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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쎄로또레 - 왜 산을 오르는가?

by 숲길로 2007. 8. 31.

 

 베르너 헤어조크

비토리오 메조조르노, 마틸다 메이, 슈테판 글로바츠, 브래드 두리프, 도널드 서덜랜드

 

 

이런 멋진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지 못하고 비디오로만 접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쎄로 또레(cerro torre). 남미에 있는 산이지만 배낭 잘 만들기로 유명한 상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얼마 전 개봉되었던 <버티칼 리미트>는 산을 빙자한 과장과 산악용품 광고가 난무하는 헐리웃 스릴러였지만,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쎄로또레>는 오직 산과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칼을 세워놓은 듯한 날카로움으로 인간을 허락하지 않는 산, 쎄로또레.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산을 오른다. 무엇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산을 오르게 하는가?

오를 수 없는, 오르지 못한 산 앞에서 그는 사라진다. 세상에서 잊혀지고자 한다. 그러나 산에 사로잡힌 자는 산을 떠날 수 없다. 산은 죽음보다 더한 매혹이다.

누구 얘기던가, 신의 전당은 ‘솟아난 대지이며 세계의 건립’이라고. 그러나 ‘세로 또레’는 대지의 끝이며 하늘의 시작이다. 위를 향해 오르는 모든 것은 하나의 운동 형식에 속한다. 오르는 것들의 가벼움은 정상에서 만난다. 수직 바위벽으로 선 쎄로또레는 대지에 속하면서도 가장 완강히 대지를 부정한다. 삼각의 첨탑을 그리며 구름을 뚫고 하늘만을 꿈꾼다. 더 이상 대지가 아니기에 그것이 다다른 고도는 포용을 뿌리치며 홀로 어지럽다.

 

  

  

‘산이 있으므로 오른다’는 말의 때로 인간적 진실을 숨긴다. 사람이 이름을 짓고 사람으로 하여 산은 솟아오른다. 그러나 산은 산일 뿐이다. 무심하므로 비정하다. 덧없는 육신을 흔적 없이 묻어버리고 앙상하게 빛나는 애증만을 만년설의 빙벽에 걸어놓는다.

사투 끝에 오른 정상에서 만난 건 헛된 집념을 일순에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한 여인의 미소였다. 그것은 쎄로또레에 사로잡힌 몸 없는 영혼이었다. 풍화할 수 없는 욕망, 타오르는 불꽃이나 열광조차 없이 죽음처럼 내연하는 사랑...

끝까지 오른 자만이 가장 깊은 추락을 누리며,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른 자만이 진정한 무(無)의 얼굴을 대면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움켜쥐었던 집념이 산산이 부서지고 그는 미친 듯 웃는다. 사랑과 명예를 한꺼번에 앗아갔던 경쟁자는 자일에 매달려 발아래 대롱거린다.

 


 

쎄로또레는 다시 솟아오른다. 자신에게 투사된 인간의 꿈으로, 그 꿈과 욕망의 세계를 일거에 벼랑 아래로 쓸어내리며 다시 솟아오른다. 의지(意志)하며 산을 오르는 인간과, 사물의 무심함 그 자체로 있는 산의 영원한 갈등. 저 지독한 산의 침묵은 장대한 사실의 영역을 표현주의적으로 변질시키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우뚝 빛난다. 눈 덮인 연봉 너머, 쎄로또레의 절정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이 무한선율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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