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미시령(03:40) ~ 황철북봉(05:16) ~ 황철봉(05:48) ~ 저항령(06:31) ~ 마등봉(08:31) ~ 마등령(간식) ~ 공룡릉 1275봉(10:21) ~ 희운각 대피소(12:10 간식) ~ 소청봉(13:37) ~ 중청봉 데크 (14:15 한참 놀다) ~ 서북릉 ~ 한계령 삼거리(16:45) ~ 한계령(18:03)
어쩌다 대간, 이라고 해야 할까? 얼결에 남진 2구간째다.
당초엔 마등령까지 대간길 걷고 설악동 쪽으로 벗어나 미답의 경관코스를 혼자 여유롭게 기웃거리려 했다. 그러다 부득불 계획 바꾸어 곰골 거쳐 내려서기로 했는데, 막상 마등령 다다르니 아침부터 골짝 하산길 접어들기가 영 내키질 않는다. 에라, 그냥 내치자~
수차례 걸었던 설악 대간이지만 늘 두토막이었고 한번에 이어 걸어본 적 없기도 하니....
그리하여 접어든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 설악의 등줄기를 종단하는 코스.
오늘 발걸음에서 벗어나 있는 미시령 넘어 상봉 신선봉까지 북설악과 한계령 남쪽 점봉산 일대의 남설악 또한
잡힐듯 빤한 하늘금으로 시야에 드니, 오늘의 걸음 속에 설악의 전모가 담겨있는 셈이랄까.
도상 23km 만만찮은 거리, 하물며 설악 아니던가. 아니, 그러나 설악 아니던가.
한계령 내려서니 모처럼 진빠지도록 찐~하게 함 걸었다는 묘한 도착적 쾌감이 엄습하는데
'하물며'와 '그러나' 사이, 뿌연 중독감같은 정체모를 저 잔상이 오늘 산행의 진실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그건 과잉자아 부추기는 사회가 상투적으로 남발하는 '극기'나 '한계' 따위의 통속 심리 코드로 정리될 무엇도 아니고, '풍경'의 감각 안쪽에 고스란히 담기는 이미지적인 무엇도 아닌 듯하다. 굳이 말로 하자면, 말로 담아내려 애쓰는 그만큼의 영역 밖으로 슬쩍 밀려나가 저만치서 말없이 흔들리는 그늘이거나 '이름없는 나머지' 같은 무엇. 마지막 걸음 내려선 자리에서 돌아보는, 비로소 텅 빈 충만의 느낌이랄까, 뭐 그 비슷한 무엇.
중무장 방벽친 미시령 옆구리 찔러 붙어오른 대간릉, 동트려면 시간여 남았으니
머리에 불달고 휘적휘적 밤산길 걷는다. 후텁하니 달아오르는 봄밤...
신새벽이라면 씻은듯 푸르고 멋스러울 울창 활엽숲, 숱한 아름드리 참나무들 못 보고 지나쳐야 하는 일말의 아쉬움.
울산바위 돌아보며 황철너덜 접어드니 비로소 동녘 훤해진다.
잠 설친 새벽, 몽롱한 의식 후려치는 쨍한 일출 기대했건만 대기는 박무 가득하고 동해는 구름에 잠겨있다.
설악동 골깊이 파고든 운해가 시선을 끄는데 물 건너간 일출, 꿩 대신 닭이다.
집채만한 방구들, 기어오르는 내 몸도 방구 못지않게 무겁다.
끙야끙야 뒤따라 오른다.
울산바위 담아보지만,
무박산행의 묘미인 투명하도록 싱그러운 새벽빛 음미하는 맛은 없다.
무딘 새벽, 더딘 걸음.
돌아보는 대간릉 상봉도 내 졸린 머리만큼 흐리멍덩~
까마득한 중대청, 그 앞으로 마등봉으로 이어지는 대간릉 겹쳐진다.
이 코스 걸었던 중 가장 시야가 못한 듯.
북봉 내려 황철봉 향한다.
길옆 조망바위 오르니 원통형 암봉 너머 걸레봉릉이 까칠하다.
예전엔 없던 걸레봉이란 이름, 한참을 암릉 우회하는 대간길이 지저분하고 힘들어 그 이름이라는 소문이지만...
사실 저 구간, 비지정 설악 등로 특유의 거친 느낌이 살아있고 울창숲 일품이라 뺀질한 주등로 이상으로 심심산길 걷는 맛 좋은 곳이다.
길 잇는 편의의 눈으로만 산을 보려는 일부 산꾼의 편협한 관점이 낳은 한심한 작명이라고 해야할까...
갈길이 시야에 든다.
오른쪽부터 황철봉 황철남봉 걸레봉
풍성하진 않으나 설악동 골깊이 파고든 운해 굽어보는 느낌이 착잡하다.
이 갑갑한 박무의 근원이 저 구름바다일 테지만, 저나마 있어 무디고 단조로운 새벽 풍경이 나름 볼만해진다.
여유로운 코스로 갈 거라고 부실하게 준비한 내 모이를 두 번이나 보충해 주신 분.
초여름 설악 곳곳에 피어나 오가는 이 한번쯤은 눈맞춤하게 하는 이쁜이.
오늘 저 족속과 수없이 눈맞을 듯.
황철남봉 쏟아져내리는 일행들
맥주 한 캔 들고 여유만만...
진정한 상풍류객이신 듯.
저항령 내려서며 당겨본 걸레봉 능선 봉우리.
누군가 내려서고 있다.
저항령 내려서며 다시 오를 길 올려다보다.
저항령에서.
아가야, 넌 누구뉘? 네 이름 머뉘?
지금 설악엔 벌깨덩굴 지천이다.
설악 벌깨덩굴은 유난히 빛깔과 선이 뚜렷하여 본 중 가장 예쁜 듯.
저항 너덜 오르며 동쪽 건너보다
돌아본 황철남봉
진달래 가고... 이제는 철쭉 시절
날아갈 듯 바람 사납던 걸레봉의 암릉
암릉 우회로 내려서다
암릉 우회하며
조망바우에서 진행방향 마등봉 바라보다.
동은 가파르고 서는 완만한, 경동지괴 지형이 뚜렷하다.
우회해온 걸레봉 암릉 돌아보다
몇 차례 사진 찍었던 곳이라 낯익은 그림이지만 볼 때마다 좋다.
조금씩 다르게 겹쳐지는 시간 이미지들...
산이 어딜 가느냐지만, 때로는 언제 어떤 산이 있더냐고 묻고 싶어진다. 가고 오지 않는 산, 늘 새로운 산.
설악처럼 큰 산일수록 그러할 터.
마등봉 오르는 길, 숨 고르며 돌아보다.
역시 낯익은 그림이지만, 젖은 이마 우에 드리워지는 강렬한 오월 신록이 싱그럽게만 느껴지니
오늘 산길은 전에 없던 새로운 길.
삿갓나물? 꽃피웠다.
독초라던데 왜 나물일까?
마등봉 오르며
맘 접은 곰골 방향 굽어본다.
나한봉에서 서쪽으로 뻗는 바로 앞 줄기가 가야동과 곰골로 물길을 나눈다.
마등봉에서보는 동쪽.
세존봉 바라보다.
저거이 깜냥껏 함 올라보는 게 설악동 탈출 계획의 일부였지만, 지금 이런 조망이라면 안 오르는 게 낫겠다.
아니, 저 운해 때문에 오르는 게 좋은강...?
공룡쪽도 너무 뿌옇다.
솔직히 대간길도 그다지 사기 나지 않는다.
마등령 조망바위에서
더 뾰족해진 1275.
실제 고도는 1266m이며, 공룡릉의 최고봉은 1275봉이 아니고 나한봉(1297m)이란 이번에 첨 알았다.
여태 잘못 알고 있었던 것.
마등령 공터에서 요기하는 옆에 곱게 피어있던 산괴불주머니.
설악의 꽃답게 빛깔이 참 맑다.
먹고 기운 차린 후라 기분좋게 눈맞추며...
공룡의 바위벽, 방금 전까지 주물럭대다가 떠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
나 또한 손이 근질근질해지며 묘한 페티시적 충동을 자극받는 건 좀 거시기한 망상일까?
바위벽의 무늬와 균형잡힌 형태의 윤곽 때문에 인공구조물같다는 인상을 불현듯 받곤 하는 1275봉
널럴한 조망대 1275 꼭지에서 누군가 사진 찍고 있네
여러 모습의 1275
우회하는 암릉 무심코 올려보다가....
저게 대체 어떻게?
저게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을까?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돌삐.
공룡 접어들면서 자주 바위벽 살피니...
귀여운 솜다리 시절이다. 곳곳 많이 보인다.
넌 거기서 머하누?
돌단풍도 꽃을 피웠다.
늘 느끼지만 높은 곳의 꽃들은 유난히 빛깔 맑고 깨끗하다.
꽃마리도 제철.
예쁜 애들 무척 많이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 눈맞추기 힘들어서리 요넘만 겨우...
공룡의 가장 상투적인 장면 중 하나지만...
거대한 날짐승을 연상시키는 모습은 언제나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뾰족한 저 봉우리, 큰새봉이라 부르던데 예전엔 못 듣던 이름으로 간혹 박쥐봉이라 부르는 기록 본적은 있다.
그런데 큰새가 되려면 북쪽의 나한봉도 한쪽 날개삼아야 하는데 그건 좀 어색하다.
1275 오름길
큰새 나한 마등까지
1275 남쪽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의 수직벽이 눈길을 끈다.
봄에 공룡 올때마다 만나던 곳 오랫만에 기웃거리니...
여전히 건재하다.
색감 좋은 각시붓꽃도 많이 보인다.
돌아보다. 범생이 바우들.
돼지 주둥이 킁킁대는 신선대
자세히 좀 보자...
신선대 오르며 돌아보다
신선대에서
흩어질 시간도 되었건만 희한하게 여태도 뭉기적대는 구름.
나만큼이나 게으른 저 구름이 좋아 배낭 벗어놓고 한참 똑딱이며 머문다.
화채봉에서 칠성 집선봉까지
다시 공룡쪽...
범봉쪽.
꽤나 강렬한 형태와 질감, 벗겨놓은 듯 미끈한 범봉은 물신적 탐닉을 넘어 거친 충동마저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직접 매달려보지 않아 그 느낌 전혀 알진 못하지만, 상상만으로 헤아려보는 바위질의 욕망은
SF적 상상력이 즐겨 다루는 유기체와 무기물(금속이나 광물질)의 융합이라는 환상, 날카롭게 발화하는 죽음충동을 질식시키지 않고 천천히 연소시키며 극한 쾌감을 꿈꾸는 욕망과도 그 뿌리가 닿아있지 않을까... 함부로 짐작해 본다.
최근에 본 '서던 리치 - 소멸의 땅'이란 영화가 새삼 떠오른다. 광물적 고요와 아름다움만이 만연하는 어떤 궁극의 세계, 열반의지라 불리는 죽음충동이 유기체의 생존 욕망을 가차없이 빨아들이며 가없는 아름다움으로 펼쳐놓는 무성적 융합과 영원한 자기복제의 세계. 궁극의 욕망은 욕망의 소멸이니, 생사를 넘어 더이상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그들이 다다른 경지는 기이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웠다.
용아릉 너머 귀청과 안산...
용아 한토막과 귀청
희운각에서 요기하고
소청 오른다. 좀 지친 데다 바람없는 한낮 햇살이 가차없이 따갑다.
소청 오름길,
곳곳 조망처이니 자주 돌아보며 오른다.
화채도..
소청에서 굽어보는 내설악.
안산 오른쪽 멀리 보이는 건 대암산일까?
용아와 봉정암쪽
사리탑도 보인다
중대청
돌아본 소청
작정하고 똑딱인다.
한낮인데도 흩어지지 않고 서성이는 운해, 만나기 쉽지 않은 꽤 특이한 광경이다.
아침엔 영 시큰둥했는데, 골로 가지 않고 능선으로 진행하길 잘한 듯.
멋쟁이 선글라스팀
초록 물결 화채릉
중청산장 지척에 두고 주저앉는다.
소청 오르느라 진액께나 뽑고 헛헛해진 속, 건네주시는 소주 한 잔 털어넣고
발아래 망연히 굽어본다. 그만 대청을 잊는다.
마시면 다 잊는다는, 영화 '동사서독'에 나오는 그 술 이름이
'취생몽사'라 했던가...
S라인 더 살아나는 용아도 다시 함 더...
서북릉과 가리 주걱 건너본다.
시야 그리 깨끗하진 않으나 분홍 꽃진 자리 돋아나는 연두에 먼 산릉이 비친다.
소주 한잔 더 마시고 나니...
갈길마저 잊는다.
다시 화채릉.
너머 뭉실거리는 구름 바다가 궁금하여 대청쪽 거푸 똑딱인다.
대청 포기하니 마냥 여유로워 좋다.
무겁고 게으르던 구름도 이제 슬슬 흩어지려는지...
가지 않고 건너보는 대청 비탈, 아직 연두 봄빛이다.
끝물 진달래도 좀 남아있는 듯.
저 너머 동해 뒤덮고 있을 운해 모습이 살짝 궁금도 하지만 언제나 산은 미련 그 자체.
버리지 못하는 미련, 고이 넣어만 둔다.
중청 삼거리 앞두고 밀고 당기며...
가차없이 헤집어놓은 속살처럼
볼적마다 어떤 비현실적인 섬뜩함이나 외설스러움마저 느껴지는 저 바위 무리들.
지척의 중청산장 등지고
서북릉 접어드니 대뜸 꽃얼굴이 반긴다.
남진 대간 담구간 점봉산. 좌우로 흘러내리는 대간 줄기가 부드럽고 유려하다.
너머로 길게 가로놓인 방태산은 흐려 살짝 아쉽다.
좀 더 진행한 지점에서 본 모습.
담구간 대간 중 단목령 거쳐 조침령으로 휘어져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든다.
양수발전댐 위 바람개비 두개도 보였는데 사진으로는 가물가물...
가야할 끝청쪽
흐미~
아직 연두봄빛 머무는 서북릉, 내내 꽃길이다.
무신 냉이류라던가?
앙다문 입들
바짝 들이대본다.
고산지대 설악 벌깨덩굴은 유난히 털이 많네.
끝청에서 돌아보는 중대청
귀청 아래 한계령 가늠해 본다.
아직 머네...
이게 먼 골이더라?
구곡담 최상류가 되나?
오월 중순 산문 개방하자말자 들이대는 서북릉 봄빛은 진분홍 털진달래 작렬이지만,
꽃지고 돋아오는 연두 시절 지금도 좋기만 하네.
덕스럽게 펑퍼짐한 산마루에 아름드리 참나무 즐비한 서북릉 울창숲,
언제 걸어도 좋은 곳이지만 워낙 많은 발길에 등로가 닳아 호젓함이 좀 부족하다는...
오늘 얘들, 겁나 많이 데불고 간다.
무슨 난 종류일까...
꽃이 퍽 낯익다.
혹 풀솜대?
꽃길 내내 이어지고...
뒷태 모델이 절실한 상황...ㅎㅎㅎ
한계령 남쪽,
담구간 남설악 암릉 거쳐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한눈에 든다.
오늘 코스 못지않는 대간길 명품 코스 중 하나....
한계암릉 보이니 하산길 가까워지는 듯.
한계령 하산릉 둥두렷한 1306봉.
기운팔팔 오름길엔 별 느낌조차 없지만, 오늘은 저 마지막 봉우리 넘으려면 좀 수고롭겠다.
한계령이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한계암릉 건너보다.
무박 단풍산행 와서 여기쯤서 돌아보면
박명 깨치고 피어나는 황홀한 단풍빛에 졸린 눈도 덩달아 번쩍 뜨이는 곳.
오늘 걸어온 구간 파노라마로 펼쳐놓고 일별하다.
황철에서 마등 공룡까지.
마등에서 공룡 중대청까지.
날카롭던 1275봉이 큰 혹처럼 둔중해졌다.
한계령 하산길에
1306봉 오름길 옆, 쉬면서 기웃거려본 동굴(촛점 흐림).
옛적 호랭이굴이라 해도 믿겠는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다.
무뎌진 톱날같은 가리 12연봉 건너보며 총총 산행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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