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 휴먼 스테인 (human stain 2003)
감독 : 로버트 벤튼
원작소설이 있어 그런가, 시나리오 구성이 상당히 좋은 거 같다. 담담하면서도 은근히 힘이 들어가는 맛이 있다. 나이도 느껴진다. 강렬함을 피하여 속도와 무게를 가늠하며 관조적이다. 파국조차 느린 호흡으로 간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더듬듯 보여준다. 선명하지 못하고 모호하다거나 힘없이 오락가락하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과잉 긴장으로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영화의 처음에 파국을 보여주기란 상당히 모험적인 연출이다. 게다가 2/3 지점에서 다시 되풀이된다. 의문이 생긴다. 볼 건 대충 다 본거 같은데, 이제 남은 시간을 어쩔 작정이지? 그런데도 끝까지 처지지 않는다. 미리 배치한, 저마다 개성 있는 인물들로 하여금 번갈아 마무리를 맡기며 밀고 가는 힘이 돋보인다.
초반은 좀 그렇고 그랬다. 정서에 그다지 맞지 않는 풍속들이 오락가락 하고... 광고대로라면 나이든 고상한 남자와 닳아빠진 젊은 여자의 로맨스? 저걸 어떻게 미화하려나 싶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감성의 결을 따라가는 섬세한 연출로...?
그러나 등장인물들 각각의 고통이 구체적인 표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나이 어긋나는 남녀의 사랑이야기 너머 다른 산맥이 보인다. 저런 얘기를 저리 꼼꼼히 할 필요가 있나? 싶던 에피소드들이 슬그머니 살집을 붙이며 굵직한 줄거리를 이루고,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궁금해진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이 차근차근 쌓인다. 한 남자의 고통에 찬 생애가 드러난다, 거짓과 진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사랑’의 의미까지...
어쩌면 이 영화는 그가 그녀를 그토록 사랑해야만 했던 운명적인 이유 - 한번도 그의 입으로 말해지지 않은 - 를 100여분에 걸쳐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것은 끝내 우리에겐 들려지지 못한, 그가 그녀에게 하고 싶다던 그 말이 가닿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고통에 갇혀 있다. 그것은 나눌 수도 없다. 저마다 표정도 다르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사는 자, 삶이 송두리째 달아나 거의 사라지려는 자. 움직이지 않으면 터지거나 무너질 것이므로 끝없이 떠도는 자, 세상을 등지고 숲으로 간 자...
그처럼 제각각이지만 고통들은 또한 사회와 역사의 분비물이다. 이 영화는 각각의 고통이, 개인의 삶에 드리워진 미국 현대사의 무거운 그림자, 아니 그 실질적 내용물임을 보여준다. 인종차별과 계급과 빈부격차, 그리고 월남전... 등등. 이것들은 추상적인 거대 담론이 아니다. 역사와 사회는 가장 생생하고 구체적인 고통이 되어 개인의 실존으로 솟아난다. 아무도 비켜가지 못한다.
이창동의 <박하사탕>이 떠오른다. 한 인간의 자아란 그가 선택하거나 감당해야 하는 세상의 모든 체험일 뿐이다. 고통은 잔인한 세상이 우리에게 오는 방식이다. 그것은 우리를 가득 채우고 비틀고 마침내 텅 비워 버린다. human stain은 우리 몸에 떨어져 차츰 번지며 커져 마침내 우리를 삼켜버리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다.
그러나 돌아갈 길은 있다. 고통 받는 자들은 숙명적으로 사랑을 찾는다. 잃어버린 것을 향해 다가가려는 불가능한 몸부림. 그 과정에서 빛깔을 달리한 고통들은 만나고 부딪친다.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그녀와 함께 그는 떠난다. 아니, 돌아간다. 사라진 고향으로. 자신의 고통과 화해하고 진실과 화해하려 한다. 그녀도 돌아간다. 그를 원하던 남자들에게로. 비로소 모두가 자유로워진다. 먼 곳에서. 처음과 마지막이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지며 영화는 그 모든 과정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저 빛나는 연기들.
니콜 키드맨! 도대체, 그녀는 신비롭다. 고통과 불안으로 흔들리는 유혹의 눈빛...
그녀의 연기는 <콜드 마운틴>이나 오스카상을 받은 <디 아워스>보다 <도그빌>이 절정이었던 거 같다. 이 영화는 도그빌의 그녀를 다시 불러온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모든 걸 말하는 니콜. 아니, 머리칼도 한몫 한다. 고통과 슬픔이 관능으로 흘러내린다. 어떤 신문에선, 그녀의 우아한 기품이 드러나야 할 상처를 가린다고 한다. 그 반대다. 침묵하는 우아함이 그녀의 고통을 심연으로 만든다.
그녀는 결코 머물지 못한다. 백 살쯤 되는 노인을 사랑하고 싶기도 하다. 투명해지려 할수록 그녀는 강렬하게 빛난다. 니콜이 아니라면 누가, 고통 속에 떠도는 저 그림자 같은 영혼을 연기할까? 그의 연기는 최고다.
애드 해리스는 등장 시간은 별로 길지 않지만 몇 마디 말과 표정만으로 착잡한 내면의 사내를 더없이 명료하게 보여준다. 가령, 경찰의 유도심문을 일관되게 부정하는 그의 눈빛과 표정.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어떤 말도 필요 없는,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온 공허의 표정이 저럴까?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자주 보아 익숙하다. 니콜 앞에서 더듬거리는 표정과 자세가 일품이다.
조연들도 뛰어나다. 고통을 응시하는 듯한 시선의 게리 시니즈도 좋고, 안소니 홉킨스의 젊은 시절 그 녀석과 그의 가족들, 특히 어머니의 연기가 더없이 좋다. 그들이 사라진 여백은 오래 머물며 두 주연의 카리스마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끝까지 탄탄하다.
니콜이 나신으로 춤추던 장면에 흐르던 재즈풍의 클라리넷과 기타 음악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천국의 기슭에서 흘러내리는 우아한 슬픔 같은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도 영화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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