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군위 화산 빨간풍차(10:35)~폐화산초교~고랭지밭~풍력발전기~화산(12:38)~옥정과 괴헌정~화산산성~출발지점(14:55)
모처럼(아니, 수십년래 첨인가?) 대학 과동기들과 화산 소풍겸 답사 나들이.
주목적이던 옥정영원玉井靈源을 아무런 제지나 간섭없이 대면한 건 운좋은 노릇이다. 날씨는 아쉬웠다. 고원분지 바야흐로 지피려는 봄빛,봄빛이 찌푸린 하늘아래 오던 걸음 망설이며 주춤거린다. 허나, 만남 자체가 즐겁고 반가운 얼굴들이 흐린 하늘 이상으로 종일토록 환하였으니
창궐 지나 비로소 한풀 꺽인 코로나 시절, 겁없는 중늙은이들 나들이 무리 눈여겨보는 시선 있었다면 무슨 염려 풀어놓았을라나? 그또한 궁금하고도 뒤통수 근질근질하던, 수상하고도 나른한 호시절 한나절.
요즘 제법 유명해진 화산 빨간풍차에서 걸음 시작한다. 그러나 화산 정상 지나서까지는 사진기록 없다. 원경 흐려 시큰둥한 데다 폰카 명수들 덕분에 똑딱이 한가롭던 덕분(?)이다. 화산초교 폐허 마당의 봄빛 궁금하여 그리 길을 잡았으나, 예전과 달리 울타리 막혀있고 (봄 늦은 고원이라) 인상적인 봄빛이랄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낭패스런 건 지맥 이어지는 동쪽길이 사유지 철문으로 완강히 닫혀버렸다는 것. 부득불 길 열린 남쪽 사유지를 거쳐 산길을 우회한다. 길 아닌 발길 흔적과 낡은 밭울타리 넘은 흔적들은 필시 우리와 같은 난관에 봉착했던 팔공지맥꾼들 것일 터.
북으로 조망 툭 트이는 고랭지 묵밭 끝자락에서 지역 친구가 준비한 봄나물 안주에 막걸리 한잔씩 나누고, 풍력발전단지 건설 현장 도로따라 화산 오른다. 배수로 공사 한창인 길은 아직 포장이 덜 되어 차량 지나가니 먼지 풀풀이다. 팔공산 뒷태와 흐린 먼산릉 돌아보며, 훗날의 바람 기다리고 있는 바람개비 지나면 곧 화산 정상.
각자 준비한 요깃거리 나누며 든든히 배 채운 후, 룰루랄라~ 낙엽 능선 기분좋게 걷다가 분지 유격장 건물쪽으로 내려간다. 유격장 관리 군인들 조우 무릅쓰고 옥정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능선 벗어나 분지 향해 가는 길
방대한 화산 분지 한가운데 들어선다.
만연한 봄빛 아니지만 흐린 하늘이 오히려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 더한다. 중대급의 소규모 연병장이라 할 공터가 인상적이다.
'탁족濯足' 새김글씨가 눈길 끈다.
옥정 맑은 샘 바로 아래서 탁족들을 하셨던가? 우리 옛 선비들 탁족 애착 남달랐음은 어디선가 읽은 적 있지만 친절히 서각까지...ㅎㅎ
그러고 보니 총총 마주앉아 탁족하기 딱 좋은 물길이다.
처가쪽 인연으로 옥정을 30년이나 궁금해했다는 친구 덕분에 마련된 모임, 행여 통제하는 군인 만나면 둘러댈 핑계 고안하느라 너도나도 킬킬대며 빈 초소 지나왔지만, 막상 옥정 앞에 서니 분위기 진지해져 사뭇 답사삘~까지 난다. 주선한 친구는 옥정 이름의 유래와 발상이 담긴 한유의 시 고의古意와 옥정을 노래한 류성룡의 칠언절구를 적은 복사물까지 나누어준다. (좀 길지만) 참고로 두 시를 옮겨본다.
古意 고의
韓 愈 한유
太華峯頭玉井蓮 태화봉두옥정련
開花十丈藕如船 개화십장우여선
冷比雪霜甘比蜜 냉비설상감비밀
一片入口沈痾痊 일편입구침아전
我欲求之不憚遠 아욕구지불탄원
靑壁無路難夤緣 청벽무로난인연
安得長梯上摘實 안득장제상적실
下種七澤根株連 하종칠택근주련
태화산 정상 옥정에서 나는 연은
꽃피면 넓이가 열장에 뿌리는 배와 같다네
차기는 눈서리 같고 달기는 꿀과 같아
한 조각 입에 넣으면 오랜 병도 낫는다네
나 그것을 구하려 먼 길 꺼리지 않는데
푸른 절벽엔 길도 없어 기어오르기 어렵네
어떻게 긴 사다리 얻어 올라 열매를 따다
내려와 칠택에 심어 뿌리와 줄기 잇게 할까
참고 : 太華(태화)는 중국 5악 중 서악인 화산의 5봉 중 태화봉
---------------------
七言絶句 칠언절구
류성룡
誰向華山欲問田 수향화산욕문전
仙源從此有因緣 선원종차유인연
諸君借我雲梯路 제군차아운제로
玉井秋風採碧蓮 옥정추풍재벽연
누가 화산에 밭을 구하려 하는가
신선의 근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네
여보게 나에게 구름사다리 빌려주구려
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 연 따리로다
(기존 번역 살짝 바꿈)
시상 대비가 흥미롭다. 서애는 한유의 발상일 끌어와 이으며 신선의 근원을 중국 화산 옥정에서 동방의 화산 옥정으로 옮겨놓는다. 나쁘게 말하면 소중화의 문화식민지 의식이요, 좋게 말하면 당대 세계 최고급의 정서와 자의식을 공유하고 적극 소화하여 자기 문화의 자양으로 삼는 태도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도가道家나 불가佛家도 아닌,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이 공유했던 저 선풍仙風이나 선풍禪風이다. 저것이야말로 고금을 관통하며 여태도 낡지 않는, '다른 곳'을 꿈꾸는 상상력이자 일상을 심미화하는 시적 감성의 탄탄한 바탕 아니었을까. 경세와 교육이라는 기능과 실용에만 치우치는 유학은 종종 지나친 윤리강박을 드러내며 텅빈 욕망과 위선의 아슬한 경계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때 그 시절, 피안의 선계에 닿는 수많은 '옥정' 이미지들은 중세 사대부들의 현세적 욕망을 방부防腐하는 동시에 지나친 윤리강박을 누그러뜨리며 현실의 각축으로부터 일보 후퇴할 심리적 완충지대 노릇을 하지 않았나 싶다. 글로벌 자본주의 가차없이 유린하며 창궐하는 코로나 시절,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질서있고 우수한 대응능력 보여주는 우리 나라가 새삼 놀랍게 느껴지는 요즘, 중세 유교문화의 자취 한자락 돌아보며 문득 가닿고 싶어지는 그때 그시절, 그들의 상상력과 감성이 새삼 숙연히 와닿는 화산의 봄날 오후...
옥정영원玉井靈源 서각.
새김은 뚜렷하나 이끼 탓에 글씨가 잘 보이질 않는다. 계절빛따라 풍화하는 문명의 운치가 싫지 않지만 아쉬울 이들이 더 많을 듯.
옥정
자세히 들여다보니 쉼없이 솟아나는 물에 고운 모래도 끊임없이 움직인다(동영상 찍으려 했으나 할줄 몰라 못했다).
옥정 바로 뒤쪽 습지, 놀랍게도 이 흐린 물은 옥정의 지하 물줄기에 닿지 않는 듯, 옥정 물맛 본 친구가 좋다며 고개 끄덕인다.
답사 삘~ ㅎㅎㅎ
왼쪽은 괴헌정. 정자 올라 천정과 사방 둘러보았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남쪽의 인공연못.
옥정 물이 흘러들었다 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저 버들 좀 더 물오르면 보기좋을 텐데.
공터 건너서 보는 화산 정상부.
저 바람개비 준공되면 바람부는 조망능선으로 인기 좋겠다.
더불어 이 화산분지, 이렇게 별로 쓰이지도 않는 군사시설로 방치하긴 넘 아깝다는 게 이구동성 의견들이다. 경상도엔 흔치 않은 고원분지라 풍광 워낙 뛰어나고 이채롭다. 군사시설 철수하고 지자체에서 인수하여 요란하지 않게 정비하여 탐방객들 드나들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아니, 다른 곳의 사례에서 보듯 이대로 그냥 출입 막아두는 게 덜 망가질려나? 살금살금 댕길 사람만 댕기고 ㅎㅎㅎ
매화와 살구꽃 핀 앞, 비석같은데...
화산산성 지은 절도사 윤숙 장군의 비.
흐리지만 다들 전공이 전공인지라 단박에 주요글자 판독이다.
솔숲 산책로따라 화산산성 향해 내려간다
운치로운 길이다. 햇살 나면 국수나무 연두가 기막힐 텐데...
길이 조금만 더 오솔하니 좁았으면 싶기도 하고.
화산산성 북문에서
숙종조, 조선 후기 구조물답게 정교하다. 그랭이 공법이래던가 머시기...
성문 돌쩌귀 박혔을 홈
수구문으로 간다
수구문에서 암반 계류 굽어보다
수구문 등지고...
산성 등지고 풍차로 돌아가는 길, 사방보 비탈
버들개지 활짝
노랑괴불주머니 피었다.
여유로운 4시간여 화산 트레킹 끝내고 친구네 처가로 향한다. 노고산에서 굽어보던 예쁜 그 마을, 중에서도 가장 멋드러진 자리다. 시야 감싸주는 아늑한 야산릉과 어깨 뒷쪽 조그만 연못, 작물들 식별이 가능한 기분좋은 시선 거리만큼의 밭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이웃 거리... 허전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은 포근한 집터가 다들 부럽고 탐나는 기색이다.
친구네가 준비한 푸짐한 봄나물과 먹고 마실거리들... 먹고 또 먹어도 다 못먹은 두릅과 두릅전, 뒷풀이 담소하며 먹고 마시며 남은 오후나절 흘려보낸다.
흉흉 코로나 풍문 등지고 동무들 함께 가는 사월 호시절~~
'산과 여행 > 경상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슬산 마내미골 한바퀴 200420 (0) | 2020.04.22 |
---|---|
안동 연점산~천지갑산 200414 (0) | 2020.04.16 |
밀양 사자봉~문바위 200409 (0) | 2020.04.13 |
청도 매전 육화산 자락 여기저기 200402~0405 (0) | 2020.04.12 |
청도 부처산 ~구만산~능사지굴 능선 200329 (0) | 2020.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