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 지옥의 묵시록 (1979)
감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당초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장대한 힘에 압도되면서도 한편 못마땅했다. 미국의 추악한 제국주의와 베트남 인민의 얼굴은 전쟁의 극한상황에서 번뜩이는 광기의 뒤로 숨어버린 거 같았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용기조차 없는 고민이란 피해자의 가슴에 못을 박는 또 하나의 오만이었고, 스스로 만든 유령을 상대로 싸운다고 중얼대는 미국은 여전히 제국주의였다.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이 원작이란 걸 몰랐기에 커츠의 ‘공포’조차 감독의 잘난 체쯤으로 여기며 걸작이 되어가던 영화를 망친다고 생각했다.
리덕스판을 다시 보았다. 처음 볼 때 매우 인상적이던, 발퀴레가 울려퍼지는 기병대의 공중강습도 좀 무덤덤하다. 몇몇 에피소드가 덧붙여졌지만 별 긴장은 없다. 그러나 원작에 대한 이해와 그간의 세월 탓인지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특히 커츠란 인물, 원작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단순 명료하게 표현하는 점이 돋보인다.
덧붙여진 에피소드 중 프랑스인들의 대목이 꽤 인상적이다. 서로 의견일치 없이 제각기 떠들다가 - 프랑스인답다 - 차례로 퇴장하는데, 신제국주의 미국을 바라보는 구제국주의의 시선이 기막히다. 북아프리카에서 인도차이나까지, 식민지에 대한 끈질긴 지배욕의 공허한 궤변. 그게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란 일반명사로 불린 유럽 문명의 감춰진 얼굴일까?
은은한 비단 장막 너머 윌라드를 어루만지던 그녀의 손길... 패배하기만 했다던 정복자의 뒷모습이다. 아편에 취하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는 상실의 고통, 그게 감미로운 거라면 향수 어린 제국주의의 나르시시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단언해도 좋다. 이 순간도 그들은 문명의 상표로 자신의 과거와 꿈을 세계 도처에 팔아먹고 살아가고 있으니.
커츠 대령. 전쟁이 그를 만들었지만 그는 전쟁을 넘어갔다. 고통과 공포를 통해 ‘죽음의 문턱을 넘어’ 버렸다. 그는 거울에 비친 제국주의의 자화상이다.
그는 이념이 폭력이나 야만의 대속(代贖)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유일한 길은 한계를 넘어가는 것. ‘면도날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를 본다. 초월과 굴러 떨어지는 것은 동일한 심연에 속한다. 순수한 야만은 순수한 초월이다. 공포, 고통, 어리석음, 연민... 따위들, 인간에서 자유로워진 존재는 사물이 된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걸까? 오랜 진화의 비바람과 역사를 거쳐 이른 오늘의 부정. 그러나 오늘의 모든 능력을 보존한 채 사물을 향해 더욱 진화한다면? 그건 순수한 힘일까?
그러나 고통은 영원하다. 사물이 될 수 없기에 고통은 지속한다. 그는 이제 진정 자유롭고자 한다.
사이공에서 부여되었던 윌라드 대위의 임무는 커츠를 만나며 ‘한계를 넘어가라’는 어둠의 지령으로 변질된다. 윌라드를 자신의 수제자로 손색없다고 본 커츠의 판단은 옳았다. 대위는 충실히 그 지령을, 아니 가르침을 따른다. 마지막 순간 커츠가 본 건 무엇이었을까? 어둠은 흐리게 빛난다.
커츠를 삼켜버린 선사의 대지. 그를 둘러싼 검붉은 빛의 영문모를 광기는 안개 너머에서 불가해한 세계로 존재한다. 다름 아닌 야만의 문명이 도달하고야 말 오래된 미래다. 문명이라 부르는 모든 삶의 양식을 넘어선 궁극 혹은 기원이다. 그 세계는 커츠의 영혼을 병탄했고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 사물이 되었다. 자연은 인간 스스로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야만스런 문명에게 복수를 한다. 모든 희망을 좌절시킨다. 더 이상의 구원은 없다. 끝나지 않을 종말이기에 현재형의 묵시록이다.
마침내 드러날 자신의 얼굴, 영화는 그 파국적이고 묵시록적인 대면을 향해 나아가는 항적기인 동시에 비극적 회귀의 여정이다. apocalypse
광기로 치닫던 구제국주의의 자화상이 소설 <어둠의 심연>이라면, 이 영화는 끝나지 않는 미 제국주의가 항구적으로 대면할 현대의 묵시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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