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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탱고 - 마누라 죽이기

by 숲길로 2007. 8. 31.

 

 

감독     빠트리스 르꽁트 (1994. 90분)
출연 필립 느와레, 리차드 보링제, 띠에리 레미띠, 캐럴 부케, 미우미우 ... 
 

어느 햇살 좋은 날 노천 까페에서 남편과 마주앉아...

문득 일상이 지겹다고 느끼면 핸드백에서 권총을 꺼내 그의 머리통을 쏴 버려라!!

혹시 아는가? 건너편 어디쯤서 그걸 꿈꾸듯 갈구하는 어떤 사내가 있을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두고 보면 알 일. 중요한 건 삶을 누추하게 묶고 있는 '남편과 아내'라는 일상을 단숨에 박살낼 수 있으리라는 오롯한 환상. 그것만 즐기면 된다.

영화는 '아내'라는 일상의 망령에 사로잡힌 남자들이 벌이는 마누라 죽이기 게임 이야기다. 

아내 아닌 여자란 존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내는 없고 여자만 있는 그런 세상은 없을까...^^

하여, 아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려는 남자들의 음모는 얼마나 고단한가?


야호! 드디어 아내가 가출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사라진 아내가 더욱 크고 지독하게 느껴진다. 세상을 가득 채우는 그녀의 음울한 그림자는 강박관념으로 남편의 ‘남성’을 여지없이 짓누른다. 뇌리에 박힌 ‘아내'라는 단어만으로도 뭇 여자 앞에서 남성은 위축한다.

죽어버린 남성의 부활을 위한 교살의 꿈은 달콤하다. 지상에서 그녀가 영원히 사라져야만 내가 살리니. 임무를 위해 가야할 곳이 설사 지중해 너머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불륜의 아내를 죽이고도 무죄로 풀려난 킬러, 면전에서 외간 남자와 정사를 벌이고 새처럼 날아가 버린 아내를 죽여야만 그녀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 바람둥이 남편. 두 넘을 충동질하며 세상의 모든 아내를 말살하고 싶어 안달난, 근엄하고 능청스런 판사 영감. 그들을 결속시키는 것은 '아내의 죽음만이 진실로 나를 자유케 하리라'는 지상명제다.

그러나 한 ‘아내'를 죽이러 떠난 세 사내의 여정은 기구하기만 하다.


세상의 모든 아내들, 여자로 다시 태어나라! 죽어서도 남자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면...

어쩌면, 아마도 어쩌면... 여자를 엿보고, 수작을 걸고, 어딘가를 건드리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남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이 몹쓸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만남을 향한 숙명적인 과정일런지도?

정말 그렇게 우긴다면 맞아죽을래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 '사랑'을 실존의 한가운데 놓고 경쾌한 탐미를 유감없이 휘두르던 빠뜨리스 르꽁뜨 감독의 정말 유쾌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시선은 따뜻하나 신랄하고, 경쾌하지만 때로 노골적이다.

가장 프랑스적 감각으로 탐구한 사랑의 조건이란, 결국 일상을 우회해서 되돌아온 일상의 비일상성 혹은 거리. 그건 '자기기만'의 다른 표현일까? 그러나 거기엔 전에 없던 새로움이 있다. 일상은 풍부해졌다.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무겁게 풀어본다면, 그건 죽음을 지나 바람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는 어떤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다가가 마지막 순간, 회한의 벼랑 끝에서 엿보는 존재의 낯설음 쯤이다. 

무심코 내던지는 대사들의 섬뜩함은 무책임한 가학을 자극하고 <시네마 천국>의 필립 느와레 영감의 의뭉스런 능청, 호화 배역들의 뛰어난 연기도 눈요기감이다. <책 읽어주던 여자> 미우미우의 눈동자가 영화 속의 느낌처럼 정말 그렇게 까만지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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