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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고창 소요산 & 병바위 170402

by 숲길로 2017. 4. 4.



코스 : 삼인종합학습원 입구(08:30) - 연기교 - 외딴집 - 241봉 - 소요산(09:50) - 연기재 - 사자봉(11:00) - 수월봉(11:30) - 너럭바위 - 수월봉 - 안부 - 헬기장(12:30) - 조망바위 (점심) - 226봉 - 207.8봉 직전 갈림(13:12) -  탑정 방향 조망능선 - 탑정마을(13:57) - 포장길 따라 - 반암마을 - 두암초당 - 두락암 - 소반바위 정상(14:40) - 병바위 조망 - 인천 묘소 - 아산초교 뒤 - 징검다리 - 수선암 - 조망바위 - 구황봉 능선 4거리(16:15) - 동운암(16:30) - 선운사 주차장(16:41)     

2017-04-02 고창 소요산~두락암[1].gpx


선운산 종주팀에 편승하여 넉넉한 시간(8:30)을 이용, 소요산과 반암의 병바위, 구황봉 일대까지 바쁘게 돌아본다.

소요산은 조망이 참 좋다. 스스로의 화려함에 취하는 선운산릉이나 나름의 운치가 절묘한 화시산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특히 곰소만 굽어보는 시원한 눈맛은 5% 아쉬운 경수산과도 비할 수 없는 별격이다.

연기마을 원점 코스는 좀 단조로워 수월봉 쪽으로 왕복이다. 수월봉은 돌아보는 소요산릉 그림이 특히 아름답고, 건기봉향 능선 꺽이는 지점 너럭바우는 고도감이 좋아 굽어보는 눈맛과 주변 산릉의 역동감이 돋보인다. 

연기마을 원점코스 대신 접어든 207.8봉 남쪽 탑정마을 능선은 비교적 길 뚜렷하고 조망 짱이다. 예각과 암릉빛 살아나는 화시산릉과, 주진천 감돌아 흐르는 오계봉(155.6봉)과 배후의 산릉들, 다가가며 보는 반암 호암, 그리고 먼 선운산릉 명품 바우들의 현란한 하늘금이 내내 볼맛이다. 선형 아름다운 일대 산릉들과 사이사이 봄빛 들판 굽어보며 가는 저고도 조망산행의 매력이랄까.

두락암 반암 호암(병바위)는 예전에 선운산 오가며 볼 때마다 궁금하던 곳인데 알뜰히 오를 수 있다는 건 근래 알았다. 구황봉 아래 탕건바위니 벌바위 등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구황봉 능선 걸으면서도 탕건바위가 대체 어디야? 하며 지나쳤더랬다. 이번에도 코스 후반부 구황봉 일대는 시간에 쫓겨 통과의례로만 끝내고 말았다. 능선 남쪽 삼천굴까지 묶어 구황봉 능선만 별도의 한 코스로 돌아보아야 할 듯하다.


소요산릉과 반암의 병바위, 구황봉을 잇는 최적의 코스를 두어 갈래로 고려했으나 역시 만만치 않다. 동떨어진 곳을 산길로만 잇기란 애당초 불가능이었거니와 만만찮은 거리와 편승에 따른 시간제한도 장벽이었다.

내게 산행은 여행이다. 모든 여행이 늘 그렇듯, 돌아보면 모든 곳에서 조금씩 미진함 남는다. 그 미진의 힘으로 내일의 산행을 꿈꾼다.    


연기교 위에서

물안개 피어나는 인천강(주진천) 굽어보다 


당겨보니 물새도 보이고...






연기마을 입구에서


고창은 고인돌의 고장


길 북쪽 마지막 집, 민가는 아니고 사당인 듯한 건물 향하여 접어든다

 

수목장 표지를 지나..


비교적 가파르게 이어지는 산길,

아랫자락은 진달래 만발이다. 


선운리 갈림길 지난 조망바위에서 돌아보다

박무로 시야가 좀 아쉽지만 올망졸망 산릉들이 아름답다.  


올라온 능선 너머로는

일행들 부지런히 걷고 있을 선운산릉


당겨본 선운산릉




오후에 가게 될 병바위 당겨본다




곰소만쪽








곰소만 건너 변산 관음봉 세봉..


염전으로 유명했던 곰소인데

지금은 저게 축제식 양어장이라고 한다.


정상 북사면엔 봄빛 돌아오는 중

 

경수산과 소요산의 두 북능선,

곰소만 굽어보며 소요산 선운리쪽 능선과 경수산 용기리쪽 능선을 이어 보아도 재미있을 듯.






정상에서






다시 당겨본 선운산릉


북동쪽, 수강산 자락은 온통 골재 채취장이다.


당겨본 관음봉(왼쪽)과 의상봉(뒷줄 오른쪽). 의상봉 바로 앞엔 용각봉쯤일까?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변산 가고 싶어진다. 올봄에 가보려 한 코스 몇 있는데 어떨지...



쨍한 하늘은 아니지만

곰소만쪽 시원한 눈맛이 선운산릉과는 또다른 즐거움.  

유난히 눈에 띄는 예쁜 마을이 있어 당겨본다. 


지도 찾아보니 안현돋음볕 마을이라 한다.

몇몇 지붕에 노란 얼룩이 보여 대체 무얼까 했는데 국화 그림이라고(그래서 별명이 국화꽃마을).

저 마을과 마주보는 남쪽 선운리는 국화꽃의 시인 미당 서정주의 고향이다. 빤히 건너보이는 곳에 생가와 문학관도 있다.  

지척에 죽음을 등지고 삶을 꾸리며 노란 꽃을 피워내는 마을, 조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산에서야 국화는 보이질 않고 산소들 즐비한 동산 아랫자락 감싸안으며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그저 예쁘기만 하다. 

한국최고의 서정시인이란 명예와 일제와 군부독재 부역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해바라기 글쟁이의 불명예를 함께 떠안고 있는 미당, 그는 매일같이 저 동산을 바라보며 자랐을 것이다. 지금과는 달랐다 해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일대의 풍광이 그의 눈과 마음을 길렀을 터이니, 

가히 극에 이르렀던 그의 탐미와 전통에의 탐닉을 떠올리면서 그의 미학과 공존했던 부역의 뿌리는 과연 또다른 무엇이었을까... 막연히 헤아려 본다. 

 

진행방향 사자 수월봉 능선과 오른쪽 화시산릉, 너머 멀리 흐릿한 방장산릉

 

소요사 거치지 않고 능선따라 내려서는 길 옆 조망바위에서


소요사 종각과 법당도 흘낏 보인다.





고목이 멋스럽다.

연두 봄빛이나 단풍 땐 참 볼만하겠다.


길가에 현호색 총총..


작은 봉우리 치올리기 싫어 소요사 포장길로 내려선다




뜻밖에 이런 안내판도 있다.

좀 더 쉽게 설명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내용에 비해 표현이 좀 어렵다.

사전에는 마그마가 흘렀던 흔적 무늬가 있다는 뜻으로 유문암流紋巖이라던데...

저 세로 줄무늬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돌아본 소요산정




연기재.

미당이 제집처럼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도 모를 길.


오래전 자전수필에서 읽은 바로 미당은 선운사 절집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럼 저 선운리 생가는 난 곳이 아니라 자란 곳일 터이니, 사흘이 멀다하고 그는 선운사를 드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선운사는 절집치곤 지나치게 탐미적인 데가 있다. 선운산과 거기 깃든 암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깊고 울창한 계곡과 천길 벼랑 거느린 기암들과, 묘한 반역의 기운마저 감돌며 사이사이 협곡 이룬 구렁들, 구월이면 온 비탈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꽃무릇 군락, 그런가 하면 능선에 서서 바라보면 너른 뻘밭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태양이 있다. 선운사 동구 앞 풍천(인천강)은 남에서 흘러와 북쪽 곰소만으로 든다. 무엇 하나 예사롭지 않은 기운 풍기며 서늘하게 빛나거나 한껏 작렬하는 느낌이다. 그 모든 것이 그의 미학의 자양이 되었을 것이다.    




고개 지나 밤밭 옆으로 오르며 돌아보다


사자봉 오르며 길 살짝 벗어난 오른쪽 조망바위에서 돌아보다.

사자봉 정상은 조망이 없으므로 이 곳이 사자봉 유일 조망처인 셈.  


너머 경수 선운산릉까지





당겨본 선운산릉


당겨본 소요사.

백제때 연기조사의 서해 도래 전설을 지닌 절이라 나름 흥미롭긴 하지만,

소요산 정상부에서 한껏 조망을 누렸고 절집 자체도 큰 볼거리는 아닌 듯해 들리지 않았다.

혹 담에 다른 계절에 오게 되면 기회 될지 모르겠다.  




조망없는 사자봉 내려서며 보는 수월봉과 오산저수지.

너머 흥덕 벌판은 박무로 흐리다.


화시산 방향


눈길 끄는 바위 아래 가막저수지


용산마을 너머 능선도 눈길 끄는데 화시산에서 소굴치 건너와 이어지는 줄기다.

고도 높지 않으나 남으로 뻗으며 갈라지는 능선상에는 일대의 아름다운 산릉을 볼수 있는 조망처 많을 듯해 꽤 궁금한 곳이다.

이번에도 건기봉으로 내려서 저 줄기로 올라서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길상태 확신이 없어 맘 접었다.

이쪽 지역 산은 가시덤불(망개)이 많아 자칫 큰 욕을 보는 수가 있으니.

 



수월봉에서 돌아보는 소요산


왼쪽으로 가야할 능선


진행하게 될 능선 조망처가 어디있나 유심히 살핀다


오늘 코스 후반부 두 곳,

왼쪽 눈길끄는 기암 병바위와 오른쪽 구황봉 줄기의 벌바위와 형제바위 탕건바위 등등..  


가운데가 구황봉

흐린 시야지만 가려는 암봉들이 확연히 드러난다.

결과적인 애기지만, 구황봉 일대 저 바위는 제대로 답사하지 못해 훗날을 다시 기약해야 할 듯.


소반바위 좌우로 두락암과 병바위


왼쪽으로 뻗어내려간 건기봉 능선

건기봉으로 오르면 연기마을 원점회귀보다 다이내믹한 재미와 조망은 더 낫겠다.

반면 연기마을 남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은 부드러운 능선숲길 걷는 맛이 좋을 듯.

 

용산마을


흥덕 벌판 너머..

방장산릉은 윤곽 잡히나 입암내장산릉은 아쉽게도 보이질 않는다.


건기봉 내려서는 능선 상단 너럭바위에 서니 고창복분자홍보관인지 먼지가 보인다

 

뾰족한 건기봉이 유혹한다.

너럭바우에 퍼질러 앉아 간식하며 잠시 갈등이다.

저리 내려가서 남으로 길을 건너 산자락 붙어오르면 산길이 될까...?

저 줄기 남쪽 마명제 쪽 능선은 길이 좋을 듯하나 북쪽은 좀 의심스럽다.

시간 정해진 산악회 동행이니 아무래도 무리하지 말아야겠지...? 


용산리에서 서쪽으로 오르는 줄기도 눈여겨 본다.

소요산릉만 알뜰히 돌아보겠다면, 건기봉 내려서서 저 줄기로 다시 올라서는 것도 괜찮겠다. 


용산리에서 오르는 줄기, 능선 살짝 벗어난 지점에 큰 바우도 있다.

어쨌거나... 나중에 그 바위 뒤로 보이는 줄기를 따라 탑정으로 가게 된다.


다시 돌아온 수월봉엔

아까는 조망 살피느라 못보았던 산자고가 지천이다

 





사자봉 아래 안부로 돌아와 남쪽 능선 접어드니 멋진 산책로 이어진다


수월봉과 반환점 너럭바위도 보인다


가막제


연기마을로 하산할 경우 진행 능선


당겨본다.

선운산 세 능선이 겹쳐 보인다. 

그런데..

사진 아래 가운데 보이는 바위, 잠시 후 들머리 갈림길을 지나쳐 가게 되는데, 아주 기막힌 조망포인트 아닐까 싶다(아래 참고).

담에 기회되면 꼭 가보아야 할 터. 

 



 

경수산릉도 건너보고..


주 등로는 207.8봉 못 미친 지점에서 우회전하며 연기마을 방향으로 간다.

쓰러진 나무둥치에 막힌 207.8봉쪽으로 묵은 길흔적이 있다. 일단 가 본다.

제법 뚜렷하다, 옳거니!


게다가 조망이 썩 좋다.

여태 밋밋하게 묻혀보이던 화시산 투구봉도 비로소 각이 살아난다.


경수산릉을 배경으로 주진천도 멋스럽게 든다


오계봉 감돌아흐르는 주진천


가야할 병바우는 머리만 보인다


자주 이런 헐벗은 조망처다


철탑 있는 오계봉, 좌우로 구황봉 능선과 경수산릉을 거느리고 있다.

물론 이어지는 건 구황봉쪽이지만.


병바우는 여전히 치알산릉 너머 머리만 빼꼼


주어진 자연경관 자체도 빼어난데 그 흔한 송전철탑 하나 보이질 않으니

고창은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고장이다.

고창과 변산, 가까이만 산다면 여유롭게 기웃거려볼 경승지가 참 많은 곳.


선운사 터널 위를 지나며

화시산쪽으로 냅다 달려가는 22번 국도 돌아보다.


정면으로 101.4봉과 치알봉 능선 너머 두락암과 병바우 윤곽이 뚜렷하다.


뒤로 높이 걸리는 건 비학산인가?




파릇파릇한 봄들판도 곱고...


길이 되려나 궁금한 동남쪽 건너 능선

저 능선에서 전후좌우 선운 소요 화시산릉 건너보는 눈맛이 좋을 듯.


탑정마을이 보인다.

저기서부터는 희게 뻗은 포장농로따라 반암마을까지 가야 한다.

 

기막히게 자리잡은 산소에서

 

포장길따라 반암마을 가며 보는 두락암


기능적으로 멋을 살린 반암교회 십자가가 두락암과 멀리 안장바위와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린다.

 

아산초교.

벚나무라는데... 넘 고목이라 그런가 아직 꽃피울 생각이 없다.

울동네 벚꽃은 벌씨로 다 터졌는데...


두락암 아래 두암초당과 재실인 영모정 




대체 어쩌자고 이런 곳에 이런 집을 지었을까...?

수백년전 16~17세기 사람이지만 그 마음이 썩 궁금하다.



백과사전에서 퍼온 소개글.


두암초당(斗巖草堂)은 호암(壺巖) 변성온(卞成溫)[1530~1614]과 인천(仁川) 변성진(卞成振)[1549~16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이다.

아산면 반암리 영모정 뒷산에 있다. 주변에 주진천[인천강]이 흐르고 있다.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 이황과 교류한 호암의 인품이 곡식을 되는 말[]이나, 저울추같이 평평하여 치우치지 않았다고 하여 두암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호암 변성온과 아우 인천 변성진이 학문을 닦던 것을 기려 고을 사림들이 창건하였는데 훼손되어 5대손인 변동빈이 초당을 중건하였다. 현재 변성진의 후손인 변태섭이 관리하고 있다. 181510월 영모정에 호암의 5대손 변동빈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나 오랜 세월에 유실되었다. 1954년 현 위치에 재건립하였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6.62남짓한 공간에 지어진 조그마한 정자이다. 같은 시기에 영모당 재실도 건립되었다고 한다.

만정 김소희 명창이 15세 때 득음한 곳이기도 하다.

 

반암리(盤岩里)는 마을에 소반바위가 있으므로 소반바우 또는 반암이라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마을에 결혼식이 있던 날 신선이 말을 타고 선인봉(仙人峰)에 내려왔다. 신선은 옥녀의 거문고 소리와 술맛에 취하여 등잔을 밝히면서까지 술을 마시다가 결국 그 자리에 쓰러졌는데 쓰러지면서 술상을 발로 차 버렸다. 그 자리가 바로 선인취와혈(仙人酔臥穴)이라고 한다. 신선의 발에 차인 술병은 주진천[인천강] 주변에 거꾸로 박혀 병바위[일명 호암(壺岩)]가 되었고, 술상은 굴러 소반바위가 되었으며, 거문고 받침대는 탄금대가 되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갠적인 감상을 덧붙여 보자면

소반바위(반암) 지키는 천하기물과 마을 앞을 흐르는 물길의 뜻을 형제가 각기 호로 삼았으니 그들의 향토사랑이 참으로 지극함을 알겠다.

그런데 두암초당의 첫인상은 어떤 각박함이나 가파름이다. 호기로운 기이와 기발의 취향이 느껴지지 않은 건 아니나 

그래도 그렇지, 고도감과 안정감은 함께 하기 힘든 것인데, 대체 왜 저 깍아지른 벼랑 아래 후벼판 듯 손바닥 크기 바위틈 위에 집을 얹었을까? 

그들이 살았던 시기는 임란 전 조선 중기 사대부문화의 융성이 극에 달했던 때, 나름의 자부심 가득했을 그들 형제의 세계관이나 풍류는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놀이터 하나를 지어도 개나소나 다 짓는 평범한 건 싫고 (요즘 말로) 좀 엣지있어 보이고 싶었던 걸까? 

퇴계의 제자다운 면모일까, 사소한 것임에도 분명 어떤 정치함과 집요함 같은 게 느껴진다.

직접 초당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면 그들의 느낌에 일말이나마 가 닿을 수 있을까?

초당 앞에 우거진 덤불 확 쳐내어 시야 틔운 다음, 한나절쯤만 푸근히 들어앉아 막걸리나 마시며 빈둥거려 보았으면 싶다.

남에서 북으로 유유히 흘러오는 인천강 취한 눈으로 바라보며

부처의 선운禪雲을 등지고 강파른 화시火矢를 강건너 불보듯 몽유하면서...  



측면 현판은 두암초당, 정면 현판은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 새겨져 있다.

들어가보고 싶은 맘이나 굳게 잠겨 있다.


왼쪽(서쪽)으로 우회하여 두락암을 뒤로 오른다.

그렇게 올라도 마지막 구간은 밧줄 달린 직벽이다(잡고 디딜 곳 좋아 바위 익숙한 사람은 맨손으로도 가능).


널럴한 두락암 위에서 가야할 구황봉을 본다.


당겨본 구황봉.

짐작컨데 (왼쪽부터) 뾰족한 두 봉우리가 형제봉, 위가 편평하고 솔 몇 그루 선 벌바위,

그리고 몇 무명암봉(지도상 선바위?), 맨 오른쪽 구황봉 아래가 탕건바위.

 

소요산릉과 탑정마을쪽으로 뻗은 지나온 능선


화시산 방향.

투구봉은 여하튼 뾰족하다.


벼랑아래 굽어본 아산초등교


예도 춘란꽃이 한창이다


뒷봉우리인 소반바위 오르며 돌아본 두락암

  


소반바위도 능선따라 조망바위 찾아 양쪽으로 다 기웃거려 볼만하지만

시간에 쫒겨 병바위쪽만 가 본다


병바위.

여느 산에서 더러 본 듯한 낯익은 모습.

건너쪽엔 길닦는 공사 한창인데, 저 공사 끝나면 고창 IC에서 선운사까지는 지척이 된다.  

오른쪽 끝에 선운산 주차장 턱밑에 닿는 삼인터널이 보인다.




또다른 지점에서 본 병바우


병바우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주진천 방향으로 내려서니

병바우 안내판 있다.


하산지점에서 본 아산초등쪽 편백숲길.

이제 인천강을 건너 반곡마을 수선암으로 가야 한다. 내려선 지점 바로 앞에 징검다리가 보이는데 일부 유실되어 신발 벗지 않고는 어렵다. 

아산초등쪽으로 난 숲길이 발길을 유혹한다. 망설인다. 편백숲길 따라 남으로 가면 구암교를 건너고, 북으로 가면 호암교를 건넌다.

거리는 호암교가 좀 가까운 듯한데 일대가 공사판이라 정신사나워 보인다.    

공사판 먼지 무릅쓰더라도 시간 단축하자 싶어 북쪽 호암교를 향해 둑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문득 길이 끊긴다. 둑 자체를 무너뜨리고 다시 설치할 모양이다. 헐~~!

되돌아온다.


호암교쪽 오가며 본 병바우의 모습




제자리 되돌아와 아산초등쪽 편백숲길 접어든다. 도중에 강둑쪽으로 난 오솔길 보여 지름길일까 하며 접어든다.

아니다.

인천선생 묘인데 비석이 여럿이다. 

문제는 묘를 지나 강쪽으로 길이 없다는 것. 높지 않은 벼랑이다. 헐~~!

맘은 급한데 와이리 알바만 계속이냐... 


인천선생(변성진) 묘


강둑으로 가면서 돌아보다.

왼쪽이 내려서지 못한 벼랑이고 그 위가 인천선생 묘소. 


둑길따라 가며 혹시나 싶어 살펴보니...

옳거니!

징검다리가 있다. 튼실하다. 진작 알았더라면 호암교쪽으로 시간낭비 않는 건데...   


반곡마을 향해 가며 건너보다.

병바위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지는 게 흥미롭다.

저 병바우는 묵상하는 옆모습인데...

 

이건 외계에서 온 거대 곤충 대가리같다.


쫌... 호러블~~

변신의 놀라움을 주는 썩 흥미로운 바위다.

우리의 형태심리는 참 묘한 거라서 무언가 좀 불완전해 보이는 것에선 불길함을 느낀다. 또 싫어하는 곤충 모습에조차 사악함을 보며 흉칙해한다. 


수선암 오르막 포장길에선 좀 지친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산행할 때 종종 느끼는 거지만,

후반부 접어들어 시간이 좀 빠듯하겠다 싶으면 그만 맘이 급해지고 걸음은 더 바빠진다. 결과적으로 피로는 더하다.

수선암 개짖는 소리 등지고 포장길따라 올라서니 법당 오른쪽 대숲 사이로 길이 열린다. 치오른다.

근데 어느 새 길이 흐려진다. 아마 탕건암 아래 암자 방향인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지 싶은데, 회귀가 급선무라 능선을 향해 왼쪽으로 오른다. 

능선에서 조금 내려가야 벌바위지만 시간관계상 일대 경관 구경은 포기하고 어서 구황봉 넘어 주차장으로 가야한다. 위로 올라간다. 


조망 바위에서 건너본 사자봉 능선과 낙조대 능선.

선운산 방향 조망은 사방 시야 트이는 벌바위가 훨 나을 듯하다. 


남쪽 조망이 더없이 시원하다.

사진 오른쪽이 벌바위. 정상부가 펑퍼짐하니 유난히 깨끗해 뵈는 걸로 보아 필시 산소 있는 듯?


저 바위에서 이쪽 바위 무데기를 보믄 참 보기 좋것는디...쩝~

너머로는 소요산릉 걸었던 능선이 한눈에 든다.

 

가운데 멀리 화시


병바위는 과연 신선 발길에 걷어채여 깨진 술병같고...


안장바위와 비학산쪽.

윤곽 뿐이지만 오후햇살 아래 계곡쪽은 좀 그윽한 맛이 있다.

 

당겨본 구황봉과 탕건바위

왜 탕건바위인지 단박 알만한 모양새다.

아래엔 암자가 보인다.


이제 숨차게 구황봉 치오르려 하는데, 왼쪽(서쪽) 안부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얼씨구나~!

안부 아래 샘터가는 길이다. 수월하게 안부에서 동운암으로 내려선다.  


동운암. 첨 와보는 곳이다.


백목련 흐드러지는 암자 등지고...

총총 하산.



2017-04-02 고창 소요산~두락암[1].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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