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몽상가들(The dreamers 2003)
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그 모든 게 꿈이었다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 꿈이 지속할만한 현실 공간은 그 날 이후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그간 이력에 비추어 성(性) 탐미주의자라 불려도 좋을 만한 노감독의 몽환은 한 번도 가본적 없는 빠리 풍경과 풍속만큼 낯설지만, 그 이상의 덧없는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세상은 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도, 현실은 늘 몇 할쯤 꿈의 농도로 기름지거나 피폐하다. 가버린 그 날들 - 거기 그 시절, 미성숙과 몽상으로만 가득 찬 현실이 있었고 ‘그들 - 우리’만의 세상에서 더 이상의 무엇도 필요치 않았던 때가 있었다. 영화, 섹스, 술과 잠, 위태롭고 천진난만한 숨가쁘게 아름다운 놀이들... 그들에게 부모란 성가시고 말 안 통하는 물주였을 뿐이다.
소위 프랑스 68. 아마 저러한 대책없는 미성숙과 몽상이 68정신의 본령인지도 모른다. 합리적 근대가 효율과 체계를 명분으로 마냥 자유롭게 꿈꿀 권리를 박탈하려 했을 때, 문득 세상은 단조롭고 권태로운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다 집어쳐!!’ 라고 외치고 싶었고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일터를 팽개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강고하게 구축된 듯 여겨지던 근대는 한 순간에 폭발해 버렸다. 마오나 게바라의 초상, 적기(赤旗)가 나부꼈지만 구체적인 실천이념이라기보다 오히려 아득하므로 순결한 이미지였다. 진정한 대안일 수 없는 열광의 깃발일 뿐이었다. 그들은 하염없는 이미지의 펄럭임 속에서 살고 싶었던 거고 그 펄럭임은 다시 사적인 영역을 넘어 일파만파 거리의 물결이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검게 번뜩이는 권력의 해일이 덮쳐왔을 때 최후에 남은 건 환멸(幻滅).
승자도 패자도 없지만 그 시절은 다시 올수 없다는 뼈저린 느낌... 그 날 이후는 더 이상 근대가 아니었고, 근대의 그늘에서 몽상하던 이들은 지리멸렬해지거나 깊은 내성에 사로잡혀 근대 이후(포스트모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훌쩍 한 시대를 건너가며 자라버렸을 테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때로 ‘삶은 잔영으로 존재하는 것.’ 하염없이 사라지면서도 죽음처럼 불멸하는 영화의 이미지, 성장을 멈춘 채 꿈꾸며 흘러가는, 둘이면서 하나인 샴 쌍둥이의 나르시즘적 사랑과 성의 유희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때 그 시절을 더욱 몽환적으로 아름답게 물들인다. 물론 그것은 (그들 부모처럼) 권태롭고 근엄하기 짝이 없는 공고한 근대적 삶의 그늘에 기생한 한낱 유년의 황홀한 꿈이었을지라도 말이다.
몽상은 이중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벌이는 아름답고 치기어린 몽상적 유희에는 그 몽상을 바라보는 노감독의 몽상이 녹아있다. 노출수위가 상당히 높지만 관음적이라기보다는 적당히 냉정하게 회고적이다.
모든 꿈이 그러하듯 몽상은 모호하게 빛난다. 그들이 불러내는 사물들과 옛 이미지들은 탐미적으로 아름답고 빛과 어둠, 욕망과 윤리의식은 발랄하게 유희하는 몸에서 하나로 만나 뒤엉킨다. 몽환의 빛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건 이미지의 예술인 영화의 가장 고유한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몽상가들(the dreamers)이란 제목은 감독 자신과, 영화란 꿈을 먹고사는 모든 이들에 대한 애정어린 호명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는 거울 이미지가 많다. 몽상의 가장 상투적인 통로인...
베르톨루치 상표니만치 영상의 아름다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고, 음악이 참 좋다. 알아들은 건 고작 지미 핸드릭스와 에디트 피아프 뿐이지만. 검게 빛나는 해일이 덮쳐오던 마지막 장면에 울려퍼지던 피아프의 ‘후회하지 않아요’는 가히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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