별을 통해 불멸을 꿈꾸는 이야기 <스타더스트>와 비교하면 <디워>의 특별함은 더욱 뚜렷해진다. <스타더스트>에선 사랑의 힘이 인간과 별의 운명을 능가한다. <디워>에서 새라의 어깨에 박힌 문신은 매혹의 낙인이다. 운명에 매혹된 자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그러나 매혹된 운명이기도 하다. 이무기의 승천 티켓인 여의주와 용소에 바쳐진 처녀는 하나다. 몸의 운명은 의지를 넘어서 있다. 윤회를 거듭해서라도 운명을 완성해야 한다. 거기서는 남녀의 사랑조차 저만치 밀려나 있거나 운명의 회로 안에 있을 따름이다.

인간 아닌 용이, 아니 운명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란 것. 강한 주체의식을 가진 우리에겐 낯설고 못마땅한 얘기지만 불과 한두 세대 전 사람들에게도 그랬을까? 영화제목(D-WAR는 용의 전쟁이란 뜻이겠지만 대문자 D의 무게는 심상치 않다)이 말하듯, 이 영화는 인간 중심의 근대적 서사, 혹은 주인공이 의지와 능력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영웅서사가 아니라 운명의 이야기이며 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대적 포맷을 살려 꽤 정직하게 번안한 이무기 전설이다.

 

 

영구 감독은 기존의 많은 영화가 보여주는 의지 = 힘, 사랑의 승리라는 도식을 가차 없이 깨 버렸다. 대신 어린 시절부터 접해 오며 체득한 옛이야기의 구조를 큰 훼손 없이 자연스레 재현했다. 그 결과 헐리웃을 추종한 겉보기완 달리 고전적인 맛이 나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태어났다. 인간 세계를 초월해 있는 운명의 힘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담고 있는 전래 동화나 전설 따라 삼천리의 현대 버전이 된 것이다.

이야기 구조가 허술하게 느껴진다면 바로 그 전설투의 서술방식 때문이 아닐까.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설 따라 삼천리는 어찌어찌하다~ 그렇게 되었고~ 식으로 적극적인 우연이 종종 개입한다. 그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얘기의 골격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우연이 오히려 이야기의 극적 전개를 위한 필수 요소다. 치밀한 설득이 아닌 생략과 과감한 장면 전환이 이야기 서술의 힘과 리듬이 되어준다. 지금의 우린 그런 얘기투에 전혀 익숙지 않을 따름이다.

물론 이 영화가 운명이란 코드를 표현하는 방식은 분명 서툰 면이 있다. 합리적 설득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운명의 힘을 부각시키는 디테일이 더 살아났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든이 새라를 알아차리는 대목이나 둘의 키스 장면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거기서 일상 수준의 개연성을 요구할 필요는 없지만 그 둘은 엮고 있는 운명의 아우라는 좀 더 섬세하게 표현되었어야 했다.

 

 

 

캐릭터 이미지와 액션의 빼어난 그래픽이 이 영화 성공의 바탕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부라퀴의 거침없는 활약상이나 선한 이무기의 허물벗기, 승천 장면은 꽤 눈부시다. 특히 길고 유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이무기/용의 몸놀림 이미지는 자연스럽고 강렬하다. <아나콘다> 그래픽을 첨 보았을 때의 충격 이상이었다. 표정도 훌륭한데, 특히 용은 일급 목조건축가와 단청 기술자가 합작으로 빚어낸 옛 사찰건물의 용머리 조각을 보는 듯 생생하다. 영혼이 느껴지는 것이다. 운명적인 힘이 담겨 있는 눈빛이고 표정이다.

뱀파이어 영화 <블레이드>를 보며 거대도시의 지하철(메트로)이야말로 현대의 좀비가 서식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아닐까 여긴 적이 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자들이 밤도 낮도 아닌 곳이 아니라면 달리 어디에 살겠는가. 사방팔방 얽힌 메트로폴리스 LA 거리 역시 부라퀴의 미로 궁전으로 전혀 손색없어 보인다. 거침없이 도시를 유린하며 여의주를 좇는 부라퀴는 신선하고 발랄하다.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US BANK’ 라고 씌어진 자본의 바벨탑을 사다리 삼아 승천을 꿈꾸는 부라퀴의 모습은 실로 유치찬란한 묵시록이다. 진정 영구스러움으로 빛난다.

그러나 부라퀴는 실패한다. 먼지로 흩날려 사라진다. 덧없이 화려한 이미지의 운명처럼 아름다운 장면이다.

용가리와 이무기, 승천하는 용.... 왜 영구는 용의 이미지에 그토록 매료되었을까? 이무기에서 용으로 승천해야 한다는 운명이 그를 매혹한 것일까...?

 

 

덧붙여... 

일부 새롭고 멋진 이미지에도 불구, 그래픽 전투장면의 상당 분량은 너무 낯익은 모습들이라 안이하다는 느낌이다. 박진이 아니라 섬뜩한 새로움(독창적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그 점에선 정말 허접한 줄거리를 충격적인 이미지들로 뛰어넘은 <트랜스포머>와 비교된다.

영화의 끝부분 아리랑과 영구감독의 변은 사실 유치뽕이다. 기악 연주 아리랑까지는 그래도 들어줄만한데 합창과 그 이후에 대해선 머라 할 말이 없다. 상처가 많았던 건 이해하지만 그런 식으로 드러내면 정말 (나쁜 의미로) 영구스럽다. 감독은 영화로 말하면 되는 거고, 특히 그런 얘기는 다른 매체를 이용하면 될 일이다.

'영화,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딸기  (0) 2007.09.02
한여름밤의 미소  (0) 2007.09.02
브리치(breach) - 타인의 얼굴  (0) 2007.09.01
스타더스트(stardust) - 별처럼 황홀한 별난 이야기  (0) 2007.09.01
스틸 라이프 - 사라짐의 미학  (0) 2007.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