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땅끝 태안반도, 황해 바다 깊숙히 둘러싸인 땅은 화창사월 이틀내내 안개 자욱하고 습했다.
지척의 바다를 가로막으며 사막 한자락을 펼쳐놓는 사구는 신기했지만
모래언덕이 그리 크지 않아 썩 강렬한 인상은 아니었고, 그 언덕을 만들었다는 북서풍의 상상도 풍경을 바꾸어주진 못했다.
같지않다 한들 봄날 사월이었다. 사구를 보러 왔지만
봄바람이 훑고가는 초원의 황량함이 더 좋았고, 새잎돋는 푸른 언덕 너머 보이지 않는 바다도 궁금했다.
멀리 에두르는 솔숲길 버리고 수평 굽어보일 높은 곳으로 올랐다.
순비기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텅빈 썰물 해안은 예기치 못한 광경이었다.
바닷물 빠져나가며 멀리까지 드러난 백사장으로 꾸물꾸물 해무가 밀려들고 있었다.
살아있는 듯한 자태로 육지를 향해 천천히 흘러들어오는 안개는 푸른 사구를 넘어 세상을 침범하진 못했으나
백사장 위를 낮게 일렁이며 은밀하고 수상쩍은 움직임으로 모래바닥을 핥으며 배회했다.
느리고 고요한 움직임은 매혹적이면서도 왠지 위태로워 보였다.
여기저기 보이던 사람들이 하나둘 흐려지거나 멀어지고 더러는 사라졌다.
영화 '미스트'의 장면들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저만치 밀려나간 해안선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 너머 사라져버린 잿빛 바다의 수평은 또다른 세상의 유혹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걷고 있었다. 일행 중 누군가도 안개 밀려오는 쪽으로 홀린 듯 나아갔다.
나 또한 바다를 감춘 안개의 속이 몹시 궁금했지만, 삼켜지지 않은 세상과의 경계에서 안개를 지켜보고 싶은 유혹도 강렬했다.
무無를 감추는 가면처럼 안개 또한 '아무것도 없음'을 그 속으로 삼고 있기에
눈먼 황홀의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안일한 관조를 택했다.
바닷가에 서서 우리들은 한동안 안개를 바라보았고,
그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로 하여 안개는 더욱 충만하고 신비롭고 위태해지는 듯했다.
오래토록 무겁게 일렁이던 안개가 마침내 흩어지기 시작하자,
알수없는 곳을 다녀온 듯 사람들이 다시 나타났다.
안개가 사라졌을 때 세상은 환멸의 빛 아래서 문득 남루해지면서 한결 안전해진 모습이었지만
안개로부터 돌아온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닌 듯했다.
사구로 오르지 못하게 데크길을 해 놓았다.
맘엔 안 들지만 수긍이 가는 처사다. 너나없이 올라 삐댄다면 크지도 않은 모래언덕이 곧 사라질수도 있겠다.
일본 돗토리엔 98m 높이의 사구가 있다 하니 그쯤이면 좀 삐대도 되겠지.
재밌는 건 원격카메라로 감시하면서 길 벗어나는 이들 보이면 확성기로 호통까지 치더란 거...ㅎㅎ
좀 걷고 싶은지 친구들은 가장 긴 코스로 갈려나 부다. 걸음이 재다.
가장 높아뵈는 순비기 언덕 가며
이 황량함...
제주도와는 또다른 느낌인데, 가을 억새철에 다시 함 와보고 싶다.
저 푸른 둔덕이 일차사구인 셈. 너머엔 백사장 품은 바다가 있다.
뒤돌아보는 출발지점
순비기에서 굽어보는 해안.
저 까만 무리들은 새떼일까?
위 사진 확대모습
안개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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