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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빈 집 - 번뇌 즉 보리이니, 화엄에 살어리랏다

by 숲길로 2007. 9. 1.

 

 

 

 

영화명 : 빈집 (2004)
감독 : 김기덕

출연 :


13일 만에 찍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전작들에 비해 매끄럽고 완성도가 높아진 영화다.

종래 김기덕 감독은 출구 없는 욕망의 극한적 풍경들을 미시적으로 파고들며 날 것 그대로의 비릿하고 소름끼치는 삶의 지옥도를 거친 터치로 그려냈었다. 그러다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이르러 일말의 출구를 찾나 싶더니 <사마리아>에서는 대놓고 용서와 화해를 얘기했다. 그가 변한 걸까, 세상이 변한 걸까? 불가의 용어를 빌리면 - 그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코드라고 여기는 - ‘번뇌 즉 보리’라 했다.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따름이니, 지옥과 천국은 우리 욕망이 뒤엉켜 빚어낸 꿈같은 한 세상의 두 모습일 뿐이다.

이 영화도 <사마리아>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혀 다른 소재를 찾아내어 새롭게 표현해 내는 작가적 시선과 능력은 참으로 놀랍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우화다. 제목이기도 한 <빈 집>은 영혼을 잃어버린 공허한 내면 혹은 닫힌 자아의 은유라 보아도 되겠다. 빈 집을 돌아다니며 갇히고 버려진 것들을 어루만지고 텅 빈 공허에 생기를 불어넣는 침묵의 손길. 그것은 천의 손바닥에 달린 눈으로 세상의 모든 고통을 듣고 보며 묵묵히 어루만져준다는 관음보살을 닮았다.

빈 집 중에는 진정 아름다운 곳도 있다. 비었지만 닫힌 게 아니라 열린 집이다. 사물이 살아있는 그런 집에서는 할 일이 없다. 그저 차 한 잔 마시고 잠 한 숨 자고 와도 될 일이다.

 

 


영화의 몇몇 이미지들은 매우 아름답고도 깊다. 감방의 좁은 복도를 걸어가며 마치 빛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라든가 자꾸 가벼워지고 투명해져 마침내 새처럼 자유로워져가는 몸짓 등... 무엇보다 그와 그녀가 다시 만나는 장면은 영화의 절정이다. 거울 속으로, 남편의 등 너머로, 또 그녀 자신의 등 너머로 그림자같은 그를 만나는 장면 등은 낯설고 새로우면서도 더없이 아름답다.  

이런 만남의 방식은 그가 바로 그녀 자신의, 나아가 우리 자신의 영혼이자 내면 깊이 숨어 있던 타자임을 암시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성 혹은 타자성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 자신 안의 그(혹은 그녀)는 닫힌 일상의 눈으로 보면 낯설고 섬뜩하지만 돌아온 그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분노와 공포, 맹목의 치열한 삶 속에서 잃어버렸지만 마침내 되돌아 온 우리 자신이 낯설고 무서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또라이 같은 남편에 비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 공포를 스스로 극복하며 용서하고 화해해 가는 한 여자의 여정으로도 읽힌다. 영어 제목인 ‘3번 아이언’은 끝내 버려져야 할 폭력과 응보의 악순환인 셈이다. 그가 그녀를 구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그와 그녀 자신, 즉 스스로에 대한 구원자인 것이다.


첨 보는 재희란 배우, 연기도 좋고 눈매가 무척 인상적이다. 이승연의 연기도 좋다. 둘 다 대사 없는 연기가 무척 힘들었을 텐데 대단하다.  

  

각설하고....

우화의 형식을 빌려 종교적 영감에 닿는 인간 내면의 신성에서 출구를 찾는 저런 관점이,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경제에 전 존재를 걸어야 하는 우리 현실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눈 맑아진 김기덕 감독은 이미 안개늪에 깊이 들어선 듯하다. 자칫 소재의 빈곤이나 주제의식의 안일함에 빠져 작품성을 놓친다면, 그는 현실회피의 몽상가란 비판의 직격탄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역시 기우일 터, 나는 벌써 그의 또 다른 작품을 기다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