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
공중전화 부스 앞에 서 있는 유덕화는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있는 듯하다. 내려다보는 시선 아래 그는 서 있다. 하염없이 오래일 듯 그렇게.
생모를 등지고, 돌아보지 않으리라면서 걸어가는 장국영. 역시 그도 심연을 느리게 헤엄쳐간다.
또 다른 심연이 있다. 필리핀의 푸른 정글 혹은 낙원. 다리없는 새가 쉴 곳이란 애당초 없었으므로 그곳은 - 기차가 굽이 달려가는 아득한 정글, 심연이다. 죽음처럼 답답하다. 결코 평화롭거나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어있었으므로, 생모에 의해 부정되었으므로.
장만옥의 심연도 있다. 가로등 아래거나 매표 창구 속.
영화는 시종 푸르다. 깊은 바닷속처럼. 각자 힘들며 제각기 터져버릴 듯하다.
‘열린공간Q’ 에서 다시 본 <아비정전>
장국영은 더욱 우울해 보였고 장만옥은 한없이 낮게 중얼거렸다. 유덕화는 추운 비를 맞고도 떨지 않았다. 필리핀 정글을 흐릿하게 - 푸르게 달려가던 기차. 길게 휘면서 한없이 정글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장국영은 죽었고, 아니 첨부터 죽어 있었고 장만옥은 울지 않았다. 양조위는 낮은 천정 아래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대책없는 배팅을 다짐하며. 그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을까, 유덕화는 어느 항구쯤 이르렀을까... 열린 곳은 어디에도 없이 다만 길게 길게 심연 속으로 뻗은 통로를 따라 느리게 움직인다. 모든 이의 죽음과 삶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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