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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씬 레드 라인

by 숲길로 2007. 9. 1.

 

 

영화명 : 씬 레드 라인 (1998)

감독 : 테렌스 맬릭

출연 :

 

이런 전쟁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영화 발명 후 100년쯤의 세월이 흘렀다면 아마도 꼭 그만큼일 게다. 여태 전쟁영화는 전면전이든 내전이든 늘 인간이 짊어진 이념의 단면에 드러난 선악의 얘기, 정체성을 박탈당하고 극한으로 내몰린 자들만의 얘기였다. 그러나 테렌스 멜릭이라는 낯선 이름의 감독이 내놓은 [씬 레드라인]은 전쟁영화에 우리가 오래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소재를 끌어들였다. 아니, 제시하고 있다는 편이 맞을지 모르겠다.

이제 전쟁은 인간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를 그 일부로 품고 있는 이 땅과 자연의 이야기다. 그들은 더 이상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 가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상처 입는 이 땅과 자연을 도취적이리만치 탐미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포레의 레퀴엠 종곡 '천국에서'가 울려 퍼지며 하나로 온전한 세상이 펼쳐진다. 태고적 평화의 푸르름을 지닌 숲과 물과 하늘이 머무는 곳. 인간과 짐승은 또 하나의 빛깔로 변주를 더한다.

역사가 열리면 우리는 지상에서 가장 고등한 동물이 펼쳐놓은 전장의 한복판에 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강요하는 자와 거부하는 자, 체념하는 자... 대령은 대령대로, 상사는 상사대로, 사병은 사병대로 각자의 현실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시간은 흐르고 전선은 가까워진다. 나름의 표정은 변해가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남은 건 오직 이기기와 살아남기, 개인은 거미줄보다 가는 끈에 매달린 채 광기 속에서 대롱거린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현실에 갇힌 채.

파괴자와 파괴되는 것 모두의 불안을 표상하며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일렁이는 풀잎들의 물결, 그 위로 햇살은 쏟아지고 포탄은 작렬한다. 영원히 푸르던 풀빛과 찢어진 바람 사이로 목숨들이 스러져 간다. 지는 꽃잎처럼,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누가 그랬던가, 부드럽고 가냘픈 것이 생명이고 굳고 강한 것이 죽음이라고? 그 역설을 이제야 이해한다.

천상의 음향을 노래하던 코랄은 지옥도의 반주로 변하며 맹목을 부추기고 결코 낡지 않을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잔인하게 흘러간다. 산천은 여전히 푸르고 공포와 광기에 내몰린 인간의 상잔은 끝날 줄 모른다. 피할 수 없는 선택에 내몰린 자들. 죽음의 광기에 자신을 내맡기고 피의 성취에 도취된 대령, 아들과도 같은 부대원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를 거부하는 대대장,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아득한 기억으로만 남은 사랑을 품고 적 벙커로 돌진하는 벨. 미치거나 자살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고, 눈감고 세계로의 시선을 닫아버리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의 가운데 서 있는 듯한 두 사람이 있다.

전쟁이 개인의 정체성을 유린하는 현실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웰시 상사. 그는 일찌감치 신의 손을 떠나 자신만을 믿으며 살아남기 위해 터무니없는 상황에 적응해 왔었다. 그리고 현실을 거부하며 신의 섭리를 믿으며 원주민 마을의 문명에 오염되지 않는 삶에서 한 이상을 찾고자 했던 만년 이등병 위트.

그 둘은 전쟁이 만든 닫힌 공간 속에서 조금씩 다가가며 아직도 닫히지 않은 세상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부대원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위트, 죽음의 순간 그는 한없이 깊은 눈빛으로 적을 응시하며 소총을 치켜든다. 도피 속에서 찾던 이상은 영원히 남겨둔 채 그는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을 구원하기로 한다. 위트의 죽음을 통해 웰시는 처음으로 신에 대한 갈구를 드러낸다. 보다 낮게 내리는 섭리를 찾으며 닫혔던 자아는 비로소 세상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시작된 이래부터 문명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었고 지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삼키며 인간을 사실상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능하지 못한 신에서 지상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세상에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신을 찾는 인간과, 신의 얼굴을 가지고 싶은 인간이 공존한다. 

인간의 태초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우리 문명의 궁극에는 무엇이 남을까? 그 가운데 있는 우리의 현실을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누구의 몫일까?

영화는 힘들게 그 답을 찾아 나섰고 우리에게 하나의 단서만을 보여줄 뿐이다.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고 영화는 끝난다. 아직 화해하지 못한 것들 사이,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는 ‘씬 레드 라인'만 남겨둔 채.

뛰어난 영화 한편을 선사한 감독은 좀 다변이다. 내레이션이 조금 절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도덕교과서 같다는 얘기도 그 탓일 텐데...

그러나 전투장면의 박진감은 압권이다. 리듬감도 뛰어나다. 긴장을 품은 이완과 폭풍같은 고조의 절묘한 배합은 구성미를 높이며 두터운 오르간적 음향과 어울려 극적 효과를 낳는다.   

동서양의 정서차이나 주관적인 생각이겠지만 살아 숨쉬는 듯한 자연의 사물들, 즉 바람, 풀잎, 벌레나 짐승, 심지어 미묘하게 변화하는 산빛이나 능선 등이 영화 전반부에선 전쟁상황을 이루는 한 주체인 듯한데 후반으로 갈수록 그동안 끌어오던 인간들의 이야기로 축이 옮아가며 다소 설교조의 전쟁영화가 되는 느낌이 든다. 의도적이었을까? 자연이 문명으로부터 소외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어쨌든, 기막힌 산그림 실컷 보아 좋았고 극장 나서 만나는 햇살이 새삼 부시고 반가웠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