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팀 버튼
영상이 좋더군요. 역시 팀 버튼답게 환상적이고.
그런데 좀 변한 느낌입니다. 그가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느껴지네요. 뭐랄까, 특유의 신랄함이나 어둡고 쌉싸름한 맛이 가시고 전체적으로 많이 밝아지고 성찰적으로 두루뭉술해진 느낌입니다. 뭐, 여전히 데니 드 비토 영감이나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역 같은 몇몇 캐릭터에선 그의 맛이 납니다. 팀 버튼을 생각하면 늘 조니 뎁의 그 묘한 표정이 떠오르는데, 이번은 좀 달랐던 듯.
요즘 영화의 주 코드는 ‘화해’인 모양입니다. <태극기...>가 그렇고, <사마리아>가 그렇고, 이 영화 역시 그렇군요. 20세기를 건너온 비판적 이성의 피로감인지, 지난 세기의 역사와 화해인지 뭐, 그런 게 보이기도 하구요.
한편으로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올랐습니다. 어찌 보면 여태 팀 버튼의 판타지는 현실을 빗댄 틀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판타지’를 시적인 이미지 그대로 이해하지 않았나 싶네요.
자리비우기, 현실 아닌 다른 진실.
상상력을 걷어낸 순전한 현실 자체가 진실은 아니겠지요. 그런 삶은 몹시 사물적이고 건조한, 인간이 없는 역사와 같은 것이거나, 거의 지옥같은 것일 테니까요(뭐, 지금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고 뭐냐면 할 말은 없지만^^)
팀 버튼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역사로서의 아버지와 화해가 아니라 그의 고단한 삶을 끝까지 끌어가는 힘이 되었던 꿈, 또는 판타지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네요. 환타지를 통해 싸늘하고 신랄하게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지는 자리에 솟아나는 모호하고 풍요로운 진실. 그 속에서 세상을 보고 삶을 꾸려나가기. 꿈꾸는 만큼 커지는 세상의 크기를 말하고 싶었는지도요.
안개 자욱한 강에서 나타나 또한 그 강으로 돌아가는 ‘빅 피쉬’는, 현실보다 더 큰 진실로 자라는 꿈꾸는 현실이며, 또한 꿈꾸는 자인 동시에 꿈을 불러내는 자의 이름이 아닐까 싶네요. 단지 역사의 미화나 세대간의 화해가 아니라, 꿈 없는 자의 초라한 세상을 아름답게 빛내는 어떤 상상력 말입니다. 그래서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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