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암곡 주차장(09:35)~옛 도투락 목장터(태극기 휘날리며, 선덕여왕 촬영지)~암곡사슴농장터~운제 토함 종주능선~무장산~출발지점(16:20) gps로 18.7km
무장산에서 건너보며 오래 궁금하던 곳, 이제사 가본다. 옛 도투락목장터. 화랑촌이란 이름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금은 천북관광단지 개발로 인해 목장터 대부분이 공사판으로 변했다. 사라질 날 기다리며 아직 남아있는 곳 거쳐 억새와 조망 명소 무장산 잇는다.
다시 기승하는 코로나 탓에 적막한 크리스마스 휴일, 바람마저 매서워 산길은 내내 호젓하다. 아침엔 좀 미진하던 시야, 오후 들어 한결 대기 깨끗해지며 원근 산릉 제법 투명하게 드러내놓는다. 근래 오르내린 경주 산릉들이 고스란히 시야에 드니 '산행의 팔할은 조망'임을 새삼 실감한다. 허나 하산 후엔 늘 발품 부족했다는 일말의 아쉬움... 조만간 사라져 없어질 곳이라 하니 더욱 그러하다.
유적 유물로 가득한 경주이지만 저 성벽은 진짜가 아니다. 영화 촬영지로 쓰였던 목장 폐축사 또한 옛것이 아니고 산업화 시대의 건축물이다. 목장이라는, 좀 이국적인 축산 방식이 한때 이 지역에 성했다가 몰락하며 남은 폐축사는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다가 이제는 잊혀지고 버려진 현대사 유물이 되었고, 억새와 잡초 우거진 초원에 비현실적으로 생경한 세트장 성벽은 유적 못지 않은 폐허의 아우라 뿜어내며 없는 기왓장이라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복제품 성벽에 서서 학날개 편 남산 아래 고도 경주를 아득히 건너본다. 경주 들어서며 '경주에 투자'하라는 구호 적힌 현수막을 보았다. 고도 경주가 아닌 산업도시 경주였다. 유적 유물들은 그 자체 문화 콘텐츠이자 관광상품으로 소비되고, 옛 이야기는 현대적 상상력으로 각색되어 복원된다. 새로운 허구 서사는 사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기능 잃은 낡은 것에서 전혀 다른 쓸모를 읽어낸다. 그 점에서 경주는 풍부한 가능성을 지닌 흥미로운 도시다.
진짜 옛것이 더 소중할까...? 헤집다가, 쓸모잃고 자유로워진 가짜들의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왕이 된 남자'나 '카게무샤'란 영화는 가짜의 정체성을 잃고 진짜의 운명을 착각(?)하는 몸 혹은 마음들의 이야기였다. 폐축사와 세트장 성벽, 진위의 경계를 떠도는 사물들이 있다. 물론 그 '진위'는 우리가 그것을 보는 방식이나 태도일 따름이니, 다중 캐릭터나 가상현실에 점점 익숙해져가는 21세기 인류에겐 전혀 낯설거나 혼란스럽지 않다.
문제는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이다. 본래 쓸모를 잃고 혹은 가짜로 태어나 비로소 다양한 정체성을 누려가고 있던 흥미로운 것들이 이제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 그 자리에 들어설 골프장이 못마땅하다기보담 그 건설의 획일적인 파괴성이 싫은 것. 큰 하나의 출현을 위해 수많은 작은 다양이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니, 이제는 진짜 가짜의 부질없는 감별이 아니라 큰 것과 작은 것, 하나와 다양,에 대해 생각해볼 때.
조망권 벗어나기 직전에 돌아보니 골프장 공사장이 훤히 건너보인다.
무장산은 등하산로가 넘 너르다. 잼없다. 그래서 막바지 구간만이라도 임도 아닌 지름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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